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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칼럼] 다시 가을, 미술로 물든 서울 – 키아프·프리즈 서울 2025와 주목할 만한 전시들

[미술칼럼] 다시 가을, 미술로 물든 서울 – 키아프·프리즈 서울 2025와 주목할 만한 전시들

[미술칼럼] 다시 가을, 미술로 물든 서울 – 키아프·프리즈 서울 2025와 주목할 만한 전시들

키아프·프리즈 서울 2025

계절의 변곡점에 선 9월. 잎새를 흔드는 바람 끝에 가을의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햇볕은 여전히 여름의 묵직한 잔향을 붙들고 있다. 새로운 계절이 올 듯 안 올 듯 애간장을 태우며 여느 때보다 더 느리게 다가오는 중이다.

이 지루한 기다림을 보상하듯, 올해도 성대한 미술 축제가 가을보다 한발 앞서 서울 도심 곳곳을 다채롭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는 ‘키아프리즈’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키아프·프리즈 서울>이 있다.

<키아프·프리즈 서울>은 한국화랑협회의 아트페어 키아프(Kiaf)가 세계 정상급 아트페어 프리즈(Frieze)와 5년 계약을 맺고 매년 9월마다 동시에 더블 페어로 진행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다.

키아프 서울 전시장 풍경. ⓒ한국화랑협회

2022년에 시작해 올해 네 번째 에디션인 이번 페어는 9월 3일 VIP 프리뷰 데이 ¹ 를 포함해 총 5일간 진행됐다. 키아프는 7일까지 1층 A·B홀과 2층 ‘더 플라츠’에서 20여 개국 175개 갤러리와 함께, 프리즈는 6일까지 코엑스 3층 C·D홀에서 28개국 121개 갤러리와 함께했다. 예년에 비해 참여 갤러리 숫자가 줄었다. 해외 주요 갤러리 대표들이 서울에 직접 오는 대신 아시아 팀을 파견한 부스들도 눈에 띄었다. 전반적으로 외형적 규모 확장보다는 내실과 실리를 추구하는 모습이었다.

그 결과는? ‘예상 밖의 호실적’이었다.

개막 직전까지만 해도 불황의 여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고금리,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무역 갈등 등 복합적 요인이 세계 경제를 위축시키며 국제 미술시장 규모가 2022년 대비 15% 가까이 감소한 데다, 해외 3대 경매사(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의 올 상반기 낙찰 총액은 2016년 이후 두 번째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국내 미술시장 역시 관망세로 돌아서서 주요 경매사들의 낙찰 총액이 전년 대비 25% 이상 감소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페어 불참 의사를 알리거나 ²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³ 해외 주요 갤러리들까지 하나둘 늘어나며 전망은 한층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개막 첫날, 분위기가 바로 반전되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VIP 프리뷰 데이에 하우저앤워스(Hauser & Wirth), 타데우스로팍(Thaddaeus Ropac), 페이스갤러리(Pace Gallery),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학고재, PKM 등 프리즈에 참여한 국내외 리딩 갤러리들이 상당수의 초고가 작품을 속속 판매 완료하면서부터다.

특히 스위스에 기반을 둔 하우저앤워스는 이번 프리즈 서울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마크 브래드포드, 루이즈 부르주아, 이불 등 파워풀한 블루칩 작가를 앞세워 미술관·갤러리 전시와 아트페어를 동시에 진행하는 전략적 행보를 펼치더니, 결국 VIP 프리뷰 데이에 바로 마크 브래드포드의 신작 ‘그래, 그럼 사과할게(Okay, then I apologize)’를 아시아 기관 컬렉터에게 약 63억 원(450만 달러)에 판매하며 프리즈 서울 사상 최고 판매가 기록을 경신했다. 이후 루이스 부르주아, 이불을 비롯해 조지콘도, 라시드 존슨, 에이버리 싱어, 앤젤 오테로 등 주요 작가들의 고가 작품까지 줄줄이 판매했고, 놀랍게도 첫날 판매 성과만 약 111억 원(800만 달러)을 넘겼다고 한다.

프리즈 전체 공식 매출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3일부터 6일까지 메가 갤러리들의 수십억 원대 거래가 이어지며 총 1,000억 원 이상이 오간 것으로 관측된다.

하우저앤워스에서 선보인 마크 브래드포드의 3점 연작. 프리즈 서울 사상 최고 판매가 기록을 경신했다. (사진 @mijin_epicure_diary) *재판매 및 DB 금지

반면 키아프는 활발한 중저가 거래로 선전했다. 여전히 프리즈와의 체급 차이는 존재했지만, 해외 갤러리의 비중을 30%까지 올리고 참여 갤러리의 수준과 전시 콘텐츠의 완성도에 집중한 전략이 유효했다.

