라멘과 우동,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망설임 없이 우동을 고른다. 담백한 맛과 쫄깃한 면발의 식감이 마음에 들어서다. 이번 여행지로 사누키 우동의 본고장, 카가와현을 점찍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카가와현은 밀 재배에 적합한 기후를 갖췄다. 바다와 가깝다 보니 국물용 재료를 구하기도 쉬워 자연스럽게 우동이 대표 먹거리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카가와현에는 600개 이상의 우동 가게가 들어서 있다. 편의점보다 그 수가 많다. 이곳에 ‘우동현’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전세계의 수많은 우동 마니아들이 찾는 곳은 카가와현청 소재지인 다카마쓰다. 이곳에선 우동 가게의 정보가 담긴 ‘우동 패스포트’를 관광객에게 배포한다. 우동 그릇을 차에 부착한 채 유명 맛집 투어를 도는 ‘우동 택시’도 운행한다. ‘우동현’ 카가와의 다카마쓰에서 2박 3일간 여섯 종류의 우동을 맛봤다.

질리지 않는 스테디셀러
카케 우동
카가와현의 우동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그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카케 우동으로, 면과 다시 국물로 구성된다. 재료가 심플한 만큼, 면발의 식감과 국물 맛이 중요하다.

카케 우동을 맛보기 위해 사누키우동 우에하라야 본점을 찾았다. 그런데 내부가 조금 독특하다. 다카마쓰 우동 가게는 자리에 앉아 주문하는 일반 식당, 손님이 직접 음식을 준비하는 셀프 식당, 제면소와 식당을 겸하는 가게로 나뉜다. 이곳은 셀프 스타일의 식당이다. 먹고 싶은 튀김을 그릇에 담는 것도, 면을 국수망에 담아 데우는 것도 모두 손님이 한다. 면을 그릇에 담고 국물과 각종 토핑을 더하면 우동이 완성된다.

윤기가 흐르는 통통한 면발은 이제까지 맛봤던 우동과는 확실히 다르다. 쫀득쫀득한 식감이 일품인데, 한 가닥까지 탄력을 유지한다는 것이 놀랍다. 국물은 우리가 잘 아는 우동 국물 맛과 비슷하나 그보다 간이 약하고 담백하다. 여기에 연근 튀김을 푹 담가 먹으니 국물의 구수한 맛이 두 배가 됐다. 중간까지 먹다가 튀김이나 고춧가루를 더해 변주를 주는 것도 좋다.

간장을 끼얹어 먹는 우동
키조유 우동
앞서 언급했듯 사누키 우동의 핵심은 바로 면발이다. 카가와현에선 밀가루에 물과 소금을 넣어 반죽하고, 숙성 과정을 거쳐 면발을 뽑는다. 이렇게 완성된 면발의 두께는 약 3mm. 이 면발의 식감을 온전히 느끼고 싶다면 차가운 우동을 고르는 것이 좋다. 쯔유를 부어 먹는 붓카케 우동도 좋지만, 간장을 뿌려 먹는 키조유 우동도 별미다.

먹는 방법은 단순하다. 기호에 맞게 간장을 치고 간 무나 파 등의 토핑을 올리면 된다. 간장은 짠 맛이 날카롭게 두드러지지 않고, 가다랑어 육수 등에서 느껴질 법한 감칠맛이 나 면발과 잘 어우러진다. 약간 단단하면서 찰기가 있는 면발의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생강을 약간 넣으면 맛이 조금 더 깔끔하고 상쾌해진다.


방금 끓인 면을 그대로
가마아게 우동
다카마쓰에서 맛볼 수 있는 우동 중 가장 독특한 것을 꼽는다면 가마아게 우동일 것. ‘가마’란 솥을, ‘아게’는 ‘건져 올린다’는 의미를 지녔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 가마아게 우동은 솥에 삶은 우동 면을 그대로 건져 올려 면수와 함께 내는 메뉴다.


