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이모가 주술회전 이야기를 했다. 이모부도, 사촌 동생도. 다들 작년엔 체인소맨을 영화관에서 봤다더라. 10년 전만 해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중고등학교 때 졸업해야 하는 오타쿠 취미로 분류됐다. '숨덕'(숨어서 덕질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2024년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일본 영화 관객 점유율은 14.4%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그 대부분이 애니메이션이었다.

[애니메이션을 보는 공간이 달라졌다]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에 접근하는 경로는 꽤 번거로웠다. 정보를 모으는 것 자체가 일이었고, 자막이 붙은 파일을 구하거나 전문 커뮤니티를 뒤져야 했다. 정보 독점이 오타쿠들의 권력이기도 했다. 이 과정을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만이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이 구조를 바꿨다. 스마트폰 하나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편의성의 문제가 아니다. 핵심은 '어디서 보느냐'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 전문 서비스인 라프텔은 월간 이용자 100만 명을 돌파할 만큼 성장했다. 넷플릭스만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전문 스트리밍인 크런치롤도 3년 만에 구독자가 세 배로 늘어 1,000만 명을 넘겼다. 하지만 라프텔이든 크런치롤이든 '덕후들의 공간'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따라붙는다. 거기서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것은 일종의 정체성 선언처럼 느껴질 수 있다.

넷플릭스는 다르다. 누구나 쓰는 플랫폼이기 때문에 거기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은 그냥 '넷플릭스를 보는 것'이다. 회사 동료에게 "나 넷플릭스에서 귀멸의 칼날 봤는데 괜찮더라"고 말하는 일에는 아무런 사회적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것이 넷플릭스가 애니메이션 대중화에서 수행한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콘텐츠를 만든 것이 아니라 '광장'을 열어준 것이다.
[보는 사람이 달라졌다]
공간이 열리자 사람들의 구성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 애니메이션 시청자 통계를 보면, 주 소비층은 10대, 20대만이 아니다. 30대, 40대는 물론이고 60대도 전체의 7.1%를 차지한다. 어렸을 때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를 보며 자란 세대가 40·50대가 된 것이다. 이들은 애니메이션 자체에 거부감이 없다. 다만 '어른이 애니메이션을 본다'는 시선이 불편했을 뿐이다.

여기서 개인 디바이스의 역할이 크다. 거실 TV로 온 가족이 함께 보던 시대와 달리,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혼자 볼 수 있게 되면서 사회적 압박이 사라졌다. 30대 직장인이 출퇴근 지하철에서 진격의 거인을 보는 일은, 옆 사람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완전히 사적인 경험이 되었다.
넷플릭스의 '오늘의 1위' 같은 랭킹 시스템도 한몫한다. 평소 애니메이션에 관심 없던 사람도 전 세계 1위에 올라온 콘텐츠가 애니메이션이면 호기심이 생긴다. "다들 보길래 나도 한번"이라는 가벼운 계기로 들어와서, 생각보다 재미있어서 계속 보게 되는 경로. 이 경로는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보는 것에서 쓰는 것으로]
시청자가 늘어나니 소비 방식도 달라졌다. 일본에는 '오시카츠'라는 문화가 있다. 좋아하는 캐릭터나 작품을 위해 적극적으로 돈을 쓰는 트렌드를 말한다. 이 활동으로 연간 지출되는 금액이 3.5조 엔, 한화로 약 30조 원이 넘는다. 굿즈 구매, 성지순례라 불리는 배경지 관광, 2차 창작물 소비까지 하나의 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다.

한국에서도 이 흐름은 이미 익숙하다. 팝업스토어에 줄을 서고, 콜라보 카페를 찾아다니는 풍경은 서울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이런 소비가 소수 팬의 영역이었지만, 보는 사람이 늘어나자 쓰는 사람도 늘어난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보는 취미'에서 '돈이 도는 생태계'로 확장되는 과정이다.
[만드는 방식이 바뀌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2015년 18조 3천억 원에서 2022년 29조 3천억 원으로 성장했다. 특히 해외 매출 비중이 눈에 띈다. 과거 30~40%에 불과하던 수출 비중이 이제는 내수와 거의 5대 5가 되었고, 코로나 시기에는 해외 매출이 내수를 역전하기도 했다. 주요 소비국도 한국·대만·미국에서 유럽과 남미까지 확대되었다.
이 성장의 이면에는 제작 구조의 변화가 있다. 기존 일본 애니메이션은 '제작위원회'라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졌다. 여러 회사가 돈을 모아 투자하고, 지분에 따라 저작권을 나누는 구조다. 문제는 경기가 나빠지면 제작비가 곧바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투자사들이 창작에 간섭하는 일도 잦았다.
넷플릭스는 이와 다르게 제작비와 이윤을 한 번에 지급한다. 대신 모든 권리를 가져가지만, 제작사 입장에서는 중간에 프로젝트가 엎어질 위험 없이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창작의 자유도 넓어진다. 넷플릭스가 광장만 연 것이 아니라, 그 광장에 올릴 콘텐츠의 품질까지 끌어올리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넷플릭스라는 광장이 열리고, 개인 디바이스가 사적인 감상 공간을 만들어주고, 콘텐츠의 품질을 뒷받침할 투자 구조가 갖춰지면서, 원래 있었지만 숨어 있던 수요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올라왔다.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 것이다. '숨덕'이라는 말이 낡아진 것은, 숨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