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 좋아하시나요? 또 다른 말로는 ‘오뎅’이라고도 부르는 그것. 우리에게 ‘어묵’ 혹은 ‘오뎅’하면 대다수가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 분식점의 단골 메뉴이지 싶은데요. 식당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멸치와 대파와 무 등으로 우린 육수에 이런저런 어묵을 끓여낸 요리이죠. 대표적인 ‘국민식’ 중 하나로 긴 세월 사랑 받아온 건 편안한 가격대에 더해, 개운하고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기 때문일 텐데요. 특유의 구수함과 개운함이 매콤함이나 퍽퍽함을 사그라뜨리고 또 이내 그 맛을 다시 불러들이니, 떡볶이나 김밥과 같은 분식점 간판 메뉴와는 애초에 단짝이 될 운명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오뎅(おでん)이라는 이름이 시사하듯 오뎅은 본래 와쇼쿠(和食=일본요리)의 일종입니다. 그 원형인 두부 요리 ‘덴가쿠’(田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시초는 저 멀고도 먼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1336~1573년)에 다다르게 되는데요. 오늘은 우리 전통 어묵요리와는 별개로 또 다른 맛의 장을 열어줄 본향의 오뎅에 가까이 다가가 볼까 해요. 변화하고 확장되어 온 오뎅의 면면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필시 이전과는 다른 화려한 미식의 주인공으로 맞이하게 될 흥미진진한 오뎅의 일대기. 한입이 다음 한입을 부르고 또 그다음 한입을 부르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UMAMI 덩어리 오뎅의 자취를 천천히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오뎅의 맨 처음 모습은 두부로 만든 ‘덴가쿠’라는 것. 막대 모양의 끌(목형)로 자른 두부를 나무 꼬챙이에 꽂아 구운 것이 덴가쿠인데요. 두부뿐 아니라 가지나 토란 등 야채를 꼬챙이에 끼워 굽고, 미림이나 설탕과 섞어 유자 향 등을 입힌 미소(味噌=일본 된장)를 발라 먹는 것의 총칭이기도 합니다. 덴가쿠라는 이름의 유래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794~1185년) 중기에 탄생한 일본 전통음악 및 무용과 관련이 있습니다. 풍작을 기원하며 피리와 북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이 악무의 이름이 본래 ‘덴가쿠’인데, 목형으로 자른 막대형 두부의 모양이 이 덴가쿠 무용의 형상과 닮았다 하여, 두부 요리에도 덴가쿠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궁녀(女房=‘뇨보’란 아내라는 뜻도 되지만 궁녀라는 뜻이기도 합니다)들이 두부요리인 덴가쿠를 그녀들만의 용어로 불렀는데 ‘오뎅’이란 명칭이 바로 그것. 일본어를 조금 아시는 분이라면 다 아시겠지만, 일어에서는 어두에 접두사 ‘오’(お)를 붙이면 정중과 겸양을 나타내게 되는데, 궁녀들은 궁중의 격식에 맞게 덴가쿠의 ‘덴’(田)에 ‘오’(お)를 붙이고 가쿠(楽)는 생략하여 ‘오뎅’이라고 불렀죠. 참고로, 궁녀들이 사용하는 이와 같은 용어들을 ‘뇨보코토바’(女房言葉=궁녀 용어)라고 했는데요, ‘오뎅’이라는 이름도 그와 같은 뇨보코토바 중 하나였던 것이죠.
아니 오뎅 이야기 하나 하면서, 일본 전통 악무에 궁녀 용어에 너무 멀리 가는 것 아니냐 ,그리 여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셀 수 없이 많은 종류를 지닌 오뎅 가운데에는, 두부 함량이 높은 것이 많고, 이 두부와 함께 반죽된 것이 유독 맛나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리 무용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두부가 오뎅의 시작점인 이상 그 모태인 두부요리 ‘덴가쿠’도 한 번쯤 응시해 볼만 하지요.
