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약장, 다이아몬드 해골 — 데이미언 허스트의 35년

상어, 약장, 다이아몬드 해골 — 데이미언 허스트의 35년

데미안 허스트의 어머니는 그의 다음 작업 계획을 들으며, 한숨 같은 문장을 내뱉었다고 한다. "For the love of God, what are you going to do next?" 굳이 우리말로 옮기면 "세상에, 너 다음엔 또 뭘 하려고 그러니?" 정도가 될 것이다. 영국 리즈에서 자란 이 반항기 가득한 아들은 열여섯 살 때 친구의 시체 안치소에 따라가 잘린 머리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고, 스물세 살에는 낡은 부두 창고에 학생들을 모아 직접 전시를 기획했고(그 전시가 영국 현대미술의 지형을 바꾸었다), 1991년에는 거대한 상어를 통째로 포름알데히드에 절여 유리관에 넣어버렸다. 어머니의 그 짧은 문장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을지 짐작이 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허스트는 사람의 두개골을 백금으로 주조하고 다이아몬드 8,601개를 박아 넣은 작품을 발표하면서 제목으로 어머니의 바로 그 입버릇을 가져다 썼다. 〈신의 사랑을 위하여 For the Love of God〉, 2007. 엄마의 한숨이 작품 제목이 되는 일, 이게 데이미언 허스트라는 사람이다.지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는 그의 첫 아시아 대규모 회고전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가 열리고 있다. 35년에 걸친 작업 세계가 네 부로 나뉘어 펼쳐져 있는데, 어느 작품 앞에 서든 결국 같은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죽음, 그리고 죽음을 못 견뎌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들 — 종교, 의학, 예술, 자본 — 사이의 묘한 거리감 말이다.



[유리 너머에서 본 죽음]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Images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잠깐, 한 장의 흑백 사진 이야기부터 하고 싶다. 〈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 With Dead Head〉(1991). 사진 속에는 두 개의 머리가 있다. 하나는 열여섯 살 허스트의 머리, 활짝 웃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미생물학을 공부하던 친구가 안내해 들어간 시체 안치소의 잘린 머리, 표정 없이 늘어져 있다. 두 얼굴 사이의 거리는 손바닥 하나 정도. 작가는 훗날 회고했다. "그때 속으로는 공포에 질려 있었다." 10년 뒤 그는 이 사진을 첫 개인전에서 거대하게 인화해 걸었다. 자기 예술의 기원이 죽음에 대한 응시와 그 앞에서 짓는 어색한 미소에 있다는 것을, 그는 처음부터 굳이 숨기지 않았다.

Damien Hirs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installation view. All rights reserved, DACS Images

이 사진의 기억을 들고 지하 1층 전시실로 내려가면 그 유명한 상어가 기다리고 있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1991). 가로 5미터가 넘는 유리관 안에, 4미터 가까운 호랑이상어 한 마리가 푸르스름한 포름알데히드 속에 떠 있다. 입을 살짝 벌린 채. 사진으로는 수십 번 본 작품인데, 실제로 마주 서니 묘한 감정이 든다. 무섭다기보다는 어쩐지 미안하다. 이 짐승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살아있어 보이고, 동시에 우리 손이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거리에 갇혀 있다.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Images

허스트가 평생 반복해서 사용한 장치가 바로 이 유리관이다. 〈천 년 A Thousand Years〉(1990)에서는 두 개의 유리 칸을 만들고 한쪽에는 잘린 소머리, 다른 한쪽에는 전기 살충기를 넣어두었다. 소머리에서 부화한 파리들이 살충기로 빨려 들어가며 죽는다. 부화하고 또 죽고, 부화하고 또 죽고. 살충기 옆에는 거대한 주사위처럼 점이 박힌 정육면체가 놓여 있는데, 여섯 면 모두에 1이 찍혀 있다. 무엇을 던져도 같은 결과, 죽음이 나온다는 고약한 농담이다. 관람객은 이 모든 것을 유리 너머로 본다. 냄새도 없고, 위험도 없고, 손을 뻗어 멈출 수도 없다. 허스트는 관람객에게 죽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얼마나 안전한 거리에서만 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약장은 어떻게 제단이 되는가]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Images

3부로 넘어가면 톤이 살짝 바뀐다. 푸른 수조와 시체 대신, 깔끔하게 정렬된 약병들이 등장한다. 〈약장 Sinner〉(1988)은 허스트가 골드스미스 대학 시절 처음 만든 '약장 캐비닛' 연작의 첫 작품이다. 그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빈 약병과 약 포장재를 진열장에 차곡차곡 채워 넣은 것.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에서 받아온 이 약품들이 할머니에게는 일종의 절대적 믿음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서 허스트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약장이 곧 제단이라는 사실. 자기 한 몸을 의탁하는 작은 사원이라는 사실.

