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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UX는 왜 미로를 닮아가는가

[쇼핑몰에서 길을 잃는 건 우연이 아니다]
대형 쇼핑몰에 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분명 서점을 향해 걷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반대편 매장을 지나고 있고, 아까 본 가게를 다시 마주친다. 동선은 복잡하고, 방향 감각은 흐려지고, 처음엔 영화관을 향했지만 어느새 문구류를 구경하고, 팝업 부스에서 시향을 해보다가 결국 쇼핑백 하나를 들고나오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미지 크레딧: Gruen Associates

이런 일이 단순히 개인의 방향 감각 문제일까? 사실 그렇지 않다. 대형 마트에서는 우유나 생필품을 매장 가장 깊숙한 곳에 배치하고, 쇼핑몰에는 창문도, 시계도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외부 환경을 통해 감지하던 시간과 공간의 감각을 흐리게 만들면, 사람은 방향을 잃고 더 오래 머무르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더 많이 소비하게 된다.

이 심리적 현상은 ‘그루엔 트랜스퍼(Gruen Transfer)’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20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 빅터 그루엔(Victor Gruen)은 미국의 교외 도시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걷고 머물 수 있는 사람 중심의 공간을 구상했다. 그가 1956년 미네소타에 세운 세계 최초의 실내 쇼핑몰, Southdale Center는 유리 천장과 실내 조경, 벤치가 있는 공간이었다. 쇼핑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나는 마을 중심, 도시의 광장 같은 곳이기를 바랐다.

이미지 크레딧: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Library of Congress

그러나 그의 설계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소비 자본에 흡수되었다. 유통업계는 그의 설계에서 중요한 전략적 가능성을 발견한다. 동선을 복잡하게 만들면, 사람은 더 많은 매장을 지나가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된다는 사실. 결국 많은 쇼핑몰이 그의 원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소비를 자극하는 미로형 구조로 진화하게 된다. 쇼핑몰 설계는 단지 공간을 배치하는 작업이 아니라, 사람의 시선과 동선을 정교하게 계획하는 전략적 작업이다. 넓은 통로는 사람을 느리게 걷게 만들고, 그만큼 멈출 확률을 높인다.

센텀 시티, 이미지 크레딧: Studio Kenn

계산대 근처의 껌, 생수, 건전지처럼 필수품이 눈에 띄는 곳에 배치되는 것도 모두 소비 동선을 고려한 결과다. 그리고 이 모든 구조는 사용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소비하게끔’ 만든다. 걷다 보니, 보이다 보니, 마침 필요했던 것 같아서 집어 드는 것.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은 사전에 설계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지 출처: fortune.com

[우리는 왜 앱 안에서 자꾸 헤매게 될까]
‘그루엔 트랜스퍼’는 이제 오프라인을 넘어 디지털 공간에서도 작동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는 길을 잃었지만, 온라인에서는 목적을 잃는다. 사람들은 뉴스 하나만 보려고 앱을 열지만, 어느새 관련 기사, 연관 검색어, 추천 콘텐츠 속으로 빠져든다. 메일함을 정리하려다 쇼핑몰 광고에 혹하고, SNS에서 친구 사진을 보려다 릴스 영상에 30분을 쓰게 된다. 이건 단순한 집중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서비스들 역시, 사용자의 ‘경로 이탈’을 유도하는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productprinciple.co

초기의 SNS 피드는 단순했다. 친구들의 근황이 시간순으로 올라오고, 새 게시물 몇 개만 확인하면 앱을 닫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광고, 밈, 뉴스, 쇼핑 링크, 인플루언서 영상들이 피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본래 목적은 점점 희미해지고, 우리는 피드를 멈추지 않는 손가락을 바라보게 된다.