헌데 오늘날 일본요리에서 오뎅이라 함은, 일본 전통 요리인 니모노(煮物=조미한 재료를 조리거나 끓인 요리) 혹은 나베료리(鍋料理=건더기와 국물이 담긴 냄비를 식탁 중앙에 둔 열원에 올려 끓이며 먹는 찌개 요리)의 일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니모노나 나베료리로서의 오뎅에 들어가는 건더기를 ‘오뎅 노 구’(おでんの具=오뎅의 건더기)라고 하는데요(혹은 ‘오뎅다네=おでん種’라고도 합니다만).

이 ‘오뎅 노 구’의 종류가 실로 무한대. 여타 음식이 다 그렇듯 세월 따라 지역 따라 진화하고 분화하다 보니, 그 종류가 점점 늘어난 것인데요. 정확한 숫자의 추적은 어렵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만 놓고 본다면 대략 138가지라는 데이터도 있습니다. 일본 내 어육 가공 제품 시장점유율 1위 노포 기업인 ‘기분’(株式会社紀文食品=주식회사 기분식품. 1938년 창업)이 일정 기준에서 조사한 것을 토대로 한 숫자이니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텐데요.
지역마다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니모노 혹은 나베료리로서의 오뎅 국물의 기조는, 가쓰오부시(鰹節=가다랑어 살을 쪄서 말리고 발효시킨 것)와 콤부(昆布=다시마)를 우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건더기 즉 ‘오뎅 노 구’가 무, 콘냐쿠(こんにゃく=蒟蒻=곤약), 그리고 네리모노(練りもの=소금으로 간한 생선살 반죽을 가열해 일정한 모양으로 굳힌 것. 쉽게 말하자면 ‘어묵’이죠). 네리모노의 대표주자는 카마보코(かまぼこ)와 사츠마아게(さつま揚げ)와 치쿠와(ちくわ)인데요. 이 같은 재료와 국물을 한데 담아, 간장 등의 조미료로 간해서 끓인 게 바로 일본 전통 요리 오뎅인 것이죠.
셀 수 없이 많은 네리모노를 일일이 다 열거할 수야 없겠지마는, 그래도 오뎅 애호가를 자처한다면, 가장 일반적인 ‘카마보코’와 ‘사츠마아게’정도는 알아두어야, 어디 가서 ‘내가 오뎅에는 좀 일가견이 있다’라는 말도 할 수 있겠지요.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본적으로 흰 살 생선으로 만든 것이 카마보코이고, 사츠마아게는 주로 등 푸른 생선살을 으깨서 만들거나 여기에 두부를 더해 반죽한 건데요(더러는 흰 살 생선도 사용됩니다). 원형, 타원형, 사각형 등 여러 모양이 있고, 야채나 삶은 달걀이나 양념이 들어가기도 하는 등 베리에이션이 아주 풍성합니다. 둘 다 기본 조리법은 어육, 즉 생선살을 으깨서 소금, 설탕 등으로 간해 반죽한 덩어리를 기름에 튀기는 것.

그런데 사츠마아게는 동쪽에서는 그리 부르지만, 서쪽에서는 특이하게도 텐푸라(天ぷら. 튀김옷 없이 튀긴다는 점이 흔히 알려진 텐푸라와의 차이점)라고 부르거나, 츠키아게(つき揚げ. 카고시마 지역의 경우)라고도 부르는데요. 사츠마아게의 또 하나의 특징은, 대개는 생선살 2가지를 섞어서 반죽한다는 것. 또, 네리모노는 지역마다 그곳에서 가장 많이 어획되는 특산물이 주재료가 됩니다.
다양한 부재료를 감싸거나 섞은 사츠마아게도 있습니다. 삶은 달걀을 감싼 것, 오징어나 우엉 등을 샌딩한 것, 반죽에 양파나 대파, 베니쇼가(紅生姜=생강 뿌리를 매실초에 절인 저장식품) 등의 야채를 섞은 것, 새우나 문어나 멸치 등이 들어간 것, 별도의 고명이나 양념이 들어간 것 등등. 이렇게 다양한 재료로 맛있게 조미된 사츠마아게들은 오뎅뿐 아니라, 그 자체를 구워 간장에 찍어 먹기도 하고 다른 니모노나 우동에 넣어 먹기도 하죠.
