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패션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매 시즌 런웨이를 수놓는 아름다운 의상, 패션쇼장의 화려한 조명만으로는 소비자를 사로잡기 어렵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이 만드는 속도의 시대, 숏폼이 수많은 시각 정보를 1초 만에 휘갈기는 디지털 피로감 속에서, 패션 하우스들이 눈을 돌린 곳은 역설적이게도 책과 도서관이다.
이들은 왜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여 종이에 문장을 새기고 독서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것은 디지털 경험이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종이라는 물질과 지적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종이로 만든 현대미술관 《Acne Paper》]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출발한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 중에서도 ‘출판 미학’의 독보적인 선구자다. 이들이 선보이는 《아크네 페이퍼(Acne Paper)》는 2005년 첫 발행을 시작으로 패션계의 레퍼런스가 되었다.
출처: https://www.acnepaper.com/issues/이 매거진은 브랜드의 신상품을 홍보하거나 상업적인 화보를 싣지 않는다. 사진, 현대미술, 건축, 철학, 문학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문화 예술지에 가깝다. 세계적인 사진가, 철학자, 문화 평론가들이 기꺼이 이 잡지의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며, 매호 특정 주제를 정해 지면에서 수준 높은 시각 예술을 펼쳐낸다. 출처: https://www.designboom.com/디지털 화면을 스크롤하는 시대에, 커다란 종이 잡지를 묵직하게 넘기는 경험. 아크네는 《Acne Paper》를 통해 자신들이 단순히 세련된 옷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서브컬처와 예술을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샤넬(Chanel), 문학이라는 오래된 유산과 '31 뤼 캉봉'] 샤넬(Chanel)에게 도서관은 단순한 트렌드 프로젝트가 아니라 브랜드의 뿌리이자 영혼이다. 창립자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은 생전 수천 권의 희귀 서적을 수집했던 지독한 다독가였으며, 파리 캉봉가 31번지에 위치한 그녀의 아파트 도서관은 거대한 영감 창고였다.
[루이비통(Louis Vuitton), 여행과 낭만을 엮는 150년의 라이브러리] 여행 트렁크에서 시작된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은 전문적인 자체 출판사(Louis Vuitton Editions)를 운영하는 곳이다. 19세기 창립자 가스통 루이 비통 시절부터 서적 수집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브랜드답게, 이들은 현재까지 100권이 넘는 도서를 직접 기획하고 인쇄해 오고 있다.
[옷을 넘어 지식의 미학을 파는 브랜드들] 미우미우가 도서관을 통해 여성주의 문학을 공유하고, 아크네 스튜디오가 대형 아트북으로 현대미술을 지면에 담아내며, 샤넬이 고전 문학의 유산을 계승하고, 루이비통이 여행의 낭만을 책으로 인쇄하는 풍경. 이들이 만드는 도서관과 출판물은 단순히 화려한 의상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손으로 질감을 느끼며 한 장씩 넘겨야 하는 종이책은, 그 자체로 소비자가 브랜드의 철학을 가장 오랜 시간 온몸으로 체화하게 만드는 ‘가장 완벽한 아날로그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