갤러리제이원의 바바라 크루거, 국제갤러리의 박서보, 가나아트의 시오타 치하루, 갤러리현대의 김창열, 선화랑의 이정지 등 블루칩 작가의 억대 작품들이 연이어 판매됐고, 예화랑의 박석원, 금산갤러리의 김은진, 학고재의 엄정순, 노화랑의 이강욱 등 원로-중견 작가의 수천만 원대 작품들과 신규 컬렉터를 사로잡는 신진 작가의 수백만 원대 소품들이 줄줄이 거래되며, 갤러리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매출이 주를 이뤘다.

키아프 서울에 참가한 금산갤러리 부스 풍경. (사진 @mijin_epicure_diary) *재판매 및 DB 금지

물론 <키아프·프리즈 서울>의 성과를 매출만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아트페어의 첫 번째 역할이 미술품 거래에 있다 보니 판매 규모에 대중의 관심이 우선 집중되지만, 이보다 더 큰 의미는 컬렉터 저변 확대와 미술 영역 확장에 있다.

특히 이번 에디션에는 다양한 국적, 다양한 연령대의 해외 컬렉터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불안정한 홍콩 정세 속에 서울이 아시아의 새로운 허브로 떠오르면서 아트바젤 홍콩이 쥐고 있던 아시아 미술시장의 중심도 키아프리즈가 서서히 대체하는 분위기였다. 프리즈는 나흘간 160곳 이상의 세계 유수 미술관·기관 관계자들을 비롯해 아시아, 유럽, 미주권 48개국의 7만 명 관람객이 방문했으며, 프리즈보다 하루 더 열린 키아프는 8만 2,000여 명 방문객이 찾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함께하는 Kiaf Classic: Resonant Moment 클래식 공연을 비롯해 퍼포먼스, 작가 스튜디오 연계, 아티스트 토크, 영화 상영, 그리고 을지로ㆍ한남동ㆍ삼청동ㆍ청담동을 거점으로 한 네트워킹 파티 등 새롭고 신선한 큐레이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미술 관계자와 애호가를 연결했고, 아트페어를 소수 컬렉터의 전유물에서 대중적인 문화 축제로 바꿔놓았다. ‘대형 미술품 장터’라는 획일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트페어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성찰하고, 미술을 물적 소유에서 공감각적 경험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려 노력하는 중이다.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 개최는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사이먼 폭스 프리즈 CEO는 “서울이 아시아 미술 허브로 도약해 5년, 10년 이상 지속되기를 바란다”며 서울을 떠날 뜻이 없음을 밝혔고, 올해 약수동에 ‘프리즈 하우스 서울(Frieze House Seoul)’까지 개관해 상설 전시를 열고 있다. 김재석 큐레이터가 기획한 개막전 ‘UnHouse’는 신임 디렉터 앤디 세인트 루이스(Andy St. Louis)의 지휘 아래 10월 2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프리즈 하우스 서울 내부 풍경. (사진 @mijin_epicure_diary) *재판매 및 DB 금지

2025년 가을, 놓치기 아까운 지역별 전시 정보

서울의 가을은 코엑스에서 끝나지 않는다. 키아프리즈가 끝난 후에도 들러야 할 미술관과 갤러리가 도심 곳곳에 넘쳐난다. 말하자면 ‘미술의 월드컵 기간’으로, 서울 전역이 성대한 미술 축제로 들썩이는 시기다.

그중에서도 미술관과 갤러리가 운집한 종로구 일대(인사동·삼청동·북촌·평창동 등)가 가장 뜨겁다. 특히 삼청로는 전통적인 갤러리 스트리트로, 갤러리현대·금호미술관·국립현대미술관·아트선재센터·국제갤러리 등 대형 전시를 선보이는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모여있다. 구석구석 모두 둘러보면 좋겠지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라면 예닐곱 군데 정도로 추려 아래 동선을 따라가며 돌아보는 걸 추천한다.

1. 갤러리 현대
한지·불·먹을 이용해 전통 수묵화를 현대 추상화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김민정(1962) 개인전이 10월 19일까지.

2. 금호미술관
사진, 조각, 회화, 문학, 비디오 등을 교차·융합하며 탈장르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유현미(1964) 개인전이 9월 28일까지.

3. 국립현대미술관
‘물방울 작가’로 알려진 김창열(1929-2021) 화백의 일대기와 작품세계를 총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이 12월 21일까지.

4. 국제갤러리 K3와 한옥
20세기부터 현재까지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작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 개인전이 10월 26일까지. 생애 후반 20여 년에 걸친 설치·드로잉 작업을 재조명하는 대형 기획전으로, 1994년에 제작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만 공개됐던 커피 필터 드로잉도 볼 수 있다. 서울 근교의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규모 전시와 함께 연계해서 보는 것도 좋은 방법.

