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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레시피를 읽는 법

예전엔 조리 잡지 같은 것을 보려면 실물 잡지를 사야만 했다. 레시피가 도처에 널려 있지도 않아 좋은 레시피를 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산이어서 메모를 하거나 철을 해 두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레시피가 인터넷에 넘쳐나는 시대다. 활자와 이미지만으로도 모자라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 친절하게 눈으로 보여주니 직접 조리를 해보려는 사람들에게 조리법을 익히는 방식은 이제 완전히 영상 쪽으로 넘어간 듯하다. 검색에서 나온 정보가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든 남의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이해하기 쉽게 진화한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억과 인지와 행동과 관능을 건드리는 일과 깊이 관계된다. 그것은 기억에서 나와 기억으로 다시 들어가서 수정되고 다듬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다.

사진 출처: Unsplash

오늘은 인터넷에 나오는 좀 고전적인 방식인지 모르겠지만 글자로 나열된 메뉴명을 보고 그것이 어떤 음식 맛을 가지고 어떤 와인과 어울릴 것 같은지 생각해 보는 방법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러한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식당에서 주문을 할 때도 유용하고 개인적으로 조리 실력과 음식 지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모든 학습이 그렇듯 학습이라는 과정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접근법이 다 다르게 마련이지만,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아래의 정리가 인터넷에 널린 정보를 자기 것으로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싶다.

레시피를 볼 때 제일 먼저 할 일
가. 주재료를 visualize 하라. (이름을 보고 빨리 주재료를 파악하라.)

메뉴명 보고 아는 법
1. 메뉴명이 재료 나열하는 방식인 경우
이런 방식인 경우는 조리법과 재료가 분리된 스타일이라 주재료만 파악하고 그 재료가 조리과장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만 잘 지켜보면 큰 줄기는 놓치지 않을 수 있다.

    2. 메뉴명이 고유명사인 경우
    이름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다. 꼬꼬뱅같이 그 말이 만들어진 원어의 뜻을 알면 조리법과 주재료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외국인이 김치를 만들려고 김치 레시피를 처음 인터넷에서 봤다고 해 보자. 그는 김치라는 고유명사 안에 들어있는 여러 기본 정보량을 몰라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외국 음식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이럴 땐 먼저 이게 어떤 류의 음식인지를 그려보는 것이 좋다. 식품의 유형이 뭔지를 말이다. 절임류인지 발효식품인지 가열인지 아닌지 등등으로 구분해 보다 보면 세상의 모든 음식은 다 서로 맞닿아 있어 대게 어떤 음식인지 자기가 가진 정보 안에서 대충 파악이 된다. 사모사(samosa)를 우리 음식으로 치면 튀김만두다 라고 이해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다음 주재료를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 재료와 유형, 두 개의 정보가 합쳐지면 배추를 절인 음식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되고 거기에 고추가 들어가고 갖은양념이 들어가 숙성이라는 시간이 들어가는 음식이구나 하고 이해하게 된다. 물론 이해가 만들 줄 안다는 것은 아니다. 제목을 보고 그 정도로 부담이 없어지면 만드는 법을 읽을 자신감이 좀 생긴다는 뜻이다. 이렇게 확장해 간다.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작하는 막막함은 갑갑하지만 기량이 늘어나면 그런 시간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사모사 / 사진 출처: Unsplash

      3. 주재료와 조리법이 친절하게 쓰인 경우 (ex: Pan-seared snapper with pepper coulis)
      이런 레시피가 가장 이해하기 쉽다. 주재료와 조리법이 명쾌하게 정의되어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조리법을 따라 읽으면서 주재료를 어떻게 하는지에 집중하면 된다.

      나. 주 조리법을 찾아 그 작업을 상상하라.
      주 조리법을 안다는 것은 레시피에서 가장 큰 줄기를 잡았다는 뜻이다. 주재료 이외의 재료가 부재료나 장식, 향신료일 가능성이 크다면 주 조리법 이외의 조리법은 대부분 재료 손질이거나 거르는 것이거나 추가하는 것이다. 주 조리법을 아는 것은 게다가 내가 가진 기물과 화력으로 이 음식을 할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정리해 준다. 바비큐그릴이 있어야 제맛이 나는 레시피라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집에서 하기는 고려할 변수가 많다. 설비와 기구 등이 동원되고 열원을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동시에 다른 작업이 가능할지 아닐지를 알려면 주 조리법을 확실히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서양에서는 주 조리법이 건식과 습식으로 나누어지며 건식에 튀김, 볶음, 지짐, 구이 등이 있고 습식에 데침, 삶음, 조림, 탕, 국, 찜 등이 있다.

