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오랜 세월 동안 독자적인 식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절제된 사찰 음식, 호화로운 연회 음식, 정갈한 가정 요리까지 다양한 일본의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그런데 교토에는 의외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양식 가게들도 많다. 서양에서 들어온 음식이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다듬어져, 이곳의 식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다. 천년 고도 교토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노포 양식점을 소개한다.
교토 명물 ‘피네라이스’ 발상지 키친 곤
교토의 ‘B급 음식’ 피네라이스를 판매하는 키친 곤.볶음밥, 돈까스, 카레, 스파게티 중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없다면, 이 모든 음식이 한 접시에 나오는 ‘피네라이스’는 어떨까. 피네라이스는 교토를 대표하는 B급 음식으로, 1970년 교토에 문을 연 ‘키친 곤’에서 탄생했다. 오너 셰프가 해외 유학 시절 넉넉한 양의 양식을 부담 없이 먹고 싶다고 생각해 만들었다고 한다. ‘피네’란 ‘얇다’는 의미의 프랑스어다. 볶음밥 위에 얇은 돈까스를 얹고, 카레 소스를 뿌려 내는 것이 기본형이다. 밥을 케첩 볶음밥으로 바꾸거나 달걀 부침,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추가해 좀 더 호화롭게 즐길 수도 있다. 이 메뉴가 전부 추가된 스페셜 피네라이스도 있다. 오므라이스, 돈까스, 스파게티를 한 번에 먹을 수 있다.맛은 보이는 그대로다. 볶음밥에 달걀 부침을 뒤집어씌운 오므라이스를 데미글라스 소스나 케첩 소스가 아닌 돈까스 카레와 함께 먹는 맛. 모두가 주연급이다 보니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는 조합이지만, 볶음밥이 질척이거나 간이 세지 않고 돈까스는 얇아서 나름대로 균형이 맞는다. 카레는 매운맛이라고는 하나, 렌게에 담긴 라유를 맘껏 넣어도 될 만큼 순하다. 볶음밥에 라유를 올리면 맵싹하고 고소한 맛으로 변화를 줄 수 있으니 꼭 사용해 보자. 산미가 적다고 느껴지면, 스파게티에 타바스코를 약간 뿌려 먹는 걸 추천.
게이코가 사랑한 양식 전문점 그릴 후쿠야
그릴 후쿠야 내·외부 모습. 가게 안에는 유명인들의 사인이 많다.1907년부터 게이코(교토에서 게이샤를 이르는 말), 마이코, 현지인 손님에게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식당. 샐러드, 샌드위치, 카레, 하야시라이스, 스테이크, 도시락까지 없는 게 없다. 외국어 메뉴판도 있어서 일본어를 못 해도 주문할 수 있다. 겐닌지에서 기요미즈고조 역 쪽으로 이어지는 길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고, 오후 12시부터 9시까지 브레이크 타임 없이 운영해 관광 후 애매한 시간대에도 식사를 할 수 있다. 꽃처럼 화려한 색감의 후쿠야 라이스.이곳의 명물은 가게 이름을 딴 ‘후쿠야 라이스’. 지금으로부터 70~80년 전, 가게를 방문한 게이코가 ‘부드러운 요리가 먹고 싶다’고 요청해 탄생한 요리라고 한다. 케첩 볶음밥을 달걀로 감싸고, 그 위에 토마토, 버섯, 완두콩을 올려 만든다.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게 되는, 꽃처럼 화려한 색감이 포인트다. 달걀은 식감과 비주얼 모두 회오리 오믈렛과 비슷하며, 일반적인 오므라이스보다 훨씬 부드럽다. 소스가 달걀 위에 따로 뿌려져 있지 않아 오므라이스인데도 산뜻한 느낌이 든다. 토마토 본연의 신맛이나 달걀의 고소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굴 튀김과 크림 크로켓 같은 튀김 메뉴도 인기가 많으니 사이드 메뉴로 곁들여 보자.
산장을 모티브로 한 옛 다방 킷사 티롤
티롤 카페 외부 모습. 어닝이 인상적인 곳이다.니조성 근처에서 1968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오래된 다방이다. 일본 토크쇼 ‘마츠코가 모르는 세계’를 비롯해 여러 방송과 잡지에 소개됐다. 레트로한 빨간색·검은색 어닝이 설치돼 있어 멀리서부터 눈에 띈다. 산장을 모티브로 한 공간인 만큼, 식탁, 의자, 바닥, 벽을 비롯한 내부 공간을 나무 소재로 꾸며 안락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디저트류보다는 샌드위치, 카레, 나폴리탄 같은 식사 메뉴와 음료를 주력으로 한다. 티롤의 나폴리탄 스파게티. 부드러운 맛이 매력적이다.클래식한 나폴리탄 스파게티를 선택했다. 이곳에서는 ‘이탈리안 스파게티’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다. 돈까스, 삶은 달걀, 치즈, 고로케 등 여러가지 토핑을 얹을 수 있어 원하는 대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 얇은 달걀 부침을 얹어 오므라이스처럼 맛볼 수도 있다. 여느 나폴리탄과 달리 신맛보다는 단맛이 많이 나고, 좀 더 부드럽다. 나폴리탄 특유의 도톰한 면발, 적당하게 볶아 아삭함이 살아 있는 양파와 피망의 식감도 좋다. 소시지 같은 재료도 아낌없이 사용했다. 식사 후에는 블렌드 커피를 주문해 여유를 만끽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