또 하나의 대표주자, 유난히 고소한 감칠맛이 도드라지는 ‘치쿠와’는 으깬 어육을 길다란 대나무 꼬챙이에 돌돌 말아 모양을 잡은 뒤 가열해서 만든 네리모노, 즉 어묵입니다. 명태, 임연수, 상어, 날치 등 다양한 생선살로 만들고, 반죽에는 전분, 달걀흰자와 소금, 설탕 등이 들어가는데요. 이 치쿠와의 원형은 헤이안 시대부터라는 설도 있지만 야요이 시대(弥生時代 기원전 10세기~서기 3세기 중반)라는 설도 있으니, 제대로 모양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어쩌면 가장 오래된 어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두부 그 자체를 재가공한 것도 오뎅에 자주 들어가곤 하는데요. 대표적인 것으로는 아츠아게(厚揚げ)가 있는데, 아주 두텁게 썬 두부를 기름에 튀긴 아츠아게도 있고, 두부에 갈치나 명태 살 등을 섞어 만든 아츠아게도 있습니다. 또, 구운 두부인 야키도우후(焼き豆腐)나 아무 조미를 하지 않은 그냥 두부를 오뎅에 넣기도 합니다.

다시 오뎅 조리법으로 돌아가서, 오뎅을 끓일 때는 건더기(오뎅 노 구)를 넣는 순서가 따로 있습니다. 제일 먼저 국물에 넣어야 할 것은 무, 감자, 삶은 달걀, 곤약, 무스비콤부(結び昆布=길게 자른 콤부를 묶어 놓은 것) 등등. 이와 같이 단시간에 다시지루(だし汁=육수)의 풍미가 깊숙이 배기 힘든 재료들은, 국물이 차가운 상태에서부터 넣어, 중불 정도에서 1시간 남짓은 끓여야 제대로 맛이 스미기 때문이죠.
앞선 재료들이 다 익은 다음에 넣어야 하는 것이 네리모노. 또 모치킨챠쿠(餅巾着=유부 안에 찰떡을 넣고, 양념된 박고지, 즉 ‘칸표’로 입구를 묶은 것), 삶은 문어 같은 것도 이 즈음 넣어야 합니다. 규스지(牛すじ=소 힘줄)도 있다면 이때 함께 넣고요(없어도 무방). 가장 마지막에 넣어야 하는 것은 한펜(はんぺん=으깬 생선살에 참마 등을 섞고 기포를 가득 품게 해서 만든 일종의 삶은 카마보코). 한펜은 오래 끓이면 오그라들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맛이 짙게 밴 한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중간에 넣기도 하죠.
오뎅뿐 아니라 다양한 일본요리에서도 활약하는 한펜은, 스루가(駿河=현 시즈오카 중심부의 옛 이름)의 요리사 한페이(半平) 씨가 고안해 냈다 하여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는 게 정설인데요. 도쿄에는 우키한펜(浮きはんぺん=끓는 물에 띄워 삶아내는 흰색 한펜), 시즈오카(静岡)에는 쿠로한펜(黒はんぺん=전갱이, 고등어, 정어리 같은 등 푸른 생선이 주재료인 ‘D’자 모양의 회색 한펜), 오사카(大阪)에는 안페이(あんぺい=갯장어가 주재료인 한펜), 이런 식으로 지역마다 각기 이름도 다르고 특징도 다른 한펜이 있습니다. 처음 먹을 때는 다소 낯선 식감에 주저하다가도 국물 맛이 적절히 밴 한펜을 몇 입 베물어 먹다 보면 그 매력에 지체 없이 빠져들게 되는 맛이랄까요.

