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흙은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신상호 전시를 보고

도자기 전시라고 하면 보통 찻잔이나 항아리를 떠올리게 된다. 단정한 백자나 고풍스러운 청자처럼, 조용하고 정갈한 물건들.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는 신상호 작가의 전시를 보고 나면 도자기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말 모양의 거대한 조각이 서 있고, 벽에는 타일로 이루어진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다. 어떤 작품은 조각처럼 보이고, 또 어떤 작품은 회화처럼 보인다. 처음 몇 분 동안은 “이게 정말 도자기 전시가 맞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신상호: 무한변주」다. 제목처럼 이 전시는 흙이라는 하나의 재료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전시를 보다 보면 도자기라는 단어에 대한 고정관념이 조금씩 깨진다. 도자기라고 하면 보통 그릇이나 항아리를 떠올리지만, 여기서는 흙이 전혀 다른 형태로 등장한다.

신상호 작가는 1960년대부터 도자를 만들어온 한국 현대 도예의 대표적인 작가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도자를 만들었다. 이천에서 장작 가마를 운영하며 흙을 빚고, 말리고, 가마에 넣어 굽는 전통적인 과정을 거쳤다. 도자기를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과정은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변수가 많다. 가마의 온도, 불의 세기, 흙의 상태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달라진다. 말 그대로 자연과 함께 작업하는 예술에 가깝다.

그런데 신상호의 작업은 전통적인 도자기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진다. 전시 초반부에는 비교적 익숙한 형태의 작품들이 등장한다. 항아리 같은 형태가 보이고, 표면에는 거칠게 새겨진 선이나 무늬가 남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전시를 보다 보면 분위기가 바뀐다. 어느 순간부터 도자기가 그릇이 아니라 조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전시장 가운데에 서 있는 말 모양 작품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도자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형태는 거칠고, 표면에는 불에 구워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가까이서 보면 질감이 살아 있고, 멀리서 보면 마치 오래된 토템처럼 보이기도 한다. 전시 설명을 읽어보니 이런 작업을 도조(陶彫)라고 부른다고 한다. 도자와 조각을 결합한 작업이라는 뜻이다. 그릇을 만드는 대신 흙을 조형 재료로 사용한 것이다.

“도자기는 꼭 그릇이어야 할까?” 우리가 도자기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생활용품이다. 밥그릇, 찻잔, 접시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신상호의 작품은 그런 기능을 완전히 벗어난다. 전시장에 놓인 작품들은 사용하기 위한 물건이라기보다 공간을 채우는 조형물에 가깝다. 흙이라는 재료가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전시 중반부에는 또 다른 변화가 등장한다. 이번에는 도자가 건축과 결합한다. 서울 센트럴시티나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같은 건물 외벽에 설치된 도자 타일 작업이 그 예다. 작가는 이를 “불의 회화(Fired Painting)”라고 부른다. 흙으로 만든 타일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전시장에서도 이 작업을 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색면 회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작은 도자 타일들이 모여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고 있다. 캔버스 대신 벽을 사용하고, 물감 대신 흙을 사용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도자기가 작은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작업을 보고 나니 도자가 건축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느껴졌다.

전시 후반부에는 조금 예상 밖의 장면이 등장한다. 아프리카 공예품, 오래된 산업 기계 부품, 유럽 도자기 같은 다양한 물건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알고 보니 작가가 오랜 시간 동안 수집해 온 물건들이라고 한다. 신상호는 이런 물건 위에 도자를 붙이거나 서로 다른 사물을 결합해 새로운 작품을 만든다.

처음에는 왜 이런 물건들이 전시에 있는지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전시를 계속 보다 보니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조금 이해됐다. 서로 다른 문화와 시간의 물건들이 한 공간에 놓이면서 묘한 긴장감이 생긴다. 전통 공예품 옆에 산업 기계가 있고, 그 위에 도자가 얹혀 있다. 마치 서로 다른 시대가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느낌이다.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는 도자로 만든 회화 작품들이 등장한다. 멀리서 보면 추상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흙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도자기인지 그림인지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이다. 전시를 처음 들어올 때는 도자기가 조각처럼 보였는데, 마지막에 와서는 도자가 회화처럼 보인다.

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유로운 재료일지도 모른다. 보통 도자기는 그릇이나 장식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상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흙이 조각이 되고, 건축이 되고, 그림이 되는 과정을 보게 된다. 같은 재료지만 바라보는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전시는 충분히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전시 설명을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전시장 안을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이게 정말 도자기인가?”라는 질문만 떠올려도 충분하다. 아마 전시를 다 보고 나오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흙으로 이런 것도 만들 수 있구나.” 어쩌면 그 순간이 이 전시가 가장 잘 작동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이미지 출처: MMCA 홈페이지

김지윤

김지윤

취향이 담긴 물건과 이야기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