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이 에키벤 탐험기

간사이 에키벤 탐험기

일본에는 기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는 ‘에키벤’ 문화가 있다. 전국적으로 판매되고 있는 에키벤 종류만 2,500여 개에 달하는데, 지역마다 유명한 도시락이 다르다. 철도 여행객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도시락을 구입할 수 있어, 일본에는 에키벤만 리뷰하는 블로거들도 있다. 교토를 여행하면서 간사이 지역을 대표하는 에키벤 네 종류를 맛봤다.

교토역사 내 에키벤 가게.

고베
힛파리타코메시

이번 여행에서 꼭 먹고 싶었던 에키벤은 1903년에 설립돼 100년 넘게 에키벤을 판매해 온 ‘아와지야’의 ‘힛파리타코메시’였다. 1998년 아카시 해협 대교 개통을 기념해 고베의 명물인 문어를 넣어 만든 것인데, 나무나 플라스틱 용기가 아닌 문어가 새겨진 작은 도기를 사용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도자기 용기는 문어를 잡을 때 사용하는 항아리를 본떠 만들었다.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버전, 헬로키티 버전 등 다양한 한정판 용기를 선보이고 있어 현지 수집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에키벤 중 하나다.

구입처: Tabi-bento (Kyoto, Shimogyo Ward, Higashishiokojicho, JR京都駅西口ラッチ 内)
여러 가지 재료가 도기에 듬뿍 들어있다.

용기 자체가 도자기다 보니 다른 에키벤보다 묵직하다. 뚜껑 역할을 하는 종이와 필름을 벗겨내면 간장으로 양념한 밥 위에 문어와 장어, 달걀 지단, 당근, 죽순, 버섯 조림 등이 소담스럽게 올라가 있다. 전반적으로 간장 베이스의 일본 음식에서 느껴지는 달콤하고 짭짤한 맛이 두드러진다. 도시락 위에 올라가 있는 문어는 질기거나 딱딱하기 마련인데, 아주 부드럽게 조려내 먹기 편하다. 다만 항아리가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모양이라 양 조절을 잘못하면 자칫 반찬 없이 맨밥만 먹게 될 수도 있다. 처음부터 내용물을 적당히 섞어 가면서 반찬과 밥을 함께 먹는 걸 추천한다. 밥만 남았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항아리 맨 아래쪽에 동그란 모양의 문어 튀김이 숨어 있다. 어떻게 하면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용기째로 전자레인지에 넣어도 괜찮기 때문에, 되도록 따뜻하게 먹는 것을 권하고 싶다. 차갑게 보관하면 밥이 금세 딱딱해져 본래의 맛을 충분히 즐기기 어렵다. 뜨거운 물을 부으면 오차즈케처럼 변한다고 하니, 중간부터 변주를 줘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기념품으로 용기를 가져간다면, 도시락 가게에서 문어 모양의 뚜껑을 판매하는 경우가 있으니 눈여겨보도록 하자.



나라
카키노하즈시


기차 안이나 야외 활동 시, 냄새가 심하지 않으면서 손을 더럽히지 않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고 있다면 ‘카키노하즈시’가 제격이다. 카키노하즈시는 나라 지역에서 만들어진 초밥의 일종이다. ‘감잎 초밥'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초밥을 감잎에 싸서 눌러 만들었다. 냉장 설비가 없던 시절, 행상인들이 소금이 뿌려진 생선을 밥 위에 올린 뒤 감 잎으로 감싸 휴대하고 다니던 것에서 유래했다. 감잎에는 살균 효과가 있어 초밥이 마르지 않고 오랜 시간 보존된다. 밥 위에 올라가는 생선으로는 고등어, 연어, 도미 등이 사용된다. 먹을 때는 감잎을 벗겨낸다.

구입처: Kakisen (Kyoto, Shimogyo Ward, 塩小路下ル東塩小路町 地下2階食品売場)

새콤한 맛이 두드러지는 카키노하즈시.

