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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보리 우리 맥아 우리 맥주

한국의 전통주는 우리의 땅에서 나온 재료를 사용해 우리의 전통적인 양조 방식으로 만들어 우리 술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맥주를 우리 맥주로 부를 수 있을까요? 맥주의 양조 방식은 서양의 전통적인 발효 술의 제조 방식이므로 우리의 것이라 할 수 없겠지만, 맥주의 재료만이라도 우리의 것을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물론, 맥주의 모든 재료를 우리의 것으로 사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일부의 재료를 우리의 것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있습니다. 지난번 기사에서 우리 홉으로 만든 맥주를 소개했다면, 이번 기사에서는 우리 보리를 사용한 맥주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충북 음성에는 직접 보리를 재배하여 수확한 보리로 맥아를 생산하고, 그 맥아를 사용하여 맥주까지 양조하는 맥주 양조장이 있습니다. 음성의 생극면에 위치한 UF비어입니다. 2024년 3월경 취재 요청을 드렸을 때 UF비어의 허성준 대표는 이왕이면 5월에 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보리밭의 풍경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2개월을 더 기다려 5월의 중순쯤에 양조장을 찾았습니다. 충북혁신도시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허성준 대표가 직접 마중 나와 있었고, 같이 양조장까지 이동하면서 양조장을 가진 도시의 많은 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생극은 아주 작은 지역입니다. 군데군데 초록의 보리밭과 모내기 전의 논이 보이고, 아주 작은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있습니다. (이 중학교는 허성준 대표의 할아버지가 설립하셨다고 합니다.) 건물과 정원이 아름다운 생극 가톨릭 성당을 지나니 바로 보리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보리밭 사이를 가로지르는 작은 길 끝에 UF비어 양조장이 우뚝 서 있습니다.


5월이 되면 UF비어의 앞마당에 청록색 보리밭이 펼쳐집니다.

UF비어의 또 다른 이름은 생극양조입니다. 허성준 대표는 과거 이 지역에서 할아버지가 손수 만들고 수십 년간 운영되었던 막걸리 양조장의 추억을 되살려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현재 막걸리 양조장은 없어졌지만, 그 이름을 보존함으로써 언젠가는 막걸리 양조장도 다시 열겠다는 포부를 새긴 것입니다. 허성준 대표가 한국의 보리가 맥주 양조에 적합하지 않다는 편견을 부수고, 우리 농산물을 재배하여 질 좋은 맥주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러한 지역적인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농업의 근본적인 문제가 허성준 대표를 농부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식단에 우리의 농산물이 들어 있지 않은 현실입니다. 농부의 입장에서 이러한 것을 개선하기 위해 우리 농산물이 들어간 가공식품으로 맥주를 선택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태어나고 그의 일가가 대대로 터를 잡은 이곳이 가장 적합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보리는 맥주 양조에 적합하지 않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잠시 보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보리는 크게 두 줄 보리와 여섯 줄 보리, 겉보리와 쌀보리로 구분합니다. 이중 맥주에 사용되는 보리는 두 줄 겉보리입니다. 간혹 여섯 줄 보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보리를 식용으로 사용하거나 엿기름이나 보리차에 사용했기 때문에 여섯 줄 보리를 재배해 왔습니다. 오로지 맥주만을 위해 보리를 재배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맥주만을 위한 보리는 우리나라에서 전북의 군산과 충북의 음성 등 몇 군데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보리는 보통 남해안과 제주도 등 따뜻한 지역에서 잘 자라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음성은 그리 따뜻한 곳이 아닙니다. 허성준 대표는 3월 봄에 파종하고 6월 여름에 수확하는 보리 품종을 선택하여 음성에 20만 평의 농지 중 3만 평을 맥주 보리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품종은 바로 검은 수염이라는 별명을 가진 흑호와 추위와 병충해에 강해 농부들이 키우기 편한 강맥입니다.


흑호의 발아된 싹이 마치 검은 수염 같습니다.

UF비어는 제맥 설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제맥 설비를 갖춘 곳은 군산의 군산맥아와 UF비어 둘뿐입니다. 제맥이란 수확한 보리에 싹을 틔워 맥주 양조에 적합한 맥아로 가공하는 과정을 말합니다. 제맥 과정은 보통 보리에 수분을 충분히 공급하여, 보리를 발아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침맥 과정과 수분, 습도, 산소 등의 조건을 맞추어, 보리가 싹을 틔우게 하는 발아 과정, 그리고 발아가 되면 보리의 성장을 멈추게 하는 건조 과정이 필요합니다. UF비어는 이러한 과정을 직접 수행하기 위해 제맥 설비를 갖추었고, 설비의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장비를 직접 제작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허성준 대표는 이렇게 만든 장비에 직접 재배한 보리를 기계의 한계까지 투입하여 여러 번 시험해 봤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여러 차례 반복하여 경험을 쌓았고, 이를 모두 수치화하여 데이터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한 이유는 한국의 보리가 가진 본연의 맛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 맛을 살려 우리 맥주를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맨 앞쪽에 제맥 시설이, 맨 뒤 쪽에 발효 탱크가 보입니다.

