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粉食)의 도시, 대구

분식(粉食)의 도시, 대구

분식(粉食)이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뜻한다. 조선시대에는 밀가루가 귀한 식재료였기 때문에 궁중에서도 특별한 날에만 사용했다. 그러나 6.25 전쟁을 계기로 미국으로부터 밀가루가 대량 들어오고, 분식 장려 운동이 전개되면서 국수나 수제비 등 각종 분식이 식탁에 오르기 시작했다.

‘밀가루로 유명한 도시’하면 대구를 빼놓을 수 없다. 대구는 전국에서 밀가루 소비량이 가장 많은 도시 중 하나다. 제분·제면기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국수부터 시작해 만두, 떡볶이, 빵 등 갖가지 밀가루 음식이 여행객을 기다린다.



▶국수
서문시장
칼국수

서문시장 내에 위치한 칼국수 골목. 수십 개의 점포가 줄지어 있다.

풋고추와 칼국수가 함께 나온다.

대구 서문시장은 평양시장, 강경시장과 더불어 조선 3대 시장으로 불렸던 곳이다. 이곳의 명물은 칼국수다.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눌러 면을 뽑는다고 해서 ‘누른 국수’라고도 부른다. 이곳에는 5천 원짜리 칼국수를 판매하는 노점 수십 개가 일렬로 늘어서 있는 칼국수 골목이 있다. 적당한 가게를 찾아 주문을 하면 5분도 안 돼 칼국수가 나온다. 칼국수는 맑은 멸치 육수에 얼갈이배추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끓인 뒤, 깨소금을 뿌려 단순하고 깔끔한 맛이 난다. 대접에 담겨 나오는 풋고추를 쌈장에 찍어 곁들이거나, 식탁에 있는 양념장을 넣어 칼칼하게 먹는 걸 추천한다. 혼자 식사하는 손님들도 많고, 회전율이 매우 높아 사람이 많아도 금세 자리가 난다. 칼국수 이외에도 수제비, 칼제비를 판매하니 취향에 맞게 골라 보자.



지산골 가마솥국밥
육국수

대구 수성구 수성로 232, 지산골 가마솥국밥

빨간 소고기뭇국 아래 치자면이 숨어 있다.

경상도에는 국밥에 밥 대신 면을 말아 먹는 요리가 있다. 수구레국수와 육국수다. 수구레국수는 소가죽과 고기 사이의 특수 부위를 넣어 만드는 요리, 육국수는 경상도식 빨간 소고기뭇국에 면을 넣은 요리다.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은 육개장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국물 맛은 다르다. 육개장이 진하고 기름지다면, 이건 그보다 좀 더 가볍다. 또, 무가 듬뿍 들어가 있어 시원하고 개운하다. 빛깔은 새빨갛지만 그다지 맵지 않고 무의 단맛도 잘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뭉텅뭉텅 썰린 소고기와 무를 헤치면 노란색 치자 면이 나온다. 칼국수면이 아닌 소면과 중면 사이의 얇은 두께라 가볍고 개운한 국물과 잘 어울린다. 소고기뭇국은 꼭 밥과 먹어야 한다는 편견을 깨 준 곳이다.



▶떡볶이와 만두
한떡
떡볶이

대구 수성구 지산동 1272-3
맵고 진한 양념이 특징인 한떡 떡볶이.

대구는 떡볶이의 도시이기도 하다. 대를 이어 하는 떡볶이 가게가 많고, 떡볶이에 대한 애정도 남달라 매년 떡볶이 페스티벌이 열린다. 전국에 점포가 있는 유명 떡볶이 브랜드의 본점도 대구에 있다. 포털 사이트나 SNS에 ‘대구 떡볶이’를 검색하면 ‘대구 5대 떡볶이 맛집’ 같은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산역 근처 ‘한떡’은 1992년부터 영업을 이어온 떡볶이 가게다. 트럭에서 시작해 가게를 차리고, 이후 동성로에 체인점을 냈다고 한다. 떡볶이 1인분이 3천 원, 각종 튀김도 3천 원을 넘는 것이 거의 없다. 이곳의 떡볶이는 쫀득쫀득한 밀떡에 꾸덕하고 맵싹한 소스가 잘 스며들어 있다. 소스는 단맛이나 후추 맛이 없고 고춧가루와 고추장 맛이 아주 묵직하게 느껴진다. 톱톱하고 진한 편이라 튀김이나 삶은 달걀을 찍어 먹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특히 튀김은 주문 즉시 튀겨내 뜨끈뜨끈, 바삭바삭한 상태에서 먹을 수 있다. 중간 맛은 신라면 정도로 맵다. 매운 것을 잘 못 먹는다면 순한 맛을 주문하는 게 좋다.



