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크닉 《COMPANY World Affair — 온 세상 만들기의 비밀을 찾아서》

[파란 작업복의 사람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건 작품이 아니라 사람이다. 안내 직원들이 전부 같은 파란색 점프슈트를 맞춰 입고 있다. 등짝에는 "COMPANY WORLD AFFAIR"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박혀 있다. 보는 순간 "잉? 전시 직원들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데, 보면 볼수록 귀엽다. 이 옷을 보는 순간부터 이미 전시가 시작된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

나는 배경을 거의 모르고 갔다. "헬싱키 디자인 스튜디오 20년을 편집한 전시"라는 한 줄만 가진 채 회현동 피크닉에 올랐다. 처음 든 생각은 솔직히 "어, 이거 웬 세계 공예품 모음전이지?"였다. 러시아 인형이 있고, 핀란드 니트가 있고, 한국 고무신이 있고, 일본 연이 있다. 박물관 같은 질감. 그러다 한쪽에 놓인 빈티지 전화 수화기를 집어 들었는데, 거기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물건은 러시아 세묘노프라는 마을에서, 기차를 열흘 타고 들어간 곳에서 만든 거예요." 그 순간부터 전시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헬싱키의 '예술 탐정 사무소']
콤파니(COMPANY)는 한국인 아무 송(Aamu Song)과 핀란드인 요한 올린(Johan Olin)이 2000년에 만든 디자인 스튜디오다. 두 사람은 부부다. 아무 송은 서울대 산업디자인과를 나와 1998년 헬싱키로 건너가 알토대학교에서 요한 올린을 만났다. 홈페이지에는 자기들 소개를 이렇게 써 두었다. "우리는 예술가이자 디자이너로 일합니다 — 사실 탐정에 더 가깝지만요." 이 한 줄이 스튜디오 전체를 설명한다. 홈페이지도 진짜 귀여운데, 하위 메뉴에 "Rejected works(거부된 작업들)"까지 따로 있다. 탄생하지 못한 물건들까지 기록해 두는 태도가 어쩐지 뭉클하다.

2007년부터 이들은 세계 곳곳을 돌며 "시크릿(Secrets)"이라는 연작을 이어 왔다. 말 그대로 그 나라의 "비밀"을 찾아 헤매는 프로젝트다. 핀란드에서 시작해 한국, 러시아, 에스토니아, 일본, 멕시코, 페루, 파키스탄, 인도까지, 지금껏 열 나라가 넘는다. 피크닉의 이번 전시는 그 20년을 한자리에 편집해 서울로 불러온 자리다. 전시가 성사된 계기도 작은 우연이었다. 피크닉 김범상 디렉터가 러시아 여행 중 헬싱키에 잠깐 들렀다가, 키아스마 현대미술관에서 콤파니의 첫 시크릿 전시 —《Secrets of Finland》(2007) — 를 우연히 마주쳤다고 한다. 그날의 웃음이 20년이 지나 서울까지 따라온 셈이다.
[핀란드 — '쓸데없는데 귀여운' 것들]

그 출발점이 된 핀란드 섹션에서, 나도 처음 웃음이 터졌다. 눈구멍만 뚫린 울 니트 복면이 놓여 있다. 이름은 《Secret Eyes》. 그 옆에는 회색 펠트 수염 마스크 《Partanen / Beardwear》가 걸려 있다. 설명엔 이렇게 적혀 있다. "수염을 한번 길러 보고 싶었던 모든 이를 위해." 진짜 쓸데없는데 귀엽고 웃기다. 더 안쪽엔 네 조각 짜리 자작나무 퍼즐 《Small Hug Puzzle》. 서로를 끌어안은 사람 모양 네 개가 맞물려 하나의 형태를 이룬다. 이건 그냥 다정하다.

세 오브제 모두 핀란드 현지 장인 손에서 나왔다. 니트 복면은 마이피 케톨라가 헬싱키 살라카우파(콤파니의 매장, "비밀의 가게"라는 뜻)에서 떴고, 수염 마스크는 헬리야 헤이스카가 헬싱키에서 만들었으며, 포옹 퍼즐은 요트사의 하파레푸 공방에서 깎았다. 상품 설명에 만든 사람 이름이 또렷이 박혀 있다. 콤파니의 물건은 "유용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자유롭다. 대신 "웃음이 나야 한다", "다정해야 한다"는 자기 규율이 있다. 이게 이 스튜디오의 출발점이다.
[한국 — 2008년 비빔백에서 2026년 목탁까지]

한국 섹션도 흥미롭다. 2008년 콤파니가 《Secrets of Korea》를 밀라노 가구박람회에서 처음 공개했을 때 만든 물건은 《BibimBag / 비빔백》이다. 흰 캔버스 가방 바깥에 빨강·파랑·노랑·분홍·하늘색 작은 주머니가 다섯 개 붙어 있다. 딱 흰 밥 위에 나물이 올라간 모양새. 비빔밥을 가방으로 그대로 번역한 물건이다. 한국을 한복이나 청자로 번역하지 않고, 그릇 하나 안에 여러 재료가 공존하는 밥상의 감각으로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이번 피크닉 전시를 위해 새로 만든 작업도 공개됐다. 그중 하나가 목탁이다. 경북 영천에서 3대째 목탁을 깎는 장인과 협업한 것인데, 1년 말린 나무로 지금 버전을 만들었고, 다음엔 2~3년 말린 나무로 더 좋은 버전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가 함께 붙어 있다. 전시장에는 실제 두드리는 소리까지 설치되어, 눈보다 귀로 먼저 한국이 도착한다.

