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분석 심리학자 이부영에게 한 부인이 찾아왔습니다.

분석심리학에서는 꿈을 통해 무의식을 관찰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데요.
이부영 교수는 그녀의 꿈을 관찰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물질적인 데도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라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왜 이런 판단을 내렸을까요? 우선 부인이 꾼 꿈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부인의 꿈 이야기]
근검절약하고 정신적으로 고상한 생활을 원칙으로 삼고 살아온 한 부인이 어느 날 꿈에 옷을 잘 차려입고 나타난 친구를 만난다.
꿈속에서 그녀는 친구의 화려한 모습을 약간은 부러워하면서 자기의 초라한 행색을 조금 부끄럽게 여겼다. 대학 동창인 그녀는 항상 사치스럽게 치장하고 다녀서 ‘물질적’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요즈음은 만난 일도 없는 데 왜 꿈에 나타났는지 모른다고 했다.

이부영 교수는 그녀에게 “당신 마음속에도 물질적이고 사치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꿈속에서 자아(dream-ego)는 그 물질적이고 사치스러운 친구를 의식에서와 달리 약간 부러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마지못해 “그럴지도 모르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래도 나는 그런 생활을 좋아하지 않아요”하고 단언했습니다. 그녀가 왜 이렇게 반응했을까요?
[자기 그림자를 견뎌야 하는 이유]
왜냐하면, 자아가 싫어하는 모습이 자기 마음속에 있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석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마음을 견뎌내야 한다고 보죠.

자기의 그림자를 보고 자신에 대한 앎을 견딜 수 있을 때, 그는 비로소 과제의 한 작은 부분을 해결한 것이다. 즉, 그는 최소한 개인적 무의식을 극복한 것이다.
자기 그림자를 본 다음에는, 이를 의식에 ‘의도적’으로 꺼내야 하는데요. 이 과정이 정말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림자를 꺼내는 걸 연습할수록 자연스러워지거든요.

자기의 열등한 감정을 표현하면 처음에는 폭발적인 표현이 되어 남들이 놀라고 자기도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표현을 계속한다면 원시적 감정은 차츰 분화되어 남들이 싫어하지 않게 하면서도 적절히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되는 것이다.
그림자의 의도적 표현은 훨씬 덜 해롭습니다. 작은 감정 폭발은 오히려 억눌린 감정의 대폭발을 막아주죠.
[이부영 교수가 제안하는 해결책]
이러한 맥락에서 이부영 교수는 부인에게 꿈에서 동창생과 같은 욕구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욕구를 살리라고 조언합니다.

그림자의 내용이 그리 크게 부정적인 것이 아닌 경우는 약간의 계면쩍음과 부끄러움을 극복한 뒤 그림자를 살리는 작업이 비교적 큰 갈등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럽다.
그렇다면 이러한 조언이 나쁜 사람이 되라고 권하는 일은 아닐까요? 이에 이부영 교수는 답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나쁜 사람’이 되라는 것 같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주저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어둠이 아니라 어둠을 통한 빛을 발휘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림자 속에 숨은 빛을 나타내게 하는 것이다.
나쁜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면이 있다면, 그 그림자가 더 진해지기 전에 표현해야 한다는 거죠.
[완전하기보다 온전한 인간이 되자]
사람은 완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인간일 수는 있겠죠. 이와 관련해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말합니다.
자기의 그림자와 자기의 빛을 동시에 자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두 측면에서 본다. 그리하여 그는 중앙으로 나온다.

– 완전한 인간: 모든 게 다 갖춰진 인간
– 온전한 인간: 크게 잘못된 구석이나 탈이 없는 상태의 인간
참고 자료
이부영,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