지지납작만두
납작만두

대구 중구 남산로 81 지지납작만두

주문과 동시에 만두를 구워 낸다.

대구 하면 납작만두를 빼놓을 수 없다. 납작만두는 밀가루 피에 당면, 부추 내지는 파를 넣어 부치는 음식으로, 6.25 전쟁 이후 먹기 시작했다. 1963년 ‘미성당’에서 판매하면서 전국에 알려졌고, 지금은 대구 10미(味)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미성당을 비롯해 대구에는 납작만두를 파는 곳이 참 많다. 떡볶이집에서도 사이드 메뉴로 납작만두를 판다. 청라언덕역 4번 출구 코너에 있는 ‘지지납작만두’는 1973년부터 만두를 판매해왔다. 만두를 주문하면 눈앞에서 바로 구운 뒤 고춧가루, 파를 듬뿍 얹어 낸다. 일반적인 만두보다 소가 적다 보니 만두소 맛이 옅게 나는 밀가루 전 같다. 하지만 파와 함께 간장에 찍어 먹으면, 그 심심한 듯 고소한 맛 때문에 이상하게 자꾸 손이 간다. 군만두처럼 튀기듯 바삭하게 조리한 게 아니라 야들야들한 식감을 살려 구웠다는 점도 독특하다. 만두 자체의 존재감이 그리 강하지 않은 편이라, 떡볶이나 쫄면처럼 소스 맛이 진한 요리에 두루 어울릴 듯하다.



▶간식
제일콩국
콩국

대구 중구 남산로6안길 47
대구 콩국. 율무차에 튀김을 넣어 먹는 듯한 독특한 맛이 특징이다.

대구에 화교가 정착한 것은 1905년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 콩국은 이들이 만들어 먹었던 또우장(콩물)과 요우티아오(꽈배기 같은 튀김)에서 영향을 받은 음식으로, 뽀얀 콩국에 찹쌀 튀김이나 밀가루 튀김을 넣어 먹는다. 대구에는 제일콩국, 세연콩국, 대한콩국, 남문콩국처럼 콩국으로 유명한 가게가 여럿 있다. 그중 후기가 가장 많았던 제일콩국을 방문했다. 상호명과 같은 이름의 ‘제일콩국’은 뜨끈한 콩물에 찹쌀과 밀가루 튀김을 반반 넣어주고, ‘찹쌀콩국’은 찹쌀 튀김만 넣어준다. 콩국은 간이 거의 되어있지 않아 처음엔 좀 밍숭맹숭하다. 테이블마다 소금과 설탕이 있으니, 맛을 봐 가며 간을 맞추면 된다. 밀가루 튀김은 금방 풀어져 부드러운 것 빼고는 이렇다 할 식감이 없는 반면, 찹쌀 튀김은 콩물을 가득 머금어도 끝까지 쫀득쫀득하다. 혹시 이곳에 방문할 계획이 있다면 제일콩국보다는 찹쌀콩국을 권하고 싶다. 맛은 두유보단 콩의 고소함이 더해진 율무차에 가깝다. 국물은 콩국수보다 묽어 훌훌 넘어간다. 따뜻하고 담백한데, 꽤 든든해서 아침이나 간식으로 좋다



삼송빵집
통옥수수빵

대구 수성구 수성못2길 26 삼송 1957
삼송빵집의 스테디셀러인 통옥수수빵.

대전에 성심당이 있다면, 대구에는 1957년부터 영업 중인 삼송빵집이 있다. 스테디셀러는 통옥수수빵. 겉면은 아주 부드러운 소보로 빵 같은데, 속에는 옥수수와 크림이 들어있다. ‘통옥수수빵’이라는 이름답게 옥수수 알이 통째로 들어있어 식감이 좋다. 옥수수 크림 맛은 마요네즈와 설탕을 듬뿍 넣어 만든 콘치즈와 비슷하다. 오리지널 통옥수수빵 이외에 먹물, 칠리, 와사비 통옥수수빵도 판매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맛있었던 건 와사비 통옥수수빵. 빵이 달다 보니 물리기 쉬운데, 고추냉이 특유의 알싸한 매운맛이 은은하게 느껴진다. 옥수수와 함께 햄, 채소가 들어있는 먹물 통옥수수빵은 든든해서 식사 대용으로도 괜찮다.


김보미

김보미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혼행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