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 브루어리(이하 버드나무)에는 책과 맥주가 있는 풍경이 있습니다. 버드나무는 2018년 책의 해를 맞아 우연히 시작한 책과 맥주 이벤트가 자리를 잡아, 이제 강릉 지역의 8개의 독립 서점과 상생하며 ‘책 읽는 강릉’을 목표로 ‘책맥’ 행사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맥주를 양조하는 양조장에서 책 읽는 풍경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그럼 맥주 양조장이 아니라 도시라면 어떨지 생각해 봤습니다. 책을 읽고, 맥주를 마시는 여행, 즉 이 도시에서 책맥 여행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서 찾게 된 곳이 전주입니다. 전주는 책과 맥주를 좋아하는 분에게 매력적인 도시입니다. 공공도서관뿐만 아니라 작은 도서관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전주에만 도서관이 149개가 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테마별로 코스를 나눈 도서관 여행 코스도 존재합니다. 전주는 대기업 맥주 위주의 가게 맥주 문화(일명 가맥)와 크래프트 맥주 문화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특히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가볼 만한 맥주 펍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저는 하염없이 도시 전주를 헤매며 책과 맥주를 탐닉했습니다. 그중 몇 개의 도서관과 펍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연화정도서관]
연화정도서관은 덕진공원의 연못인 연화정에 떠 있는 섬입니다. 이곳에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도서관이 있습니다. 이곳은 덕진공원을 찾아 산책하러 온 시민뿐만 아니라 여행객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곳입니다. 주변에는 전북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만약 전주역에서 간다면, 동물원과 전북대학교 정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추천합니다. 복잡한 도시에서 붐비지 않는 한가로운 길이며, 도시 속 숲길 정취가 있기 때문입니다. 연화정은 말 그대로 연꽃이 있는 정원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연꽃이 한창 물이 오른 지금이야말로 연화정도서관에 가기에 적기입니다. 제가 방문했을 때는 장마 기간이었는데, 오히려 비가 와서 더 찬란한 연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도서관의 건물 중 연화당은 기역자로 되어 있는 공간입니다. 책이 아주 많은 도서관은 아닙니다. 총 도서가 2천 권 남짓. 기역자의 가로선에는 책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 있고, 세로선에는 넓은 공용 테이블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밖을 바라보고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습니다. 책은 전주 여행을 담은 책, 전주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들, 예를 들자면 최명희의 혼불이나 조정래의 아리랑, 박경리의 토지 등이 꽂혀 있습니다. 유명 한국 작가의 소설이나 어린이 도서들도 일부 보입니다. 연화루는 연화당의 맞은편 건물입니다. 이름 그대로 신발을 벗고 들어가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에 난간이 있는데 더러 난간에 걸터앉아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보입니다.

[맥락 브루어리]
연화정도서관을 나와 버스를 타고 맥락 브루어리로 이동합니다. 덕진체육관을 지나, 객사길을 지나, 웨딩 거리에 다다르면 맥락 브루어리에 도착합니다. 맥락 브루어리는 전주에 생긴 지 이제 5개월밖에 안 된 신생 양조장입니다. 맥락 브루어리는 양조 공간과 펍 공간이 마주 보며 따로 자리 잡고 있는데 규모는 크지 않고 아기자기한 맛이 있습니다. 양조 시설도 그리 크지 않은 걸로 보아 펍에서 소비할 정도의 맥주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양조장 벽에 태극기와 캐나다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이곳 대표이자 양조사인 ‘정승연’ 대표는 캐나다에서 7년간 맥주 양조를 배웠다고 합니다.

맥락 브루어리의 맥주는 콜쉬, 흑맥주, IPA, 망고를 넣은 밀맥주, 오디를 넣은 밀맥주 이렇게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첫 잔으로 콜쉬를 선택했습니다. 콜쉬는 에일이지만 라거처럼 차갑게 보관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라거라고 생각하고 마셔도 무방한데, 깊은 풍미를 느끼기보다는 청량하게 마시면 그만입니다. 맥락의 콜쉬는 적당히 향긋하고 구수한 맥아의 맛이 느껴지는데, 잡미 없이 깨끗하고 청량했습니다. 대중적인 맥주로 차별화를 확실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맥락은 모든 맥주의 가격이 8천 원입니다. 콜쉬는 460ml로 미국 파인트와 비슷한 정도이니 양도 넉넉합니다. 곁들일 안주로 명란 크림 감자전을 골랐는데, 감자전으로만 생각했다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입니다. 치즈를 얇고 길게 썰어 덮었는데, 파스타를 먹듯이 포크로 돌돌 말아 먹으니, 서걱거리는 감자의 질감과 짭조름한 명란이 만나 맛이 일품입니다.
두 번째로 오밀맥(오디를 넣은 밀맥주)을 마셨습니다. 어릴 적 고모가 담가 주신 오디주가 떠올라 만들었다는데, ‘어릴 적에 술을 마셨다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맥주를 바라봅니다. 검붉게 진한 피의 색이 아주 강렬합니다. 오밀맥의 특징은 밀맥주이면서도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전통주 중에서 달콤한 오디주를 생각하고 마셨는데 그 반전의 맛이 의외의 만족감을 줍니다. 플레인 요거트에 살짝 오디를 섞어 놓은 느낌이랄까요. 산미 또한 강하지 않습니다. 산미와 단미가 적어서 여러 모금을 마셔도 질리지 않습니다.

