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특히 ‘집’이라는 존재는 대개 땅에 단단히 박혀있는 고정된 물질이다. 무거운 콘크리트와 벽돌, 혹은 목재로 이루어진 공간은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물리적 안식처가 되어준다. 하지만 전 세계 현대 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서도호 작가에게, 집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에게 집은 어디로든 접어서 가방에 넣어 들고 다닐 수 있는 ‘이동 가능한 기억의 옷’이자, 타국에서 나를 지켜주는 감정의 안식처다.
MMCA2026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열리는 서도호의 대규모 개인전은 국내외 미술계가 가장 뜨겁게 주목하는 전시다. 뉴욕 테이트 모던, 베니스 비엔날레, 서펜타인 갤러리 등 세계적인 무대를 누벼온 그가 자신의 작품 세계를 대대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서도호 작가는 어떻게 ‘집’과 ‘기억’이라는 사적인 주제로 전 세계 미술계를 단숨에 사로잡았을까?
[거장의 그늘을 넘어 낯선 이방인이 되기까지] 서도호 작가의 삶은 거대한 유산의 그늘을 벗어나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는 한국 현대 미술사의 거장인 서세옥(1929~2020) 화백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성북동 한옥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동양화의 선과 먹의 기운, 한국적 미학을 몸으로 익혔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탄탄대로인 길만 걸은 것처럼 보인다.
중앙일보그러나 30대 초반이던 1990년대 초, 그는 안정적인 한국을 떠나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RISD)와 예일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며, 그는 생전 처음으로 언어와 문화가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이 되었다. 타지에서 느낀 극심한 외로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그를 깊게 흔들었다. 서도호, 그의 런던 작업실에서 Credit. Nolwen Cifuentes for The New York Times하지만 서도호는 그 고통에 침몰하는 대신, 자신이 살던 성북동 한옥과 뉴욕의 아파트 공간을 줄자로 일일이 측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투명한 천을 손으로 한 땀 한 땀 재봉하여 1:1 비율의 투명한 집을 지어 올렸다. 붓과 먹을 다루던 감각이 천으로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타국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잊지 않기 위해 고향집을 옷처럼 만든 것이다.
[전 세계를 흔든 압도적 스케일, 그리고 노스탤지어]
시애틀 아트 뮤지엄 컬렉션 설치모습〈Some/One〉 (2001) /사진: 시애틀 아트 뮤지엄서도호 작가가 세계적인 스타 작가로 탄생한 것은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에 선보인 작품들이었다. 수천 개의 군인 인식표를 연결해 거대한 장군의 갑옷 형태로 만든 《군상(Some/One)》, 그리고 관람객이 딛고 서 있는 유리를 밑에서 수만 개의 아주 작은 피규어 인간들이 손을 들어 받치고 있는 《바닥(Floor)》은 서구 미술계에 강렬한 충격을 주었다. 개인주의적 시선에 익숙했던 서구인들에게 개인과 집단, 권력과 시스템 속에 가려진 정체성의 문제를 압도적인 스케일과 미친 디테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서도호의 움직이는 집들’이후 2001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선보인 '천으로 만든 집' 시리즈는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손때가 묻은 문고리, 전등 스위치, 변기와 창틀 하나까지 은사로 섬세하게 재봉된 그의 반투명한 한옥 공간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누군가의 아련한 기억이나 꿈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서울경제, 인천공항 ‘집 속의 집(2020)’특히 낯선 서양식 건물 한복판에 자신이 살던 한국의 한옥이 충돌하듯 들어앉아 있는 《집 속의 집(Home Within Home)》 연작은, 떠나온 장소에 대한 아련한 노스탤지어를 직관적으로 시각화한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노드 정원에 설치된 12m 높이의 동명 작품이 떠나는 이와 돌아오는 이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도, 그 집이 떠돌이 삶을 사는 현대인들의 보편적인 향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dohosuh studio이번 2026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은 단순히 서도호의 히트작들을 모아놓은 회고전 그 이상이다. 서울, 뉴욕, 런던 등 여러 도시를 넘나들며 쌓아온 작가의 '이주의 궤도'를 관람객이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시공간을 재구성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의 높고 넓은 공간 속에서, 서도호의 가볍고 반투명한 대형 패브릭 설치작들이 만들어낼 장관이 이번 전시의 핵심적인 관람 포인트다.
[기억을 재봉하는 유목민의 다정한 위로] 가장 사적인 노스탤지어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이 전 세계인의 가슴을 울린 비결은 단순하다. 빠르게 변화하고 어디론가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가슴속에 저마다 떠나온 집 한 채를 품고 살아가는 ‘이방인’들이기 때문이다.
2026년 여름, 국립현대미술관을 채울 서도호의 반투명한 집들 사이를 거닐며 우리는 문득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나를 지탱하는 기억의 집은 어디에 있는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기억의 실로 한 땀 한 땀 재봉해 낸 거장의 가장 단단하고 부드러운 집이 곧 우리를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