5.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아르헨티나-페루 작가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Adrián Villar Rojas, 1980) 첫 한국 개인전이 2026년 2월 1일까지.

6. 백아트갤러리에서는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인 성능경 개인전(1944)이 10월 18일까지.

삼청로 일대에 위치한 주요 갤러리들. @mijin_epicure_diary

동시대 블루칩 작가들의 대형 전시를 보고 싶다면, 용산(한남동·이태원동) 일대도 빼놓을 수 없다. 리움미술관을 필두로 페이스·리만머핀· 에스더쉬퍼·타데우스로팍 등 세계 정상급 갤러리들이 포진한 글로벌 갤러리 클러스터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지역은 먼저 소개한 삼청로 일대와 달리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산발적으로 퍼져있다. 6호선 한강진역-이태원역 사이, 4호선 신용산역 주변, 그리고 유엔빌리지 권역까지 드문드문 흩어져있어 하루 코스로 둘러보는 건 불가능하다. 지도에 주요 갤러리를 저장해 놓고 블록별로 나누어 공략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1. 리움미술관
이불 작가(1964)의 작품 150여 점을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시대별 흐름에 따라 조망하는 서베이 전시가 2026년 1월 4일까지.

2. 페이스갤러리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의 개인전이 9월 27일까지.

3. 리만머핀
100년 역사의 미국 미술위원회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라틴계 미국인 여성 작가 테레시타 페르난데스(Teresita Fernández, 1968) 개인전이 10월 25일까지.

4. 타데우스 로팍
인체와 공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며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국 출신 조각가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1950) 개인전이 11월 8일까지. 신사동 화이트큐브와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에서도 안토니 곰리 개인전을 동시에 개최하고 있다.

5. 에스더쉬퍼
빛 유리, 인공 안개 등을 매개로 신체 감각과 지각 경험을 탐구하는 안 베로니카 얀센스(Ann Veronica Janssens, 1956)의 개인전이 10월 25일까지.

6.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프리즈 서울 사상 최고 낙찰가로 화제를 모은 사회적 추상화가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 1961)의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이 2026년 1월 25일까지.
또한 1층에 위치한 프로젝트 공간 캐비닛에서는 가고시안에서 진행하는 무라카미 다카시(1962) 팝업 전시가 10월 11일까지 개최된다. 스마일 플라워를 모티브로 한 신작 1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6호선 한강진역-이태원역 사이에 위치한 주요 갤러리들. @mijin_epicure_diary

여기서 조금 더 발길을 넓히면 청담·도산공원 라인의 송은아트스페이스, 신세계갤러리, 아뜰리에 에르메스, 호림박물관 신사본관, 화이트큐브서울, 페로탕, 서울옥션, 탕컨템포러리, 이유진갤러리, G gallery 등지에서도 주목할 만한 전시들이 열리고 있다.

청담· 도산공원 일대에 위치한 주요 갤러리들. @mijin_epicure_diary

가을마다 미술로 물드는 서울, 그 지속성에 대하여

〈키아프·프리즈 서울 2025〉 아트페어와 지역별 주요 미술관·갤러리가 서로 맞물려 만들어낸 신선한 흐름은 전 세계 미술계 인사들의 이목과 수많은 호평을 이끌어냈다. 이번 에디션은 단순한 거래·흥행 중심의 이벤트를 넘어, 서울 전체를 거대한 예술 플랫폼으로 확장시키며 한국 미술계의 국제적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회의 장이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지속 가능한 구조’의 확립이다. 단기 이벤트성 흥행 반복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적인 미술 도시로 성장하려면, 거버넌스 구축과 장기적 플랫폼이 필수적이다. 키아프와 프리즈 간의 체급 차이를 어떻게 성장 동력으로 전환할지, 상업적 아트마켓으로서의 성격과 공공적 문화 이벤트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해외 메가 갤러리와 국내 중견 갤러리 간의 구조적 격차를 어떻게 완화할지, 글로벌 네트워크와 지역적 맥락을 어떻게 조율할지, 매출·관람객 수 확대라는 양적 지표를 넘어 작품성·비평성·담론 생산 등의 질적 지표를 어떻게 강화할지 등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들이 켜켜이 쌓여 있는데, 이는 미술시장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미술계와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그리고 학계가 함께 하는 민관 협력 모델 속에서만 해결 가능한 문제다.

안정적인 문화정책, 공공 예산 배분, 교육·연구와의 연계가 뒷받침되어 〈키아프·프리즈 서울〉이 던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서울을 동시대 미술 허브로 성장시키는 촉매제가 되어주기를 기대해 본다.

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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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에 진심, '미진'입니다. / 미식과 미술,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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