갑자기 대차게 비가 내립니다. 처마 밑으로 처마 간격만큼 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문득 천장을 올려다보니, 서까래의 모습이 어지러운 듯하면서 그 안에 질서가 잡혀 있습니다. 한국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느껴집니다. 순간 비를 뚫고, 전주까지 온 보람이 느껴졌습니다.
[동문헌책도서관]
맥락 브루어리를 나와 택시로 동문헌책도서관으로 이동합니다. 1km 정도의 거리로 원래는 걸어가려고 했으나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동문헌책도서관은 한옥마을의 외곽인 동문 거리에 있던 기존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만들었습니다. 과거 소중하게 읽었던 책들을 다시 만나고 책의 가치와 지식을 발견하는 재미를 주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소장 자료는 문학이 4천 권 정도, 사회과학과 기술과학이 500권 정도, 대략 5천 권이 넘습니다.
동문헌책도서관은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된 평수가 작은 건물입니다. 1층은 중고 책과 DVD 영상이 가득합니다. 구석에 턴테이블이 눈에 띄는데, 조용히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습니다. 1층은 오가는 분들이 많아 조용한 도서관에서 조금은 분주한 느낌이 들지만, 2층은 1층보다 조용한 공간입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책을 읽을 수 있습니다. 지하가 가장 독특합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며놨는데, 수많은 보드게임과 만화책이 가득합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안락한 ‘다락방 느낌의 방’도 있고, 오로지 책만 읽기 위해 ‘숨어 있기 좋은 방’도 있습니다.

동문헌책도서관은 헌책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로 최상급의 중고 책들이 가득합니다. 게다가 DVD와 LP판, 보드게임과 만화책을 갖춰 놓은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한옥마을에 들러 더위나 추위를 피해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한옥마을도서관]
동문헌책도서관을 나와 걸어서 한옥마을도서관으로 갑니다. 비가 오긴 했지만, 지척이라 걷기로 했습니다. 두 도서관 간 거리는 걸어서 10분 정도. 한옥마을도서관은 한옥마을 한복판에 조성되어 있습니다. ‘인생이란 여행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채워가는 삶의 여행자’라는 주제로 세웠다고 합니다. 한 번에 찾기가 쉽지는 않을 수도 있는데, 일단 전주전통술박물관을 찾고, 그 옆에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한옥마을도서관은 꿈방앗간, 대나무숲, 마음곳간이라는 3개의 작은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꿈방앗간입니다. 이곳은 너무 작아 오래 앉아 읽기가 민망할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앉아서 책을 읽는 사람보다는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곳의 책은 전주의 색과 역사를 담은 여행책과 동심을 담은 어린이책들이 주입니다.

입구의 왼쪽, 꿈방앗간의 건너편에 보이는 공간이 대나무숲입니다. 이곳은 취미와 예술 등 일상을 주제로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대나무 숲은 1~2 평 정도의 작은 공간인데 책을 보기보다는 엽서를 쓰기에 좋은 공간입니다.
마음곳간은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곳에 에세이, 철학, 고전 소설 등의 책이 채워져 있습니다. 태블릿으로 책을 검색해서 찾을 수도 있습니다. 대략 10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관광객이 테이블을 끼고 앉아 책을 읽고 있습니다. 도란도란 모여 앉아 있는 가족들도 보입니다. 조용한 라운지 재즈 음악도 흐릅니다. 대청마루로 나와 봅니다. 삼색 고양이 한 마리가 깊은 낮잠을 자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좋아하는 옆집 고양이라고 합니다. 오랫동안 조용히 고양이를 바라봤습니다.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이제 맥주를 마시러 가야 할 시간입니다.