가마아게 우동을 주문하면 뜨끈한 면수에 담긴 면, 그리고 면을 찍어 먹을 수 있는 쯔유가 나온다. 우선, 양념을 찍지 않고 면만 맛본다. 면을 찬물에 헹구지 않아 차진 식감보다는 부드럽게 술술 넘어간다. 파를 넣은 쯔유에 면을 살짝 담가 먹으면 가다랑어포와 연한 간장 맛이 입안을 부드럽게 감싼다. 튀김을 주문했다면 이 쯔유에 찍어 먹어도 된다. 면을 모두 먹고 난 후 쯔유에 면수를 넣어 소바유처럼 즐기는 방법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자.

카르보나라와 우동 사이
가마타마 버터 우동
클래식도 좋지만, 퓨전 음식 같은 메뉴를 찾고 있다면 가마타마 버터 우동이 제격. 뜨거운 우동 면에 날달걀과 버터를 올리고, 통후추를 뿌려 먹는 음식이다. 저녁으로 이 메뉴를 맛보고 싶어 우카쿠 우동에 방문했다.

가마타마 버터 우동과의 첫 만남은 매우 어색했다. 우동에 날달걀과 버터라니? 일단 달걀을 깨 넣고 저어 본다. 달걀과 버터가 면에 코팅되듯 섞이도록 살살 휘젓는 것이 포인트다. 조심스럽게 한 입 맛본 우동의 맛은 그야말로 대 반전. 비리거나 느끼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통후추 특유의 매운 맛과 향이 느끼함을 잡고 풍미를 살린다. 우동이라기보다는 카르보나라를 연상케 하는 맛이다.

면은 다카마쓰에서 맛본 우동 중 가장 두꺼웠다. 면발이라기보다는 조금 얇은 가래떡에 가까워 한 번에 면을 두세 가닥씩 먹기가 벅차다. 하지만 설익거나 퍼지지 않고, 탱글한 식감이 살아 있다. 달걀과 버터의 눅진한 맛에 오동통한 면이 어우러져, 카르보나라의 우동 버전을 맛보는 듯한 느낌이 재미있다.
카가와 현의 겨울 별미
싯포쿠 우동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카가와 현의 우동 가게에서는 싯포쿠 우동을 내놓는다. 싯포쿠 우동은 삶은 면 위에 육수를 붓고 제철 채소를 올려 내는 음식이다. 일본에서는 연말에 소바를 먹는 전통이 있는데, 카가와 현에서는 소바 대신 이 우동을 먹기도 한다. 겨울철 현지인의 일상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라는 의미다.

이제까지 접한 우동이 단순하고 절제된 느낌이었다면, 싯포쿠 우동은 그 정반대에 있는 요리다. 당근, 토란, 무, 곤약, 유부, 닭고기 등 잘 익힌 재료들을 푸짐하게 얹어 내기 때문. 재료를 간장에 양념한 듯 엷은 장조림 맛에 채소의 달큰한 맛이 어우러져 만족스럽다. 그대로 맛보는 것도 좋지만, 시치미를 뿌려 칼칼하게 즐기니 더욱 매력적이다. 한 그릇 먹고 나면 추위에 움츠렸던 몸이 조금씩 풀린다.

은은한 산미가 일품
우메 우동
일본을 대표하는 반찬은 매실과 소금으로 만든 ‘우메보시’다. 주로 도시락, 주먹밥 등에 사용되는데, 우동의 토핑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이제까지 먹은 것보다 좀 더 가벼운 느낌의 국물 우동을 맛보고 싶어 우메 우동을 판매하는 가게를 찾았다.


우메 우동의 비주얼은 소박하다. 해조류와 레몬, 파를 넣은 우동에 붉은 매실을 올린 것이 전부다. 하지만 맛은 결코 단조롭지 않다. 가장 먼저 매실의 은은한 산미가 느껴지고, 우동 국물의 진한 풍미가 뒤를 잇는다. 육수가 우메보시의 새콤한 맛을 조화롭게 감싸 산미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데다, 한 번 맛보면 계속 생각나는 매력을 지닌 메뉴이니 다카마쓰에 왔다면 한 번쯤 맛보는 것을 권한다. 다카마쓰를 떠나기 전, 산뜻한 마무리를 위한 메뉴로도 안성맞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