18년 전 한국인 디자이너가 밀라노에서 자기 나라를 비빔밥 가방으로 번역해 세계에 내놓은 뒤, 여러 나라를 돌고 돌아, 마침내 고향 목탁 장인 앞에 돌아와 앉았다. 이 서사가 한 전시 안에 고스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이 오래 남았다.
[러시아 — 마트료시카의 해부학]

러시아 섹션은 정반대 방향의 유머다. 러시아 하면 당연히 마트료시카. 그런데 콤파니의 마트료시카는 우리가 아는 농부 아주머니 캐릭터가 아니다. 《Sea Matryoshka》는 고래 → 물개 → 펭귄 → 물고기 → 오징어 → 해삼 → 플랑크톤으로 이어지는 심해 먹이사슬이다. 큰 고래 안에 자기가 먹는 것들이 차례로 들어앉아 있다.

《Onion Matryoshka》는 말 그대로 양파의 해부학이고, 《Fruit Matryoshka》는 파인애플 안에 포도·배·사과·귤·살구가 들어 있다. 모든 인형은 러시아 세묘노프(Semenov) 마을 장인들이 린덴 나무를 선반으로 깎아 만든다. 이 마을에 닿기 위해 콤파니는 기차를 열흘 타고 내려갔다고 한다. 그들이 러시아에서 한 일은, 마트료시카를 지우는 게 아니라 "포개진다"는 형식만 남긴 채 내용을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갈아 끼운 것이다. 전통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전통을 낯설게 만드는 방식. 이게 콤파니의 재해석이 세련된 이유다.
[일본 — 하늘로 올라가는 가족]

일본 섹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Secrets of Japan》(2015) 컬렉션의 연(凧) 시리즈였다. Sun Kite(해)와 Cloud Kite(구름), 그리고 Mama Bird Kite · Papa Bird Kite · Baby Bird Kite — 엄마 새 · 아빠 새 · 아기 새가 각자 연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한 가족의 새들이 나란히 하늘에 떠 있는 장면을 상상하면 자꾸 웃음이 난다. 일본을 기모노나 와비사비로 번역하지 않고, 어린이 손에 쥐여 주고 싶은 하늘의 가족이라는 감각으로 번역한 것이다. 한국 섹션의 비빔백이 "그릇 안에서 공존하는 것"이었다면, 일본 섹션의 연은 "하늘로 함께 올라가는 것"이다. 나라의 풍속을 엉뚱한 각도에서 포착하는 이들의 감각이 선명해지는 지점.
[AI 시대에 왜 '손'으로 돌아가는가]
지금 디자인이라는 단어는 점점 '이미지 생산'과 구분이 잘 안된다. AI는 1초에 수십 장의 "귀여운 마트료시카"를 뽑아 줄 수 있다. "핀란드 느낌 수염 마스크"도, "비빔밥 콘셉트 가방"도 프롬프트 한 줄이면 수십 개가 뜰 것이다. 결과물은 폭발적으로 많아지는데, 만들어지는 과정의 질감은 점점 보이지 않는다.
콤파니는 정확히 그 반대로 간다. 가장 싼 생산지 대신 가장 느리고 가장 비효율적인 길을 택한다. 기차를 열흘 타고 들어간 마을에 가서, 장인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음악을 듣고, 모눈종이에 수채화 드로잉을 그려 "이런 걸 함께 만들어 보지 않을래요?"라는 제안서처럼 건넨다. 전시장 곳곳에 그 모눈종이 드로잉이 걸려 있는데, 전문가의 도면이 아니라 여행자의 스케치 같은 그림들이 묘하게 따뜻하다.

콤파니가 남기는 것은 '관계의 풍성함'이다. 물건 하나하나에 누가, 어디에서, 어떤 손으로 만들었는지가 또렷하다. 영천의 3대 목탁 장인, 세묘노프의 선반 장인들, 요트사의 하파레푸 공방, 헬싱키의 헬리야 헤이스카. 이 이름들이 그냥 크레딧이 아니라 물건이 가진 시간과 관계의 밀도로 읽힌다. AI 덕에 뭐든 즉석에서 뽑아내는 게 당연해진 요즘, "오래 걸려 만들어진 물건이 가진 밀도"를 오랜만에 만나 새로운 기분이었다.
[‘만들기’라는 가장 느린 동사]
요즘 우리가 '만든다'고 할 때, 그건 프롬프트를 쓰거나 발주서를 보내거나 클릭하는 일에 더 가까워졌다. 그런데 콤파니의 "만들기"는, 여전히 손으로 깎고, 뜨개질하고, 두드리고, 다듬는 그 오래된 동사 그대로다. 영 쓸데없는 수염 마스크는 헬싱키에서 헬리야 헤이스카의 손에서 나왔고, 비빔백은 서울에서 그려져 도쿄 장인의 바느질을 거쳤으며, 양파 마트료시카는 세묘노프 마을의 선반 위에서 깎였고, 목탁은 영천에서 3대째 이어지는 칼끝에서 깨어났다. 이 물건들의 공통점은 '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공예를 잘 몰라도 괜찮다. 오히려 모르고 가서 수염 마스크 앞에서 한 번, 엄마 새 아빠 새 연 앞에서 또 한 번, 비빔백 앞에서 또 한 번 피식 웃고 나오는 게 이 전시의 정석이다. 나올 즈음엔 사물들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다정한 물건 뒤에는 반드시 다정하게 만든 누군가의 손이 있었다는 사실 — 이 전시가 남기는 가장 좋은 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