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을 할 때 완전히 새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어렵습니다. 원래 있던 걸 드러낸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줄어들죠. 이와 관련해 나츠메 소세키의 <열흘 밤의 꿈>에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은 꿈에서 유명한 불상 제작자 ‘운케이’가 작업하는 걸 지켜보는 모습이 나옵니다.
여기서 운케이는 ‘완전히 새로운 걸 창작한 게 아니라, 안에 완성된 결과물을 끄집어냈다’고 묘사됩니다. 저는 이 끄집어냈다는 표현을 ‘본질을 잘 드러냈다’는 말로 바꿔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본질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을 의미합니다. 창작을 할 때 본질을 잘 드러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운케이가 조각하는 모습을 통해 그 원리를 좀 더 살펴봅시다.
운케이는 필요 없는 부분을 날리고, 필요한 부분을 선명히 부각하는 과정을 통해 본질을 끄집어냈습니다. 이 이야기는 디자인 원리를 잘 보여줍니다.
[배경과 전경]
디자인을 할 때 본질을 끄집어내기 위해선, ‘배경(땅, ground)’과 ‘전경(그림, figure)’의 관계를 세우는 법을 익혀야 하는데요. ‘배경’과 ‘전경’은 형태 심리학인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배경’은 말 그대로 정보의 배경을 의미하고, ‘전경’은 그 배경 위에 놓인 그림을 가리킵니다. 감상자는 전경을 먼저 주목해서 보고, 그다음 배경으로 눈이 가죠.
창작자는 감상자의 시선의 흐름을 계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머릿속에서 숫자를 한 번 메겨보세요. 전경을 1이라고 하고, 배경을 2라고 했을 때 시선의 흐름을 계산하는 거죠. 그래야 사람들이 내가 바라봐줬으면 하는 본질적인 부분을 가장 먼저, 그리고 오래 바라볼 테니까요. 실제 사례를 통해 그 원리를 알아나가 보도록 합시다.
[1단계: 본질을 하나로 압축하기]
보이시는 이 사진은 저스틴 리 셰프가 럭셔리 도자기 브랜드 베르나르도와 협업을 통해 만든 특별한 디저트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듭니다. 장미의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나는 색상은 ‘붉은색’일 텐데, 왜 ‘흰색’을 사용했을까요? 저스틴 리는 롱블랙과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는데요.
그는 접시의 본질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흰색을 사용했다고 답했습니다. 도자기 브랜드 베르나르도의 신제품을 선보이는 자리였기에, 그는 접시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만약, 저스틴 리 셰프가 장미에 붉은색으로 포인트를 줬다면 전경에 나올 주인공이 2명이었겠죠. 시선이 먼저 가는 부분이 2곳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자리는 하나여야 합니다. 접시와 디저트가 동시에 눈에 들어오면, 감상자 입장에서는 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디저트를 배경의 자리에 양보하고 전경의 자리를 접시에 양보했죠. 덕분에 전경과 배경 사이의 관계가 명확해졌습니다. 전경에 들어갈 요소를 하나만 두었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접시에 먼저 눈이 갑니다. 그 결과 베르나르도 접시의 장식적인 아름다움이 부각되었죠.
이렇게 전경에 들어갈 요소를 명확히 하려면, 본질을 하나로 압축해야 합니다. 애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켄 시걸은 그의 저서 <미친듯이 심플>에서 ‘요점을 명확히 하려면 최소화가 열쇠다’라는 말을 남겼는데요.
본질을 제외한 부분을 간소화해야, 말하려는 바가 분명해집니다. 어디가 중요한 부분인지 스스로 요점을 명확히 해야, 필요한 부분에 악센트를 줄 수 있거든요. 악센트를 주기 위해서는 대비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2단계: 대비를 활용해 전경과 배경 관계 만들기]
악센트가 들어갈 자리는 당연히 전경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대비가 큰 쪽에서 작은 쪽으로 자연스럽게 시선이 이동하거든요. 따라서, 전경에서는 대비를 크게 주어야 하는데요. 대비를 조절할 수 있는 요소는 크기, 장식, 색상, 여백과 같은 요소가 있습니다.
이 요소를 조절하면 대비를 줄 수 있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대비를 줄 때는 항상 다른 요소 간에 관계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비는 상대적인 개념이거든요. 지면에 배치한 다른 요소와 ‘비교했을 때’ 차이를 조절하는 게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대비를 크게 하려면 악센트가 줄 부분을 다른 요소들보다 크기를 더 크게 하거나, 장식을 더 주거나, 색상을 더 밝고 진하게 만든다거나, 내가 강조할 요소 옆에 여백을 두는 방법을 사용하면 되죠.
반대로, 대비를 줄이려면 악센트를 없애야 합니다. 눈에 띄는 부분을 다른 요소들과 크기를 비슷하게 한다거나, 장식적인 요소를 줄인다거나, 색상을 다른 요소와 비슷하게 만든다거나, 여백감을 다른 요소와 비슷하게 두면 되죠.
대비를 많이 준 부분은 전경이 되고, 대비를 약하게 준 부분은 배경이 됩니다. 저스틴 리 셰프는 접시를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해 디저트의 대비를 줄이는 방식을 사용했죠.
먼저, 그는 디저트 색상을 접시 색상과 비슷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디저트 위에 있는 황금빛 장식이 접시의 장식보다 과하지 않죠. 또, 접시의 황금빛 장식과 같은 색상을 사용해서 대비를 줄였습니다.
이렇게 대비를 줄여 장미 모양 디저트는 접시와 조화를 이룹니다. 감상자의 시선이 전경에 해당하는 접시에 가기까지 시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운케이가 재료에서 석상의 본질을 끄집어낸 듯, 접시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는 디자인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