[노매딕 브루잉의 전용 펍 노매딕 비어가든과 노매딕 비어템플]
전주의 웨딩 거리에는 전주의 터줏대감 크래프트 맥주, 노매딕 브루잉(이하 노매딕)이 있습니다. 노매딕은 외국인 양조사 ‘좌니’와 그의 동료이자 아내인 한국인 ‘한나’가 만나 2016년에 문을 연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입니다. 웨딩 거리는 전주에서 일명 ‘웨리단길’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거리인데, 결혼 산업과 관련된 점포 80여 개가 밀집된 곳입니다. 북적이는 객리단길이나 한옥마을에서 조금 벗어나, 여유롭게 걸으며 젊은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공간을 볼 수 있는 거리여서, 최근에 찾는 발걸음이 늘고 있습니다.
노매딕은 두 개의 전용 펍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노매딕 비어 가든(이하 비어가든)이고, 다른 하나는 양조장 맞은편에 자리 잡은 노매딕 비어템플(이하 비어템플)입니다. 두 곳을 모두 방문해 보았습니다. 먼저 비어가든을 찾았습니다. 비어가든은 양조장을 열고, 처음으로 문을 연 전용 펍입니다. 위치는 한옥마을에서 전주천 방향으로 걷다 보면 나오는 교동주차장 바로 앞에 있습니다. 외국인 양조사가 보기에 한옥마을은 정말 흥미로운 곳이었을 것입니다. 양조사 좌니는 가장 한국적인 공간에서 외국에서 들여온 크래프트 맥주를 마신다면, 오히려 한국의 문화적인 존재감이 느껴질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문을 연 곳이 이곳 비어가든입니다.
비어가든을 찾은 시간은 5시였는데, 점심과 저녁 사이에 낀 시간대여서 그런지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원래는 복도와 같은 외부에도 구석구석 꾸며 놓은 공간이 있었는데, 장마철이라 그런지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팝콘을 무료로 제공하기에 직접 가져다 먹었습니다. 하루 종일 비에 짓눌리고 눅눅한 기분이었는데, 뽀송뽀송한 팝콘을 보니 한결 기분이 나아졌습니다.

노매딕의 맥주는 기호에 따라 순한 맛, 중간 맛, 강한 맛을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마신 맥주는 거의 순한 맛이었음을 알고, 중간 맛 중에 노매디카(아메리칸 IPA)를 골라 봤습니다. IPA를 마시면 항상 웨스트 코스트 IPA인지 이스트 코스트 IPA인지 확인해 보는데, 노매디카는 조금 애매했습니다. 알고 보니 노매디카는 좌니의 고향 오대호 지역을 연상시키는 제 3의 코스트 IPA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비어템플을 찾았습니다. 비어가든에서 비어템플까지는 1km 정도에 달하지만, 한옥마을을 가로질러 가기 때문에 느긋하게 주변을 구경하며 걸으면 금방 도착합니다. 한나는 노매딕 양조장 건너편에 있는 건물을 눈여겨 보고 있다가 매물로 나와서 바로 계약하고 비어템플로 만들었습니다. 이 건물은 1945년에 지어졌는데 서까래와 나무 바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를 감추지 않고 들어내게 했고,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를 무료로 구해서 사용했는데, 오히려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개성이 넘칩니다. 비어템플을 방문한 시간은 7시 정도였는데, 이미 꽤 많은 테이블이 차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양조장이 보이는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제공되는 맥주는 비어가든과 같이 총 12개의 맥주입니다. 대신 잔의 크기가 작아 가격이 더 저렴합니다. 노매딕은 대량 생산보다는 예술가적 창의성을 가지고 소량으로 맥주를 생산합니다. 때로는 맛이 강하고 놀라운 맥주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복합적이면서 균형적인 맥주를 추구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중간 맛 중에서 골라 봤습니다. 아메리칸 스타우트와 아메리칸 사워 에일을 마시고 나왔습니다. 균형 잡힌 맥주를 마시고 있으니 균형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번 기사를 위해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책맥 투어를 해봤는데요. 걸어서 책 속으로, 걸어서 맥주 속으로 가는 여행, 전주에서는 곳곳에서 가능합니다. 이번에 찾은 도서관과 브루어리 정보를 공유합니다.
도서관 여행 인스타그램 @jeonju_librarytravel
맥락 브루어리 인스타그램 @macrock_brewery
노매딕 브루어리 인스타그램 @nomadicbrewingco
노매딕 비어가든 인스타그램 @nomadicbeergar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