그런데, 맥아를 직접 생산할 때의 이점은 무엇일까요? 허성준 대표는 그 이유로 원하는 스타일의 맥주 레시피를 만들 수 있다는 걸로 들었습니다. 맥아는 건조의 온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고, 효소의 양도 결정됩니다. 물론 원하는 스타일의 맥아를 해외에서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더 미세하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맥주를 내기 위해서는 직접 만든 맥아가 도움이 됩니다. 특히 하나의 단일 맥아만으로 양조할 때보다 부재료를 사용했을 때 효소의 양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효소는 전분을 당분으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쌀이나 옥수수 등의 부재료는 자체적으로 효소가 부족하기 때문에, 효소가 많은 보리 맥아를 사용하면 부재료의 부족한 효소를 대신해 줄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제맥의 이점은 보리 맥아뿐만 아니라 밀과 같은 곡물도 맥아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성준 대표는 최근 트리티케일(라이밀)이라는 호밀과 밀을 교잡해 만든 작물을 맥아로 사용한 맥주를 만들어 보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직접 맥아를 생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UF비어에서 직접 재배한 보리를 맥아로 사용해 만든 맥주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유기농 싱글 몰트 라거로 100% 단일 맥아를 사용한 라거입니다. 여기서 싱글 몰트란 하나의 지역에서 생산한 동일한 품종의 맥아라는 뜻입니다. 위스키에는 단일 증류소에서 만드는 싱글 몰트 위스키가 있고, 커피에는 단일 원두로 만드는 싱글 오리진이 있습니다. 하지만 단일 맥아로 만드는 싱글 몰트 맥주는 흔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 또한 맥아를 수입에 의존했다면 시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허성준 대표는 이 맥주를 만들기 위해 최고의 보리를 선별해서 사용했습니다. 보리는 직접 재배한 국산 육종 맥주 보리인 흑호를 사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3.3mm 이상의 초우량 흑호만을 사용했습니다. (참고로 국제 기준으로 A급이 2.6mm입니다) 가장 부드러운 맛을 내기 위해서 맥아를 13도의 초저온에서 발효했습니다. 저온에서 느린 시간 발아를 하면 전분 분해 효소, 단백질 분해 효소 등의 효소가 충분히 생성됩니다. 다양한 종류의 효소가 전분과 단백질 등을 당화하여 부드러운 질감의 맥주가 나옵니다. 보리의 재배에서 선별, 가공까지 하나의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설계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맥주는 밝은 황색처럼 부드럽고 신선한 맥아의 맛을 냅니다. 우리의 음식과 함께하면 그 자체가 근사한 푸드 페어링이고, 우리 농산물이라는 지역성과 페어링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맥주병에는 농부를 표현한 캘리그래피에 유기농 인증 마크가 걸려있으니 한번 찾아보기 바랍니다.


UF비어는 현재 5종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미드 나이트 앰버 인텐소는 강한 질감을 가진 알코올 도수 6.8%의 앰버 에일입니다. 스페인어로 Intenso는 ‘강렬함’을 뜻합니다. 재료는 직접 재배하여 생산한 보리 맥아와 쌀 그리고 스페셜 맥아를 섞었습니다. 만약 이 맥주를 마시고 딸기잼과 비슷한 향을 느꼈다면 제대로 음미한 것입니다. 이 맥주를 만들 때 맥아로 딸기잼 향을 추출할 수 있다는 점을 잡아냈고, 곡물만 가지고 이 향을 내기 위해 수백 번 연습했다고 합니다. 10개의 발효 탱크 중에서 항상 2개는 이 맥주를 만드는 데 사용할 만큼 애정이 깊은 맥주입니다. 묵직하면서 달콤하고 끝은 깔끔하기 때문에 딸기 케이크나 딸기 타르트와 함께 마셔볼 만합니다. 맥주병에서 트럼펫을 부는 중년의 남자를 볼 수 있는데, 재즈를 좋아하는 허성준 대표의 취향이 엿보입니다.

돈 슈퍼 세종(Don Super Saison)은 오래전 벨기에 농부들의 세종을 한국의 농부들이 제대로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로 양조했습니다. Don은 돈키호테처럼 스페인에서 남자 이름을 말할 때 씁니다. 허성준 대표는 스페인 아내를 두었는데, 강인한 장인어른을 떠올리면 강인한 농부가 생각나 지었다고 합니다. 알코올 도수가 무려 7.4%입니다. 허성준 대표는 농부의 강한 노동 뒤에 이 정도로 알코올이 높은 맥주를 마셔야 노동의 고됨이 잊힐 것이라며 껄껄껄 웃으며 말했습니다. 돈 슈퍼 세종은 홉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맥아와 효모를 강조한 맥주입니다. 맥아는 직접 재배한 맥아가 70%, 전남 강진의 귀리 30%가 들어갔습니다. 효모에서 나는 강렬한 정향과 향긋함이 묵직한 곡물과 함께 어우러져 복합적인 향과 맛을 냅니다. 맥주병의 그림은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황소입니다. 끊임없이 발을 움직여야 자전거가 움직이듯 끊임없이 노력하는 소처럼 우직한 우리 농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UF비어의 원래 이름은 생극양조입니다. 한자가 어려워 수출하기 쉬운 이름으로 바꾼 것이 UF입니다.

UF비어는 앞으로 음성의 복숭아 등 우리 농산물을 사용한 과일맥주에 도전하고, 직접 재배한 보리와 국내에서 생산된 홉을 함께 사용하여 맥주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게다가 계약 양조를 활성화하여 10개의 발효 탱크 중 일부를 외부 양조업자에 양보할 것이라고 합니다. UF비어의 농부들이 재배한 보리와 직접 생산한 맥아를 사용한 맥주가 확대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보리, 우리 맥아, 우리 맥주는 우리의 땅에 넓게 퍼져 나갈 것입니다.

염태진
염태진
맥주인문학서 맥주에세이 저자 맥주로 내장도 채우고 뇌도 채우며 날마다 좋은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 아이디: @i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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