가장 전형적인 구조는 ‘무한 피드’와 ‘자동 재생’이다.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유튜브 쇼츠는 대표적인 예다. 짧은 영상 하나만 보려던 사용자는 어느새 수십 분을 흘려보내고 있다. 영상은 쉬지 않고 이어지고, 피드에는 끝이 없다. “이것만 보고 꺼야지”라는 생각은 쉽게 무너진다. 넷플릭스처럼 자동으로 다음 화가 재생되는 구조도 비슷하다. 사용자는 정지할 타이밍조차 갖지 못한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의 추천 콘텐츠 재생

쇼핑몰 앱이나 플랫폼에서도 이 흐름은 반복된다. “이 상품을 본 고객이 함께 본 상품”, “남은 수량 2개”, “1시간 이내 구매 시 내일 도착”과 같은 문구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충동을 유도한다. 사용자는 스스로 결정한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그 결정을 유도한 건 타이밍과 감정이다.

또 다른 방식은 ‘앱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설계’다. 콘텐츠를 다 읽고 ‘뒤로 가기’를 누르면 이전 페이지로 돌아가는 대신 앱의 메인으로 이동해 새로운 탐색을 유도한다. 쇼핑몰 앱에서 ‘X’를 눌렀을 때 광고가 닫히는 것이 아니라 이벤트 페이지로 넘어가거나 “정말 닫으시겠습니까?”라는 창이 뜨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용자가 종료하고자 하는 순간을 ‘연기’시키는 방식으로 체류시간을 늘리는 전략이다.

[내가 선택한 게 맞기는 한데…]
사용자는 스스로 클릭했다. 문제는, 그 클릭이 과연 온전히 자율적이었느냐는 점이다. 많은 서비스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척’하면서 사실상 선택지를 유도하거나 왜곡한다. 어떤 버튼은 크고 선명하게 배치되고, 반대 선택지는 작고 흐릿하게 숨어 있다. 가입은 버튼 한 번이면 되지만, 탈퇴는 여러 단계에 걸쳐야 가능하며 중간에 할인 쿠폰이나 ‘마지막 제안’이 끼어든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용자는 시스템이 자신을 돕기보다 조종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인상은 ‘이상한 피로감’으로 남는다. 서비스는 점점 더 친절해지는데, 내가 뭘 원했는지는 점점 흐려지는 것 같다.

기술이 사용자 경험을 설계한다는 것은 이제 단순한 유저 인터페이스의 문제가 아니다. 무엇을 먼저 보게 만들지, 어떤 흐름으로 이동하게 만들지를 결정하는 권력의 문제에 가까워졌다. 심지어 사용자 스스로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까지가 설계의 일부가 되었다.

[길을 잃지 않는 설계는 가능한가]
디지털 환경은 점점 더 편리해지고 있다. 콘텐츠는 사용자가 요청하기도 전에 도착하고, 검색하지 않아도 관심사에 맞는 상품이 추천된다. 최근에는 아마존의 AI 쇼핑 도우미 Rufus처럼, 사용자가 “노트북 추천해 줘”, “이 제품이 다른 것보다 나은 이유가 뭐야?” 같은 자연어 질문을 던지면, 그에 따라 상품 정보를 요약하거나 비교해 주는 기능도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능동적인 질문조차 하나의 동선으로 포섭된 구조 속에서, 사용자는 점점 내가 뭘 원해서 이걸 보고 있는지, 아니면 흐름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건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

이미지 출처: aboutamazon.com

선택지는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 사용자가 접근하게 되는 경로는 미리 정해져 있다. 더 눈에 띄는 버튼, 더 짧은 설명, 더 큰 이미지가 선택을 유도한다. 우리는 자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설계된 흐름에 몸을 실은 채 흘러가고 있을 수도 있다.

이제는 기술이 얼마나 빠르고 편리한가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편리함인지, 그리고 무엇을 중심에 두고 설계되었는지를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더는 길을 잃고도 이유를 모르는 사용자가 아니라, 그 길이 어떻게 설계되었는지를 인식하는 사용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자꾸 길을 잃는 것처럼 느끼는 이유는, 어쩌면 이 공간들이 처음부터 ‘길 잃기 좋게’ 만들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지윤
김지윤
취향이 담긴 물건과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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