시초가 아득하다 보니 꽤나 일찍부터 일반가정에도 침투했을 것 같은 오뎅. 그러나 오뎅도 보통 사람들의 먹거리로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한참을 지나서입니다.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8년)에 들어서야 두부나 콘냐쿠를 꼬챙이에 끼워 미소를 발라 구워 먹는 덴가쿠가 반찬으로서 일반가정의 식탁에도 오르기 시작했으니까요. 게다가 근대 이후에야 끓여 먹는 니코미 오뎅(煮込みおでん=국물 요리로서의 오뎅)으로 진화했죠. 칸사이(関西=관서) 지방에서는 지금도 ‘니코미 오뎅’을 그 자체로 먹는 오뎅과는 구분하여 ‘칸토니’(関東煮=관동식으로 끓인 오뎅) 혹은 ‘칸토다키’(関東炊き=관동식으로 만든 오뎅)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각지마다 고유의 재료나 방식으로 조금씩 다른 오뎅을 향토 요리로 자부하는 곳이 많습니다. 네리모노, 무, 콤부가 들어가는 건 대체로 공통되지만, 해산물, 규스지, 찹쌀떡 등등 외에도 그 지역만의 특색이 있는 ‘구’가 더해지곤 하는데요(때로는 비엔나소시지나 치즈와 같은 이질적인 ‘구’가 들어가기도 하고요). 도쿄의 경우, ‘치쿠와부’(竹輪麩)라는 것이 있는데, 앞서 설명해 드린 ‘치쿠와’의 모양을 본땄지만, 치쿠와와는 달리 어육이 아닌 밀가루로 반죽한 것이 특징. 이런저런 ‘향토 요리 오뎅’이 다양하니, 일본 전역을 순차로 돌며 맛보는 오뎅 순례도 한번 해봄직합니다.
자 이제 즐거운 레시피 시간입니다. 오뎅 역시 본래 보통 사람들의 먹거리인 만큼 복잡한 공정은 없습니다. 다소 시간이 걸릴 뿐. 여기서 알려 드리는 레시피는, 손쉬운 재료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일본 일반가정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지극히 일상의 레시피입니다. 좀 더 특별한 재료나 다시지루(육수)로 고급화한 프리미엄 급 오뎅 전문점도 있지만, 어쩌면 그런 것들은 전통 오뎅과는 거리가 먼 것이죠.
일본의 보통 가정에서 그러는 것처럼 길은 두 가지. 다시지루, 즉 국물을 직접 우려 쓰느냐, 아니면 시판 농축 츠유(つゆ=간장, 미림 등으로 간한 다시지루를 농축해 놓은 것)를 희석해서 쓰느냐인데요. 사실 밀가루 덩어리가 아닌 생선살 함량이 높은 본격 네리모노를 쓸 수 있다면 시판 농축 츠유로도 충분합니다. 네리모노 속 생선살에서 우러나는 감칠맛 전도사 ‘핵산’이 시판 츠유일 때 다소 우려되는 맛의 빈 공간을 꽉꽉 채워주니까요.
그러나 여기서는 희석해서 쓰는 시판 농축 츠유가 아닌, 직접 우리는 다시지루를 사용한 레시피를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조금 시간은 걸릴지언정 그리 번잡한 공정의 요리도 아니거든요. 잘만 하면 손님상에도 내놓을 수 있는 기품 넘치는 맛의 본향 버전 오뎅! 주말 특식으로도 안성맞춤입니다.
만약 시간이 된다면, 먼저 냄비 가득 담은 찬물(약 5인분일 때 1.6~1.7리터)에 가로세로 10cm쯤으로 자른 다시마 대여섯 장을 넣고 하룻밤 또는 반나절 또는 1시간 담가 둬요. 그러나 시간이 없다면, 냄비에 찬물과 다시마를 담아 바로 ‘약한 불’에서 ‘서서히’ 끓이다가 비등점 직전 다시마를 제거하면 됩니다. 이렇게만 해도 꽤나 진한 UMAMI를 얻을 수 있어요. 물론 전자의 경우가 보다 더 깊은 풍미를 얻지만요(찬물에 다시마를 장시간 담갔다 쓸 경우에도 다시마는 비등점 직전 꺼냅니다).