카키노하즈시는 재료(네타) 양보다 밥(샤리) 양이 많다. 초밥 하나하나가 도시락 같은 느낌이라, 두어 개 먹으면 꽤 든든하다. 눌러 만든 초밥이어서 그런지 손으로 쥐어 만든 초밥보다 샤리가 쫀득쫀득하다. 생선은 약간 차진 식감이고, 흔히 먹는 초밥보다는 새콤하고 단맛이 두드러진다. 감잎으로 감싸 두다 보니 쓴맛이나 떫은맛이 초밥에 배어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연잎밥을 열었을 때 느껴지는 기분 좋은 향긋함에 가깝다. 간장 없이도 간은 딱 맞다. 비린 맛이 심하지는 않지만, 평소 생선회를 잘 못 먹는다면 고등어보다는 연어나 도미 초밥을 먼저 먹어 보는 걸 추천한다. ‘카키센’ 같은 카키노하즈시 전문점에서는 역사 내 에키벤 가게와는 달리 고등어, 연어, 도미, 새우 등 원하는 초밥 종류를 고를 수 있어 선택 폭이 비교적 넓다.



탄고
바라즈시


교토의 탄고 지방에는 ‘바라즈시’라는 향토 요리가 있다. 각종 재료를 밥 위에 흩뿌리듯 얹는 치라시스시의 일종인데, 커다란 용기에 만든 뒤 생일처럼 경사스러운 날에 여러 사람들과 나눠 먹는다. 주로 집에서 만들어 먹는 요리인 바라즈시를 상품화해 판매하기 시작한 곳은 탄고 지역의 ‘토리마츠’다. 지금은 JR 교토역과 교토 이세탄 백화점 등에 매장이 있다.

구입처: Torimatsu (Promotion Space, Higashishiokojicho, Shimogyo Ward, Kyoto)

디저트보다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바라즈시. 상당히 든든하다.

바라즈시는 네모 모양의 도시락통에 담겨 있다. 가늘게 채썬 노란색 달걀 지단 위에 초록색 완두콩, 갈색 버섯, 분홍색 어묵과 생강까지 다양한 색이 어우러져 있어 웬만한 디저트보다 더 화려하다. 밥과 밥 사이, 그리고 도시락 맨 윗부분에 수분을 날려 가며 볶은 고등어가 들어가 있어 꼭 밥으로 만든 시루떡을 보는 느낌이다. 비비지 않고 젓가락으로 그대로 떠먹으면 짭짤하게 맛을 낸 고등어와 식초를 넣은 밥, 달콤하게 조린 버섯을 비롯한 각종 고명이 입안에서 기분 좋게 어우러진다. 고슬고슬하게 볶아 입안에서 부스러지는 고등어의 식감도 좋고, 생강채가 산뜻하게 밸런스를 맞추는 점도 마음에 든다. 도시락 크기가 크지는 않지만 밥이 2단으로 쌓여 있어 매우 든든하다. 차조기나 유자가 들어간 버전도 있으니 취향에 따라 골라 보자.



히메지
오카메벤또


히메지역을 대표하는 ‘오카메벤또’는 1888년 창업한 도시락 가게 ‘마네키’의 스테디셀러 중 하나다. 오카메란 넓은 이마, 낮은 코, 가느다란 눈, 둥근 얼굴이 특징인 일본 전통 여성 가면으로, 행복과 행운을 상징한다. 도시락 뚜껑에는 ‘히메지를 지나면, 오카메가 맞아 준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구입처: Tabi-bento (Kyoto, Shimogyo Ward, Higashishiokojicho, JR京都駅橋上南北自由通)
귀여운 패키지에 반찬이 가득 담겨 있는 오카메벤또.

오카메벤또는 이번에 소개할 에키벤 중 크기가 가장 클 뿐 아니라 반찬 가짓수도 상당하다. 나무젓가락과 물티슈가 들어가고 남을 만큼 넉넉한 사이즈의 도시락통에 해산물 베이스의 육수로 지은 밥을 깔고, 소, 닭, 새우, 문어, 장어, 버섯, 달걀, 죽순, 생강 등 다종다양한 재료로 만든 반찬 10여 가지를 담았다. 반찬 종류가 많다 보니 재료별로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데, 전체적인 맛은 간장, 설탕, 미림을 넣고 조린 듯 비슷비슷하다. 다만, 채소류와 새우는 담백하게 조리해 밸런스를 맞췄다. 이 중 밥과 잘 어울렸던 건 반찬답게 짭짤한 맛이 강한 바지락 조림과 새콤한 새우였다. 약 1,300엔에 다양한 반찬과 밥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인 도시락이다. 달착지근한 맛이 강해 깔끔한 차를 곁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김보미

김보미

맛있는 음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는 혼행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