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는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4월의 어느 아침, 100퍼센트 완벽한 여자와 스쳐 지나가는 단상을 다룬 단편 소설입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8월의 어느 무더운 저녁에 100퍼센트 완벽한 맥주 한 잔을 따르는 것에 대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은 맥주를 어떻게 따라 마시나요? 맥주 한 잔을 따르는 것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둘 필요가 있을까요? 혹시 맥주 한 잔을 전문으로 따르는 직업 ‘탭스터’를 들어 봤나요? 저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있는 동명의 펍 ‘Tapster(안광호 대표)’를 방문했습니다. 탭스터가 따른 맥주 한 잔이 궁금해 지는데요. 이제 탭스터 세계의 문을 두드려 볼까 합니다.
비어 서버나 비어 소믈리에는 들어봤는데 탭스터는 조금 생소합니다. 일반적으로 비어 서버란 전문적인 방식으로 맥주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직업을 말하는 보통의 단어입니다. 탭스터도 본질적으로 비어 서버와 목표는 비슷하지만, 차이점은 필스너 우르켈에서 맥주를 제공하는 고유의 단어입니다. 이 비슷한 것을 다른 맥주에서도 볼 수 있는데, 가령, 하이네켄의 비어 서버는 하이네켄 스타 서브(Heineken Star Serve), 기네스의 비어 서버는 기네스 마스터 퀄리티(Guinness Master Quality)라고 부릅니다.
필스너 우르켈에서 인정하는 비어 서버이기 때문에 탭스터는 필스너 우르켈에서 교육하고 양성하는 탭스터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육 프로그램만 차근히 듣는다고 자격이 갖추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교육 프로그램을 듣기 위해서는 당장에라도 펍에 투입되어 완벽한 맥주 한 잔을 제공할 수 있는 수준의 숙련된 경험과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 점이 비어 서버의 과정과는 다릅니다. 탭스터는 필스너 우르켈 양조장에서 양조 책임자와 글로벌 헤드 탭스터가 주관하는 교육을 받고 실기 및 필기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탭스터는 맥주 전반에 관한 지식은 물론이고, 양조에 대한 이해, 맥주의 유통, 장비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능력, 바텐더로서의 지식 및 윤리의식, 푸어링 기술 등을 모두 갖추고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해야 선발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필스너 우르켈에서는 비어 서버가 아닌 비어 마스터라 지칭합니다.
이렇게 선발된 탭스터에게는 가죽으로 만든 앞치마가 주어집니다. 마치 영화 킹스맨에서 킹스맨에 선발된 주인공이 슈츠를 갖춰 입고 손목시계와 반지를 착용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킹스맨의 손목시계와 반지에 해당하는 것이 탭스터에게는 맥주 장비 청소 키트입니다. 가죽으로 된 앞치마에는 탭스터 고유의 번호와 이름까지 박혀있으니, 탭스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맥주를 잔에 따라내는 행위를 ‘푸어링’이라고 합니다. 푸어링(pouring)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붓는 것, 들이 붓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지만, 일반인이 그 깊은 뜻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완벽한 맥주 한 잔’이 결과라면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푸어링’입니다. 완벽한 푸어링을 위해서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완벽한 푸어링을 위한 첫 번째 요소는 장비와 맥주 관련 기자재들이 항상 청결하게 관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생맥주의 생명은 청결입니다. 완벽한 맥주는 맥주에서 나오지 않아야 할 향과 풍미를 경계합니다. 이러한 것을 이취라고 부르는데, 이취는 맥주의 생산 과정에서도 생기지만, 좋은 맥주를 생산한 이후에 외부의 요인으로부터 발생하기도 합니다. 생맥주를 마시러 갔는데 신맛이 도드라진 맥주를 마셔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맥주를 양조할 때 맥주의 신맛을 의도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신맛은 생맥주의 장비를 제대로 청소하지 않아 발생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탭스터가 푸어링의 주체인 맥주의 속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맥주 스타일에 따라 추구하는 맛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맥주 스타일마다 속성이 다른데 똑같은 방법으로 푸어링을 하게 되면 맥주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 반감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이네켄을 필스너 우르켈처럼 따르면 밍밍하고 힘이 빠진 맥주가 됩니다. 바디감이 가벼운 하이네켄을 미디엄 바디감 정도의 필스터 우르켈처럼 푸어링하면, 부드러운 거품이 맥주의 쌉쌀함과 탄산감을 방해해 특유의 청량감과 홉 향을 감소시키기 때문입니다. 맥주에 녹아 있는 탄산감, 맥주의 거품 발생 및 지속력 등 맥주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속성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 번째 요소는 맥주가 생산된 원래의 나라에서 제공하는 푸어링 기술이 있다면 그 방법을 이해하고 준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탭스터의 교육 과정 중에는 현지의 펍에서 현지인들에게 맥주를 푸어링하고 서빙하는 과정이 들어있습니다. 현지의 시스템을 배우면서 탭스터의 자질을 쌓습니다.