출처: dezeen.com

이 발견 위에 그의 작업 절반이 서 있다. 〈알약 캐비닛〉, 〈약장 Medicine Cabinets〉 연작, 그리고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런던에서 실제로 운영했던 '약국(Pharmacy)' 레스토랑까지. 이번 전시에는 그 레스토랑의 미술관 디스플레이 버전이 들어와 있다. 의약품 상자가 가지런히 정렬된 진열장, 네 가지 원소를 상징하는 약병들이 줄지어 놓인 벽. 처음 들어선 관람객은 잠시 자기가 어디에 와 있는지 헷갈린다고 한다. 약국 같기도, 미술관 같기도, 무슨 모던한 성당 같기도 한 공간이다. 허스트 본인은 이렇게 적었다. "예술은 약 같다.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의학은 믿으면서 예술은 믿지 않는다는 사실이 늘 놀랍다.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지 않은 채 말이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이 전시의 후원사가 한미약품과 한미사이언스라는 것이다. 약과 믿음에 관한 농담을 35년째 반복해 온 작가의 전시를, 한국에서 가장 큰 제약회사가 후원한다. 허스트가 이 매칭을 알았다면 분명 좋아했을 것이다. 그의 작업은 본래부터 이런 순환을 즐겨왔으니까. 종교가 의학으로, 의학이 예술로, 예술이 다시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며 모든 것이 모든 것의 거울이 되는 그 어지러운 순환. 티켓값을 내고 들어가 '약국' 진열장 앞에 서면, 우리는 약을 사러 온 것인지 아름다움을 사러 온 것인지 잠깐 헷갈린다. 허스트는 아마 그 헷갈림이 자기 작품의 완성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Images

이 모든 흐름의 정점에 처음 말한 그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가 있다. 18세기에 살았던 한 사람의 실제 두개골을 본떠 백금으로 주조하고,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았다. 영원함의 상징(다이아몬드)과 죽음의 상징(해골)을 한 자리에 포갠 셈인데, 이 작품 앞에 서면 사람들은 묘하게 말이 없어진다. 너무 아름다워서일까, 너무 비싸서일까, 너무 불경해서일까. 아마 셋 다일 것이다. 허스트는 죽음을 견디려는 인간의 모든 몸짓 — 신앙, 과학, 보석, 예술 — 을 한 덩어리로 뭉쳐서 우리에게 돌려준다. 자, 이게 너희가 죽음 위에 바르는 것들이야. 한번 봐봐. 꽤 반짝거리지?



[규칙과 우연 사이의 농담]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Images

전시를 보다 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허스트는 죽음만 뒤집는 게 아니라, '예술가'라는 역할 자체도 자꾸 뒤집는다. 〈스팟 페인팅 Spot Painting〉 연작은 "같은 색은 한 번만, 간격은 일정하게"라는 규칙 하나로 만들어진다. 작가의 손맛도, 표현도, 감정도 없다. 일종의 알고리즘이다. 반대로 〈스핀 페인팅 Spin Painting〉은 회전하는 캔버스 위에 물감을 쏟아붓는 작업으로, 결과는 작가도 통제할 수 없다. 한쪽은 완전한 규칙, 다른 쪽은 완전한 우연. 이 두 연작이 한 작가의 손에서 동시에 나왔다는 사실이 묘하다. 허스트는 일찌감치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사라져도 그림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작가는 누구인가. 30년이 지난 지금 이 질문은 다른 옷을 입고 우리 앞에 다시 와 있지만, 답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다.



[작업실에 남은 한 사람]

전시의 마지막 4부는 허스트의 런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공간이다. 〈리버 페인팅〉 연작이 진행 중인 현장. 페인트가 묻은 작업복, 쓰던 붓, 미완성 캔버스들이 전시장 한구석을 채운다. 그곳에는 죽음도, 약병도, 다이아몬드도 없다. 그저 한 사람이 매일 나와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는 흔적만이 있다. 나는 이 공간이 가장 정직하게 느껴졌다. 그 모든 거대한 도발과 화려한 아이러니 뒤편에, 결국 한 남자가 매일 아침 작업실에 나와 붓을 든다. 어머니가 또 한숨을 쉴 만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 Damien Hirst and Science Ltd. All rights reserved, DACS Images

전시 제목으로 돌아오자.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처음 들으면 허무주의 같지만, 한 바퀴 돌고 나오면 의외로 다정한 문장이다. 우리가 부여잡은 모든 믿음이 흔들리는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라면, 적어도 그 위에서 무엇이든 시도해 볼 자유는 있다는 뜻이니까. 데이미언 허스트는 그 자유를 35년 동안 조금 과하게 누린 사람이다. 어머니의 그 한숨이 어떤 한숨이었을지, 전시장을 나서면서 조금 알 것 같았다. 한숨인 동시에, 어쩌면 아주 작은 자랑이었을지도 모른다.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3, 4, 5전시실·서울박스·MMCA스튜디오, 2026.3.20. — 6.28.


김지윤

김지윤

취향이 담긴 물건과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