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던 업무 도구의 미래

우리가 쓰던 업무 도구의 미래

요즘 회사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단어는 단연 AI다. “AI 써봤어요?”라는 질문이 회의에서 자연스럽게 오가고, 누군가는 AI 덕분에 업무 시간을 절반으로 줄였다고 말한다. 또 다른 사람은 AI가 보고서를 대신 써주고 데이터를 분석해 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만 뒤처지는 거 아닐까?” 요즘 기술 업계에서는 이런 감정을 AI FOMO(Fear of Missing Out)라고 부른다. 남들보다 AI를 늦게 쓰면 경쟁에서 밀릴 것 같은 불안감이다. 흥미로운 건 이 불안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회사들도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

출처: business insider
최근 메타(Meta)는 직원 성과 평가에 AI 활용 능력을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직원이 AI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사용해 생산성과 결과를 높였는지가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AI를 얼마나 빠르게 조직에 도입하고 활용하느냐가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는 셈이다.
출처: google
사실 많은 회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수많은 디지털 도구에 의존해 일해왔다. 영업팀은 고객 정보를 관리하기 위해 Salesforce 같은 CRM을 사용하고, 마케팅팀은 광고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분석 대시보드를 열어본다. 회사 메신저로는 Slack이나 Teams 같은 협업 툴을 쓰고, 문서는 Google Docs나 Notion 같은 서비스에 쌓인다. 디자이너는 Figma로 화면을 만들고, 개발자는 GitHub로 코드를 관리한다.
출처: notion
이런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구독형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컴퓨터에 설치하는 대신 인터넷으로 접속해 매달 사용료를 내는 방식이다. 기술 업계에서는 이런 모델을 SaaS(Software as a Service)라고 부른다. 지난 20년 동안 SaaS는 기업 생산성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였다.
출처: adobe
하지만 최근 들어 이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실제로 AI가 등장한 이후 일부 소프트웨어 기업의 주가는 크게 하락했다. Salesforce나 Adobe 같은 대표적인 SaaS 기업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주가가 20% 이상 하락하기도 했고, 일부 SaaS 기업은 30% 이상 떨어지기도 했다. 투자자들이 갑자기 소프트웨어 기업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AI가 SaaS의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고객 데이터를 정리하려면 CRM 프로그램을 열어 직접 입력해야 했다. 마케팅 성과를 분석하려면 데이터 분석 도구를 열어보고, 보고서를 만들려면 문서 프로그램을 다시 열어야 했다. 업무 하나를 끝내기 위해 여러 SaaS 도구를 오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AI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번 달 고객 데이터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만들어줘.” AI는 CRM 데이터를 읽고, 분석하고, 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다. 예전에는 각각 다른 소프트웨어가 담당하던 작업이 AI 하나로 묶이는 순간이다. 그래서 요즘 기술 업계에서는 이런 말이 자주 나온다.

“SaaS는 도구였지만, AI는 노동이다.” SaaS는 우리가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였다. 하지만 AI는 그 일을 직접 수행하려 한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출처: ardas-it.com
또 하나의 변화는 SaaS 피로(SaaS overload)다. 많은 기업들은 이미 너무 많은 SaaS를 사용하고 있다. 고객 관리, 마케팅 자동화, 프로젝트 관리, 데이터 분석, 협업 툴 등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수십 개의 서비스를 동시에 구독하기도 한다. 비용도 문제지만, 데이터가 여러 시스템에 흩어지고 업무 흐름도 복잡해진다.

이 상황에서 AI가 등장했다. AI 하나가 여러 도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훨씬 단순한 구조가 된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은 SaaS 도구를 줄이고 AI 중심의 업무 환경을 실험하고 있다.

이 변화는 새로운 개념도 만들어냈다. RaaS(Results as a Service)라는 모델이다. SaaS가 “도구를 제공합니다”라면, RaaS는 “결과를 제공합니다”에 가깝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마케팅 자동화 소프트웨어를 구독해 광고를 직접 관리해야 했다면, 이제는 AI가 광고를 운영하고 성과 보고서까지 만들어준다. 사용자는 도구를 쓰는 대신 결과만 받는다.

그렇다면 정말 SaaS의 시대는 끝나는 걸까? 많은 전문가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SaaS가 사라지기보다는 역할이 바뀔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한다. 앞으로 사람은 AI와 대화하며 일을 지시하고, SaaS는 그 뒤에서 데이터를 저장하고 시스템을 운영하는 인프라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사람은 인터페이스로써 AI를 사용하고, SaaS는 보이지 않는 백엔드가 되는 구조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 사건이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이어진 소프트웨어 산업 구조가 다시 설계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쓰느냐”가 회사의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AI에게 어떤 일을 맡기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에는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이 작은 불안, 바로 AI FOMO가 자리하고 있다.

김지윤

김지윤

취향이 담긴 물건과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