안광호 대표에게 푸어링의 기술까지 설명을 들었을 때 취재진의 첫 잔이 모두 비어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첫 번째로 마신 필스너 우르켈은 할라딘카라는 푸어링 스타일로 따른 것이었습니다. 필스너 우르켈은 거품의 양에 따라 할라딘카, 슈니츠, 밀코라고 부르는 푸어링 스타일이 있습니다. 그중 할라딘카(HLADINKA)는 체코 182년의 전통 방식으로 푸어링하는 스타일입니다. 안광호 대표는 체코의 전통 방식을 소개해 줄 겸 첫 잔으로 할라딘카를 선택했다고 합니다. 할라딘카로 따르면 크림 같은 거품이 약 35mm 정도 쌓입니다. 35mm는 손가락 세 마디 정도의 굵기로 일명 쓰리 핑거(three finger)라고도 합니다. 할라딘카는 맥아의 고유한 단맛과 사츠 홉에서 느낄 수 있는 기분 좋은 쌉쌀함이 매력적입니다.
이제부터는 맥주에 좀 더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슈니츠가 가장 적당하다고 합니다. 슈니츠(SNYT)는 탭스터들이 맛을 평가하기 위해 따르는 방식에서 유래했기 때문입니다. 거품의 질과 맥주의 색상 그리고 투명도와 맛을 평가하기 위해 적합합니다. 처음 맥주 케그를 개봉하여 맥주의 상태를 체크할 때 가장 이상적인 푸어링 스타일입니다. 맥주와 거품 그리고 잔의 공간 비율을 2:3:1로 따릅니다. 할라딘카보다 좀 더 크리미하면서도 상쾌함이 유지됩니다.
남은 푸어링 스타일을 마저 소개하겠습니다. 밀코(MLIKO)는 웻 폼(Wet Form)이라 부르는 젖어 있는 부드러운 거품을 꽉 채워 따르는 푸어링 스타일입니다. 가끔 이 스타일을 잘 알지 못하는 고객들이 왜 거품만 가득 주냐고 따져 묻기도 하는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웻 폼은 뱃속을 더부룩하게 만드는 드라이 폼(Dry Form)과는 다릅니다. 실제 거품이 액체로 바뀌면 다른 푸어링 스타일과 비교해도 맥주의 양은 동일합니다. 거품이 액체로 변하는 속도가 빨라 빠르게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유로 만든 거품을 마시듯 크리미한데, 이름 또한 MILK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집에서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이 있을까요? 집에서도 몇 가지만 주의하면 병맥주나 캔맥주를 맛있게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안광호 대표는 평소 잔을 깨끗이 보관하고 맥주 푸어링 전에 충분히 차게 준비하라고 말합니다. 맥주잔을 세척할 때는 전용 스펀지 수세미를 사용하고 음식, 집기와 구별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세미를 혼용해서 사용하면 자칫 기름기 등이 달라붙어 맥주잔을 오염시키고 불필요한 향을 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제 향이 강하면 충분히 행군 뒤에도 잔에 향이 남아 있을 수 있으므로 세척력이 좋은 무향 세제를 추천합니다. 푸어링 전에는 깨끗한 잔을 얼음물에 담가 두었다가 따르는 것이 좋습니다. 맥주는 가장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온도가 있습니다. 상온의 잔에 따르면 잔의 온도가 맥주의 온도까지 상승시킵니다. 온도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불필요한 풍미와 단백질 성분 등을 제거하면 평소와는 다른 점을 느낄 거라고 말합니다.
전 세계에는 480여 명의 탭스터가 있고, 한국에는 8명의 탭스터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중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이 연희동의 Tapster입니다. Tapster에는 탭스터 고유 번호 148번의 안광호 탭스터와 고유 번호 453번의 이소영 탭스터가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부부 탭스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탭스터들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하며, 유대와 동료의식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탭스터들의 위상은 아직 미비하지만, 안광호 대표는 그동안의 활동을 인정받아 아시아 헤드 탭스터가 되었습니다.
연희동의 Tapster는 완벽한 맥주 한 잔의 의미를 전파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최근에는 ‘TAPSTER NIGHT’라는 행사를 개최하여 많은 맥주 팬의 호응을 얻어냈습니다. 이 행사에서는 오직 완벽하게 푸어링된 필스너 우르켈만 제공되었습니다. 제가 취재를 하러 갔을 때는 이 행사가 끝난 후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두 번째 TAPSTER NIGHT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전 세계 탭스터의 헤드 탭스터이자 필스너 우르켈의 광고 모델이기도 한 체코의 얀 스타닉(JAN STANÍK)은 맥주를 종교에 빗대어 말했습니다. “체코에서 맥주는 종교입니다. 우리는 나쁜 맥주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신을 믿는 자에게 종교가 훼손될 수 없는 가치인 것처럼, 맥주를 믿는 자에게 완벽한 맥주 한 잔 또한 훼손될 수 없는 가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