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퍼런스 활용 감각을 기르려면 편집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독자적인 편집 이론으로 유명한 마츠오카 세이고는 그의 저서 <지의 편집 공학>에서 편집은 2가지 과정 거친다고 말합니다. ‘분절’하고 ‘관계’ 지우는 것. 한마디로 ‘끊고’, ‘연결’하는 게 편집입니다.
이 두 과정 없이 통째로 레퍼런스를 따라하는 걸 ‘모방’, 끊고 연결한 과정을 거친걸 ‘활용’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모방’과 ‘활용’을 어떻게 창작에 이용할 수 있을까요?
1 모방을 통해 스킬을 늘리자
모방은 당연히 실무에서 써먹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실력을 기르는 좋은 훈련이 되죠. 저는 디자인 스튜디오 다닐 때, 실장님들과 일할 기회가 생기면 ‘어떻게 편집 디자인을 잘할 수 있는가?’ 여쭤봤습니다. 항상 돌아오는 대답이 같았습니다. ‘잘한 작업물을 따라 하는 훈련을 해라’고요.
왜냐하면, 레퍼런스를 모방하면 구조적으로 분석해, 활용하기 좋게 끊는 능력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왜 이 사람이 이런 이미지를 활용했을까?’, ‘왜 행간을 이렇게 널널하게 썼을까?’ 톺아볼 수 있죠. 모방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따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해야, 레퍼런스를 분석하는 능력도 개발할 수 있습니다.
2 활용을 통해 원작을 뛰어넘자
앞서 ‘모방’을 통해 레퍼런스를 구조적으로 분석하는 법을 익혔습니다. 이제 ‘활용’을 위해 끊어진 레퍼런스를 연결하는 법을 익혀야 하는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콘텐츠가 내용과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참고한 레퍼런스에서 내용과 표현을 모두 따라 하는 건 ‘모방’입니다. 반면 레퍼런스 ‘활용’은 전체가 아니라 부분을 내 상황과 맥락에 맞게 가져와 연결하는 기술이죠.
모방은 분석하는 눈을 기르는 훈련이지만, 원작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작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최적화된 기술을 단시간 내에 온전히 따라 하기는 힘들거든요. 또, 내가 레퍼런스를 사용해야 할 맥락에 완전히 일치하는 자료는 찾기 힘듭니다. 찾았다고 하더라도 모방은 ‘뺏겼다’는 오명을 남기죠.
반면, 활용은 원작을 뛰어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레퍼런스를 그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내 상황과 맥락에 맞게 고쳐서 사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하지만 다른 새로운 창작물이 나오죠. 또, 원작을 떠올릴 수 없게끔 변형해서 사용하면, 모방에 대한 위험도 줄일 수 있습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말을 남긴 피카소도 레퍼런스를 ‘활용’하는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그는 자기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아프리카 미술을 레퍼런스로 ‘활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레퍼런스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요? 앞선 내용이 막연할지 모르니, 실제 제가 심볼을 만들 때 참고한 레퍼런스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설명하겠습니다.
3 직접적인 활용 예시
- 같은 내용, 다른 표현
먼저 심볼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상징물을 사용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만들기 위해서인데요.
예를 들어, ‘애플’이 사용한 사과 모양 상징을 통해, 우리는 ‘창의성’이라는 무형적인 가치를 인식할 수 있습니다. 상징물은 이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와 차별점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도와주죠. 그리고 이 상징물에 좋은 인식이 쌓일수록 브랜드가 가진 힘은 강력해집니다.
따라서, 내 브랜드가 전달할 가치를 생각한 후에 심볼을 만드는 게 좋겠죠. 평소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구절을 모아두면 브랜딩을 하는 유용한 소스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제 브랜드 심볼을 만들기 위해 참고한 레퍼런스인데요. 표현을 만든다고 레퍼런스를 꼭 표현에서만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글도 레퍼런스가 될 수 있죠. 내용을 표현으로 바꾸면 되니까요. 모방 위험도 줄어들고,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생깁니다.
이외에도 여성복에 대한 관점을 바꾼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모자 디자이너에서 시작했다는 점. 책 <어린 왕자>에서 코끼리를 삼킨 거대한 보아뱀을 모자에 비유하는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모자를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제 브랜드와도 결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는 창작자가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 더 나은 창작 생활을 하도록 돕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내용에 대한 레퍼런스를 찾았으니, 표현에 대한 레퍼런스를 찾아야겠죠.
- 같은 표현, 다른 내용
모자를 심볼로 활용하려 했지만, 자칫하면 모자 브랜드로 착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자와 함께 인물 실루엣이 드러나는 표현을 참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레퍼런스를 찾기 전 몇 가지 기준을 더 세웠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한 후에 레퍼런스를 찾으면, ‘컬러배스 효과’로 필요한 자료가 눈에 더 잘 보입니다. 컬러배스 효과는 ‘머릿속으로 한 개념을 인식하면, 평소에는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게 눈에 확 들어오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빨간 우산을 사면, 평소 길거리에 보이지 않던 빨간 우산이 눈에 더 잘 보이는 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레퍼런스를 찾으면서 왁스 실링을 하는 도장에서 제 상황에 맞는 표현을 찾았습니다. 인물 외양을 강조하지 않는 표현을 사용하면 모자가 더 돋보일 거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이 레퍼런스는 제 브랜드가 나타내려는 가치를 온전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상태죠. 사용되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간극은 레퍼런스 표현을 바꾸면서 좁혀야겠죠. 참조한 레퍼런스에 모자가 더 부각되도록 디자인을 바꿨습니다.
오늘 이렇게 레퍼런스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드렸는데요. ‘이 방법이 답이다’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제가 레퍼런스를 사용하는 기준’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그동안 어떻게 레퍼런스를 사용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함을 많이 느꼈었거든요. 또, 레퍼런스 모방과 활용에 대한 차이를 스스로 모르니, 여러 분야 자료를 모아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저만의 기준’을 만드는 방식도 결국 레퍼런스를 모아 ‘활용’하는 방식이었네요.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 때 ‘완전히 새로워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기 쉬운데요. 하지만,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없죠. 내가 찾는 게 내용이든 표현이든, 정보를 편집해서 기존에 있는 걸 새로워 보이게 만들면 됩니다. 레퍼런스를 활용하는 감각을 길러나가면, 이러한 부담감에 점차 벗어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