다시마를 건져낸 물에 가쓰오부시를 넣고(여기에서는 1.5~1.7리터 물에 가쓰오부시 5줌 정도) 뚜껑을 닫은 뒤, 한 벌 끓으면 약한 불로 줄여서 5~6분 천천히 우리고 불을 꺼요. 별도의 빈 냄비에 미림과 청주를 각기 반 컵씩 담아 센불로 1분쯤 끓여서 알코올 기운을 날린 다음, 앞서 우린 국물을 체로 걸러 붓고, 조금 진하게 간하는데요(체로 거를 때 가쓰오부시를 누르거나 휘젓거나 하지 마세요. 압을 가하면 쓰고 떫은 맛이 나오거든요).
간을 할 때에는, 우리네 국간장쯤에 해당하는 우스구치쇼유(薄口しょう油)가 있다면 더 좋겠지만, 없다면 국간장도 무방합니다. 완성 국물이 약 1.5리터 정도면 소금 약 1/4작은술, 우스구치쇼유 70ml, 설탕 1큰 술이 적당한 간이에요(맨 마지막에 오뎅을 완성한 시점에도 다시 한번 간을 더 보고 모자라면 우스구치쇼유로만 간을 맞춥니다).
참고로,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는, 국물을 한번 차갑게 식힌 다음 다시 불에 올려, 재료(오뎅 노 구)들을 차례로 넣어 끓이면 더 좋은데요. 국물을 한 차례 차갑게 식히면(휴지시키면), 들떴던 맛이 안정화되고 보다 조밀히 융합됨으로써 훨씬 더 깊은 맛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그냥 국물을 만들자마자 바로 써도 되긴 하죠. 네리모노에서 우러난 우마미가 깊은 맛을 꽤 보완해 줍니다. 건더기는 기호에 따라 좋아하는 것을 적당히 조합해도 되지만, 기본적으로 무와 다시마는 필수, 그리고 사츠마아게나 치쿠와 등 네리모노 몇 가지 또한 필요충분조건이란 점은 잊지 마시기를…

무, 삶은 달걀, 감자 등 단단한 것들은 국물에 넣은 다음, 완전히 익고 국물 맛이 깊게 스밀 때까지 대략 50분은 끓여줘야 해요. 대신 그다음에 넣는 네리모노나 규스지 등 부드러운 재료들은 10분만 끓이면 충분.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네리모노와 콘냐쿠 등은 반드시 한차례 끓는 물에 미리 데친 다음(이 공정을 ‘시타유데’=’下茹で’라고 해요), 오뎅 국물에 넣도록 해야 한다는 건데요. 네리모노의 경우, 앞서 기름에 튀겨진 것이므로, 끓는 물에 한 벌 데침으로써 여분의 기름을 걷어낸다(이것을 전문용어로는 ‘아부라누키’=’油抜き’라고 해요)는 의미가 있고, 콘냐쿠의 경우는 끓는 물에 데치면 특유의 잡미나 쓴맛을 없앨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팁 하나를 더 드린다면, 건더기들은 오뎅이 완성된 다음 천천히 식으면서 맛을 완전히 빨아들이는 원리가 있으므로(우리네 갈비찜처럼요), 시간만 된다면 오뎅은 완성 후 한 차례 완전히 식혔다가 다시 데워서 드실 때 훨씬 더 맛있게 드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데워서 드실 때에는, 한 벌 끓자마자 바로 아주 약한 불로 줄여서 10분만 더 끓입니다.
