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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는 처음에 괴롭지만, 나중엔 편해진다

NO는 처음에 괴롭지만, 나중엔 편해진다

NO는 처음에 괴롭지만, 나중엔 편해진다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말합니다. 분석심리학자 융이 차용해서 사용한 용어인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바깥세상은 무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가면, 직장에서는 직원의 가면, 집에서는 자식의 가면을 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구나 상황에 맞게 여러 가면을 바꿔 끼우며 살고 있죠.
번거롭게 가면을 쓰는 이유는 사회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서인데요. 사회는 역할에 맞는 연기를 하는 사람을 기대합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죠. 개그맨 노홍철의 군대 생활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의 이중 기능
노홍철은 군대에서 자기 속옷에 ‘미남’이라 적은 적 있습니다. 그런데 선임이 그걸 봐버려 엄청나 혼났죠.
군대에서 입는 속옷은 페르소나입니다. 유니폼은 자신이 사회란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페르소나에 기대한 역할과 다른 ‘미남’이란 두 글자. 선임 입장에서 ‘이놈 가면이 잘못 되었는데?’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할 겁니다.
그렇다면, 노홍철은 왜 속옷에 ‘미남’이라는 단어를 적었을까요? 이유야 많겠지만, 선임과 노홍철이 주목한 페르소나 기능이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페르소나는 이중 기능이 있습니다.

선임은 당연히 노홍철이 군인으로서 역할을 하길 기대했습니다. (페르소나의 1번 역할) 하지만, 노홍철은 군대 속에서도 ‘자아’를 잃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페르소나의 2번 역할) 자기 모습대로 행동하길 원했죠.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자아는 무엇일까요?

#### 자아란?
자아(ego)는 라틴어로 나(I)를 의미하는 전문 용어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바깥세상이 무대라면, 내면 세계는 바깥세상 무대와 동떨어진 섬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무대에 선 모습만 진짜 나라고 착각하며 살기도 하죠. 가면을 벗은 남들과 다른 진짜 내 모습도 있지만, 나에겐 가면을 쓴 모습밖에 없다고 착각하며 사는 겁니다.
페르소나는 사회에 속하기 위해 쓰는 가면이라면, 자아는 사회와 분리된 다른 내 모습을 지향합니다.
페르소나는 분명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가면입니다. 하지만, 분석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는 가면을 쓴 모습만 나라고 생각하면, 개성을 잃을지 모른다고 경고했죠.

페르소나를 만드는 데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면, 진짜 내 모습이 무엇인지 점점 잊게 되는 거죠.

내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다면?
앞서 노홍철이 속옷에 ‘미남’이라고 적은 표현은, 당시 그가 속한 군대라는 집단과 다른 개성이 있는 부분입니다. 미남이란 표현엔 노홍철이 지닌 긍정의 자세가 엿보이죠.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온전한 자아를 드러낼 거야’라고 내가 마음먹더라도, 사람들이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노홍철의 자아를 군대 선임이 눌러버리려 했듯이 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편하게 살면 되지 않을까요? 그게 약간 자신을 속일지라도, 그렇게 큰 거짓말이 아니니 괜찮지 않을까요?

물론 그런 방법도 있지만, 내적 분열이 사람을 점점 갉아 먹을 수도 있습니다. 맞지 않은 가면을 억지로 쓰면, 그 가면을 쓰는 일이 버티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대에 있는 동안 편안한 상태로 있지 못하고, 계속 긴장한 상태로 있는 거죠.

이렇게 일어나는 내적 갈등을 사회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인지 부조화’라 말했습니다.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란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겪는 심리적 불편함을 말하는데요.
이 불쾌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행동을 바꾸거나 행동을 바꾸지 않는 거죠. 누군가가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면 보통 행동을 바꾸겠지만, 노홍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노홍철이 군대에서 배운 교훈
그는 군대에서 생선도 먹기 싫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선임이 편식한다고 욕하며, 생선이 나오는 날마다 식판 전체에 생선만 얹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노홍철은 생선을 먹는 걸 끝까지 거절했습니다. 지친 선임이 나중에는 생선으로 괴롭히진 않았다고 했죠.
노홍철은 생선 말고도 이런 일이 정말 많아, 군에 들어와서 처음 한 달 동안 힘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편해졌다고 말하며 ‘군대라는 타이트한 환경에서도 나를 잃지 않았더니 나중에는 더 편해진다’는 걸 배운 후에, 연예계에서도 똑같이 행동했다고 합니다.

나다운 방식으로 세상에 적응
물론, 소속한 집단 정체성과 내 자아가 다를 때 무조건 반기를 들라는 말은 아닙니다. 처음 노홍철이 겪었듯 거센 반발에 휩싸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 반발이 너무 거세 회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한다고 판단이 된다면. 그 모습을 지키지 못하는 게 내겐 너무 괴로운 일이라면. 한 번 노홍철처럼 해보는 건 어떨까요? 물론, 힘든 길임을 각오해야겠지만요.

여정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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