      사진 출처: Unsplash

      다. 조리 과정은 3단계 이하로 단순화하라.
      레시피에 나오는 조리법을 보면 보통 아무리 짧아도 8단계 이상이고 10단계 정도는 된다. 그러니 조리에 자신이 없는 경우는 일단 길이에 질리기도 한다. 그럴 땐 조리 과정을 크게 3뭉치 이하로 나눌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해야 질리지 않고 레시피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앞부분에 주로 나오는 어떻게 씻고 썰고 준비하는 것은 뭉뚱그려 ‘재료를 준비하라는 얘기구나’라고 이해하고, 그걸 조리하는 것이 중간 과정이면 ‘이렇게 조리하라는 거구나’라고 단순화하고, 그릇에 담고 장식하고 서비스하는 후반부 과정은 ‘잘 담아내라는 거구나’라고 이해하면 된다.

      사진 출처: Unsplash

      라. 큰 줄기가 이해되면 단순화된 정보 뭉치 안에 들어가 세부 정보를 들여다본다.
      인터넷 문서 안에 연결 링크를 가진 단어나 문장처럼 일단 단순화된 레시피는 필요에 따라서 다시 세부로 들어가 자세히 읽는다. 어떻게 다듬으라는 건지. 밑 작업의 특징은 무엇이고 가장 중요한 공정 특성은 무엇인지를 파악한다. 써는 방법, 넣는 순서, 분리와 혼합 방법, 거름 여부, 타이밍, 설정 온도나 재료의 온도, 질감, 소금간, 물렁한 정도, 윤기, 때깔, 선명도, 장식, 소스나 드레싱과의 조화, 서비스 기물, 방식, 다른 음식과의 궁합,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 음식인지, 어떤 술과 어울리는지 등 레시피 서술에 들어가는 핵심 정보는 무수히 많다.

      마. 핵심을 이해했으면 이 레시피만의 강조점을 잡아내고 자기 스타일에 맞게 변형한다.
      모든 레시피에는 창작자의 느낌과 주장, 강조점이 담겨있다. 그것은 재료간의 매칭법일 수도 있고 조리법과의 새로운 조합일 수도 있고 소스일 수도 있고 장식이거나 기물의 선택일 수도 있다. 그 어떤 특징도 절대적일 수 없지만 그 안에는 창작자의 고민과 배려가 담긴 숨은그림찾기가 있다. 레시피를 잘 읽으면 그 긴 문장 중 하나 둘 씩 자기가 놓치고 있었던 귀한 정보가 있고 그런 작은 차이를 이해하는 눈은 우리의 조리 지능을 더 높게 해 준다.

      사진 출처: Unsplash

      정리하면
      아는 메뉴의 레시피를 볼 때는 기존 기억을 끌고 와서 차이를 비교해 보고,
      이 레시피만의 특징을 이해한 다음 자기 것으로 할지 말지를 결정하면 되고,

      모르는 레시피를 처음 마주할 때는
      먼저 주재료와 주 조리법을 파악하고,
      그걸 중심으로 삼아서 주변 재료와의 조합이 언제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고,
      자기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보고(없으면 뭘 더 사야 하는지),
      내가 가진 조리 기구로 만들 수 있는 과정인지 생각해 보고(일종의 사고 실험 같은 것),
      가능하면 레시피대로 따라 해본다.
      맛이 좋으면 받아들이고 이상하면 왜 그런지 고민해 본다.
      자기 나름의 기억 방식을 동원해 기록을 남긴다. (그림을 그리거나 다시 과정 정리 등)
      맛을 일단 머릿속에 저장하고 더 나은 맛이 나올 때까지 그 맛을 기억한다.

      이수부
      이수부
      원테이블 식당에서 혼자 밥을 지으며 먹거리를 둘러싼 우리의 기억과 몸짓이 문화 안에서는 어떤 의미일지 문득 되돌아보는 일상 관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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