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의록이나 기획서, 블로그 글을 보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문장과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목에 이모지를 붙이고, 불릿 포인트로 과도하게 내용을 분할하며, 지나치게 정리된 어투를 유지하는 문서들이 많아졌습니다. 한눈에 보기엔 깔끔하지만, 읽고 나면 공허한 느낌이 남습니다. 이는 많은 문서가 대형 언어 모델(LLM)을 활용해 작성되기 때문입니다.
AI는 정보의 명확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독자가 혼동하지 않도록 모든 내용을 작은 단위로 나누고, 불릿 포인트나 번호 매김으로 각 항목을 구분하며, 반복해서 정리를 덧붙입니다. 이런 방식은 문장을 보다 깔끔하고 일관되게 보이게 하지만, 결국에는 기계적으로 나열된 느낌을 주며 과도한 친절함을 연출하게 됩니다. 그렇게 쪼개진 내용들은 오히려 문서의 흐름을 단절시키고, 사람 고유의 사유와 맥락을 지워버립니다. 이런 구조화 집착이 불필요한 불릿 포인트 과잉으로 이어집니다.
LLM은 본질적으로 방대한 텍스트 – 뉴스 기사, 책, 블로그, 인터넷 게시글 등 다양한 글의 집합에서 패턴과 통계적 상관관계를 학습해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알고리즘입니다. 쉽게 말하면, AI는 그 수많은 문서 속에서 어떤 단어가 자주 함께 쓰이는지, 어떤 문장 구조가 많이 쓰이는지를 통계적으로 분석합니다. 예를 들어 “비가 오면” 다음에 “우산을 쓴다”가 자주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새로운 문장을 쓸 때 가장 높은 확률로 적절한 단어를 고르는 식입니다. 이런 방식 덕분에 AI는 얼핏 보면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는 ‘왜 이 글을 쓰는가’, ‘어떤 의도를 담고 싶은가’ 같은 질문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습니다. 단순히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가장 그럴듯한 평균값을 이어 붙이는 것뿐입니다.
사람이 쓴 글은 정보 전달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경험과 맥락, 감정의 결을 담고, 문장 사이에 여백을 남겨 독자가 스스로 해석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의도적으로 문장을 길게 늘어뜨리거나, 때로는 일부러 불친절한 표현을 삽입해 긴장감을 조성하기도 합니다. 이런 유기적인 구성은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저자의 의식과 사유가 결합된 ‘생각의 전개’입니다. 반면, AI 문서는 예측 가능한 평균값을 좇으며, 기계적으로 안전한 선택만을 반복합니다. 그 결과 생동감이 사라지고, 문서 전체가 무난함 속에 갇히게 됩니다.
AI는 효율적인 도구입니다. 빠른 초안 작성, 자료 요약, 구조화 등 여러 측면에서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가 만든 초안은 어디까지나 뼈대일 뿐, 본질적인 설득력과 감정적 울림은 사람의 손을 거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최근 ‘AI가 결국 글쓰기를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종종 제기되지만, 이는 기술적, 철학적으로 과도한 믿음에 불과합니다. AGI(강인공지능)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언어 패턴 복제 능력을 넘어, 환경과 상호작용하고, 자가 피드백과 계획, 그리고 자기반성을 할 수 있는 고차원적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아직 인간의 개입과 편집은 여전히 필요합니다. AI가 제안한 구조와 문장을 다시 사람의 시선으로 점검하고, 맥락을 살리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거칠게 다듬어야만 글은 어느 정도 살아 움직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AI 기술은 더 빠르고 정교해질 것이며, 사람 글쓰기의 가치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건, 우리가 쓰는 글이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태도와 해석을 담는 시도라는 점입니다. 그 긴장감 속에서 인간과 AI는 계속 새로운 균형을 찾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