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가 지났다. 봄과 여름의 경계를 밤낮이 오가는 이 시기에 제일 필요한 것은 푸르름이 전해지는 공기를 충분히 즐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타이밍. 너무 더워지면 바깥에 앉는 것이 쉽지 않고 작은 벌레와 끊임없이 신경전을 벌여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라스에 앉아 이런 호사를 누릴 때 빠질 수 없는 건 와인이다. 아, 낮술이면 더 좋고!
[훌륭한 와인 리스트에 눈길이 가는 비노파라다이스 한남]
테라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지만 와인 리스트까지 훌륭하다면 즐길 준비 100%. QR코드로 와인 메뉴판을 살폈는데 와인 수입사가 하는 곳이라 그런지 종류가 꽤 됐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메뉴판을 자세하게 봤을 것이다. 자, 그러면 뭐부터 마셔야 할까. (정답이 없다는 게 정답!)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많은 와인 중에 고르는 것이 가슴 설레는 일이겠지만 와인 초보라면 오히려 막막할 수 있다. 그럴 때 나만의 팁은 화이트로 시작해 보라는 것이다. 물론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날씨와 어울리기도 하지만 경쾌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산도로 기분을 한층 더 좋게 하는 마법을 부려줄 것이므로.


내 선택은 알리고떼(Aligote). 이미 알고 있는 생산자라 반가운 마음도 있었고 안주 없이 홀짝거리려는 심산도 있었다. 요즘 샤르도네(Chardonnay)보다 손이 더 가는 게 이 품종이다. 한때, 인정받지 못한 서러움을 앉고 있는 품종이지만 그 꼬리표를 떼고 주목받는 화이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잘 익은 사과에 레몬이나 살구 향이 느껴지는 화이트로 곁들이는 음식이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와인이다.

(오른쪽) 끌로드 뒤가 부르고뉴 루즈 (Claude Dugat Bourgogne Rouge)
부라타 치즈가 주인공인 샐러드, 화이트 라구 파스타 그리고 떡볶이 & 돼지갈비 튀김을 주문했는데 와인과 잘 어울리는 요리였다. 떡볶이와 샴페인 조합을 제일 좋아하지만, 화이트 와인과도 잘 어울렸다. 화이트 하나로는 충분하지 않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릴 샴페인 아니면 주위를 둘러볼 여유를 충전해 줄 레드 와인. 이 난제를 해결한 것은 유명한 생산자의 레드였다. 덕분에 돼지갈비와 라구 파스타에 손이 더 가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코와 입을 모두 사로잡은 건 끌로드 뒤가(Claude Dugat). 매력적인 지브리 샹베르탱(Gevrey Chambertin) 와인을 만드는 집안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름이 새겨진 레이블만 봐도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레드 베리류 아로마가 느껴지고 밸런스가 좋은 피노 누아(Pinot Noir)였다. 나만의 팁이 하나 더 있다면 섬세한 테이스팅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선 너무 비싼 피노 누아를 선택하지 말라는 것이다. 온전히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선 안타까운 마음만 들기 때문이다. 추가로 올리브를 주문해 와인을 마지막까지 즐겼다. 배부를 땐, 올리브나 치즈 몇 조각으로 와인 마지막 방울까지 느껴보자.



[프렌치 아메리칸 감성 가득한 부베트 서울 ]
레스토랑 입구에서부터 사진을 찍게 된 이곳은 뉴욕, 파리, 도쿄 등에도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지인의 추천으로 가게 된 곳인데 아직 못 먹어본 게 많아서 다시 가야 할 듯하다. 무엇보다도 메뉴판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런 감성 놓치지 못하는 분들께 추천한다. 자, 낮술은 무조건 탄산 터지는 걸로 시작해야 한다. 이에 반대하는 분들도 모두 존중합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크레망(Cremant). 샴페인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생산한 스파클링 와인이지만 크레망은 상파뉴 지역이 아닌 곳에서 자란 포도나 샴페인에 사용되는 포도 품종이 아닌 품종을 섞기도 한다. 쿠페 잔(coupe glass)에 마실 수 있어 좋았는데 보울 부분이 얕아 기포가 빨리 없어진다는 단점도 있지만 영화 속 화려한 파티에서 자주 등장한 잔이라 그런지 나까지 파티광이 된 느낌이었다. 입맛 돋우는 소스가 얹어진 대파 한입에 크레망 한 잔이면 있던 근심도 다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이 외에도 에스카르고, 홈메이드 푀유테, 스테이크 타르타르 그리고 프로슈토를 주문해 먹었다. 모두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였는데 덕분에 크레망은 빠른 속도로 없어졌다.





그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알리고떼. 와인은 모두 레스토랑이 추천하는 이달의 와인 중에 고른 것인데 와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보통 생산자에 관한 간략한 정보나 테이스팅 노트를 알려주시는데 그러면 마셔본 와인을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다. 줄어든 와인만큼 기쁨이 채워졌다. 이날은 오전에 비가 와서 조금 쌀쌀했는데 실내에 있다가 바깥으로 옮겨 마지막을 즐겼다. 따뜻한 테라스에 앉아 있고 싶은 마음에 차와 커피로 마무리.


얼마 남지 않았다. 지금이야! 테라스에 앉아서 와인 마실 수 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