본향 노포 오뎅의 내공에 한 발 더 다가가고 싶은 분이 계신다면, 또 하나의 팁이 있습니다. 무나 감자 등 단단한 것들만 익힌 상태의 국물을 완전히 식혀 하룻밤 냉장했다가, 다시 끓일 때 처음으로 네리모노를 넣는 겁니다. 물론 이 네리모노 역시 미리 ‘시타유데’(한 벌 데치는 것)해서 냉장해 둔 것을 써야 합니다. 네리모노의 경우 너무 오래 끓이면 네리모노 자체의 풍미가 국물로 너무 많이 빠져나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네리모노의 맛이 열화할 뿐 아니라, 국물과 네리모노 반죽의 과도한 융합이 국물을 탁하고 맛도 텁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공정 자체는 하나도 어려울 게 없는데 꽤나 번거로워 보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공들여 만든 오뎅은 한 차원 다른 맛. 정말 공을 들이면 공을 들인 만큼 맛이 수직 상승해요. 뜨끈뜨끈한 오뎅에 미소다레(味噌ダレ=미소에 청주, 설탕, 미림을 잘 섞은 다음 가열해 볶은 것)나 유즈고쇼(柚子胡椒=유자와 고추를 원료로 한 조미료)나 네리가라시(練り辛子=분말 상태의 겨자를 물과 뜨거운 물로 반죽한 것) 등을 더해 먹으면 그저 연달아 감탄사가 나오게 되어 있다니까요.
여러 소스 중 미소다레에 찍어 먹는 것도 별미. 만들기도 아주 쉬워요. 먼저 미림 1.5 큰 술, 청주 3 큰 술, 미소 4 큰 술, 설탕 5 큰 술을 모두 냄비에 담아 잘 섞어 줘요. 설탕은 구매한 미소의 당도에 따라 가감하도록 합니다. 고르게 잘 섞였으면 약한 중불에 올린 다음,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아주 약하게 줄여 줘요. 주걱을 바닥에 댄 상태로 5분쯤 저어주되, 이때 타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냄비를 이따금씩 열원에서 떼었다 다시 올렸다 하는 방식으로 하면 좋죠. 주걱으로 바닥 중앙을 갈랐을 때 생기는 길이 한동안 유지될 만큼 걸쭉해졌다면 완성. 차갑게 식으면 점도와 농도 모두 확 올라가서 완성 시점에는 너무 걸쭉하지 않은 게 좋습니다.

가쓰오부시와 다시마의 우마미에 시원한 무가 더해지고, 여기에 어육으로 반죽한 각종 네리모노가 더해지고, 또 때때로 규스지, 문어나 조개 등 다양한 해산물까지 합류하게 되면, 그 자체로 진미가 아닐 수 없는데요. 그 진미 한입마다 미소다레가 올라가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맛의 시너지가 일어납니다. 그야말로 한입 머금을 때마다 입안에서 구수한 감칠맛이 폭발하죠. 어육 유래의 네리모노가 발산하는, 핵산 그득 진한 감칠맛의 향연, 꼭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슬슬 여담입니다. 여기저기 출장 겸 여행이 잦았던 몇 주를 보내고, 마지막 여행에서 돌아온 지난 주말, 여독 탓인지 날이 그리 춥지 않은데도 뜨끈한 국물이 당기더라고요. 어떤 여행이건 무조건 순기능이 많다고 느끼지만 역시 오래 돌아다니다 보면 피로가 쌓이는 법.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뭔가가 간절해졌죠. 손쉽게 해먹을 게 뭐가 있을까 냉동칸을 뒤지다가 운 좋게 발견한 사츠마아게와 치쿠와. 워낙 좋아해서 종종 구비해 두는 ‘본격 오뎅’의 재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바로 준비하고 만들어 먹었어요. 입안으로 실어 나를 때마다 행복해지는 맛. 그래, 이번 달은 이거다!
이번 기고의 주제는 그렇게 지극히 사소한 동기로 정해졌습니다. 본향의 맛 그대로 본격적으로 만들면 무척 맛난 요리이기도 하지만, 머릿속에 되살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추억이 서린 음식이라는 것도 일조했죠.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소위 ‘가성비’도 좋아 선호되는 이웃 나라 여행자들이 부쩍 늘고 있는 상황. 본향의 오뎅과 깊이 교감(?)하고 그 맛을 만끽하는 데 도움이 될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어릴 때, 그러니까 도쿄에 살고 있을 당시, 자타공인 미식가였던 나의 아버지는 뭔가 맛난 것과 조우하면, 그다음 번에는 우리를 데리고 나가 그 맛을 보여 주곤 했는데요. 어느 날 저녁 일찍 귀가한 아버지는 서두르라고 재촉했죠. 그리고 향한 곳이 예나 지금이나 ‘넥타이 부대의 성지’인 신바시(新橋). 번잡한 뒷골목에 자리한 식당의 문을 열자 커다란 ‘코노지 카운터’가 펼쳐졌어요(コの字カウンター=카운터가 ‘ㄷ’ 혹은 ‘U’자 형태로 생긴, 카운터 안에서 요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먹는 전형적인 일본 식당). 왁자지껄한 식당의 구수한 내음을 맡자마자 왜인지 막 신이 나고 흥분되었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해요.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들이 점령하다시피 한 카운터에 앉아 구경하게 된 광경은 한층 더 설레게 했습니다. 아직 어렸으니 그 시간 그런 이자카야(居酒屋=요리가 제공되는 술집) 풍 오뎅 전문점을 가본 건 처음인 데다, 눈앞에서 오뎅 요리가 생중계되는 풍경까지 난생처음 보고 있자니 기분이 춤을 출 수밖에 없었죠. 다채로운 재료들이 국물 속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데, 시시각각 식욕을 자극하는 ‘UMAMI’ 향내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던 것 같아요. 뜨거운 국물과 오뎅을 입안에 번갈아 넣으면서, 어른들이 말하는 그 ‘시원~하다’라는 느낌이 어렴풋이 스쳐 지나갔던 것도 같습니다. 이후 오뎅과 사랑에 빠져버렸죠.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오뎅 일대기가 빛바랜 추억담으로 이어지고 말았는데요. 사실 우리 식 어묵탕도 충분히 미각을 사로잡는 맛을 품고 있죠. 그러나 본향의 진미 오뎅 또한 비껴가기 아쉬운 맛.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곳곳에 있는 것이 향토 오뎅. 가장 대중적인 일본요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니, 이웃 나라로 미식 여행을 갔다면 오뎅 집도 한 번쯤은 들러봐야 제대로 와쇼쿠 세계를 평정했다 할 수 있겠지요. 전문 식당이 아니어도 초등학교나 중학교 근처에 있는 완구나 과자를 파는 가게인 ‘다가시야’(駄菓子屋)에서도 팔고, 동네 슈퍼나 편의점, 또 야타이(屋台=포장마차) 등에서도 파니, 짧지 않은 여정이라면 오뎅과 한 번도 못 마주치고 오기도 힘듭니다.
허나 꼭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서울 곳곳에도 본향의 맛을 내주는 전문 식당이 늘고 있으니, 비 오는 날 혹은 한잔하고 싶은 날 향해도 좋겠죠. 그러고 보니 국내에도 잘하는 전문 식당이 꽤 있으니 굳이 오뎅 때문에 바다 건너는 수고와 비용을 감수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아무튼 조금은 차가운 봄바람이 살살 부는 날, 본향 오뎅의 UMAMI를 음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직접 만들어서 드셔 보시면, 의외로 본격적인 맛이 나서 깜짝 놀랄 레시피가 여기 있다는 것도 기억해 두시고요(정말 어렵지 않아요. 있는 재료로 만들어도 충분. 아츠아게가 없다 한들 두부로 대체하면 그만이고요. 국내에도 가쓰오부시는 물론 꽤 다양한 본향의 본격 오뎅 재료를 파는 전문 슈퍼마켓이 온/오프라인으로 운영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