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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점저 활용 가능, 팬케이크 만능 레시피!

갓 구워낸 고소하고 따끈따끈한 팬케이크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삼복더위에 무슨 따끈따끈한 이야기이냐고요? 덥다고 차디찬 음식만 먹을 수는 없잖아요. 이열치열도 하루 이틀. 위를 놀라게 하지 않을 적당한 온도, 손쉬운 조리, 팬케이크야말로 여름날에 최적화된 메뉴일지도 모릅니다. 토핑에 힘 좀 주면 영양도 열량도 꽤 챙길 수 있는 것도 커다란 장점.

납작하고 낮은 냄비, 즉 팬(pan)이나 프라이팬 등에 구워낸 케이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팬케이크. 넓은 의미로는 곡물가루, 주로 밀가루를 주재료로 한 반죽을 팬에 구운 것의 총칭인데요. 이를테면 프랑스의 갈레뜨(galette)나 크레페(crêpe), 오스트리아나 헝가리의 팔라친타(palacsinta), 네덜란드의 포페르티어스(poffertjes), 독일의 플린젠(plinsen) 등이 모두 같은 범주의 음식이죠.

크레페
팔라친타

팬케이크의 기원에는 제설이 있지만, 고대 그리스인들이 달군 돌에 밀가루와 우유를 섞은 반죽을 구워 먹은 것이 시초라는 게 정설인데요. 여타 음식이 그렇듯 여러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형식과 형태가 달라지고 토착화한 것이죠. 국내에서 가장 흔히 보는 건 ‘핫케이크’라고도 불리는 정통 팬케이크. 그런데 왜 두 가지 이름일까요?

팬케이크를 간편하게 구울 수 있는 프리믹스(Prepared Mix :밀가루, 조미료 등을 적정 비율로 배합한 혼합물)제품을 최초로 고안한 건 미국. 도톰한 팬케이크에 꿀, 버터 그리고 과일 등은 전형적인 미국 버전이죠. 반면, 영국의 전통적인 팬케이크는 마치 크레페처럼 얇고, 돌돌 말아 분당을 뿌려 레몬을 곁들이는 게 일반적입니다. 특히 영국에서는 ‘참회의 화요일’(Shrove Tuesday =사순절 시작 전날)에 먹는 요리라 해서 이날을 ‘팬케이크 데이’라고도 부르는, 종교적 색채를 지닌 음식이기도 한데요.

재미난 것은 일본에도 팬케이크 데이, 아니 ‘핫케이크 데이’라는 게 있다는 겁니다. 의미는 좀 달라요. 1908년 홋카이도(北海道)가 사상 최저기온을 기록하자 프리믹스 제품 메이커인 모리나가제과(森永製菓株式会社)가 ‘혹한에 따뜻한 핫케이크를 먹고 힘 내자’는 취지로 만든 날인데, 현재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에 앞서 19세기 말 일본에 첫 상륙 당시는 팬케이크로 불렸는데요. ‘핫케이크’로 불리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경위가 더 있습니다. 도입 수십 년 후 미츠코시백화점 내 식당에서 ‘따뜻하게 먹는 케이크’란 점을 알리고자 메뉴에 ‘핫케이크’라고 기재한 것이 이 이름을 널리 퍼지게 했죠. 세월이 흘러 20여 곳의 제조업체가 출시한 프리믹스 제품명도 모두 ‘핫케이크 믹스’였는데요. 이 믹스가 가정의 식탁에 급속히 확산되면서, ‘핫케이크’라는 이름이 대세가 된 것. 두툼한 핫케이크를 구현 시켜준 이 믹스 제품들 이후, 폭신폭신한 수플레 팬케이크가 등장하고, 미국이나 호주 스타일의 여러 팬케이크 등이 가세하면서 ‘팬케이크’와 ‘핫케이크’가 혼용되게 된 것입니다.

이름이야 무엇이 되었건 간에, 알고 보면 믹스 제품 따위 필요 없는 매우 쉬운 요리가 팬케이크. 본향에서 소박한 식사나 간식인 음식이 어려울 리 없죠. 친근한 재료에 손쉬운 배합, 몇 분이면 완성되는 만만한 음식. 알려 드릴, 다채로운 부재료를 더한 팬케이크는 영양도 좀 더 챙길 수 있는 든든한 한 끼 버전인데요. 굳이 말하자면 두께가 얇은 하와이안 팬케이크의 응용 편이라고 할까요?

<직경 14~16cm 크기로 6~8장 구울 때 기본 반죽>
먼저 무염 버터 20g을 내열 용기에 담고 느슨하게 랩핑 후, 전자레인지로 20~30초 녹여 둬요(올리브오일로 대체하면 좀 더 담백한 맛).
중력분 150g과 버터밀크 파우더 20g(탈지분유로 대체 가능), 소금 2g, 설탕 20g, 베이킹 소다 약 2g, 베이킹 파우더 약 3.5g을 모두 위생비닐봉지에 넣어 봉하고, 봉지를 상하좌우로 흔들어서 공기를 품게끔 잘 섞어 줘요.
보울에 달걀 하나를 거품기로 잘 풀어줘요. 여기에 녹여 둔 버터(혹은 올리브오일) 섞고, 이어서 우유 250ml를 섞어요(두유 대체 가능).
여기에, 앞서 섞어 둔 가루류를 넣고 거품기로 잘 섞어 줘요. 가루 알갱이가 남지 않을 정도로만 섞어요(과하게 섞지 않도록 주의!).
약한 중불로 달군 코팅 팬에, 반죽을 적당량(국자의 7할쯤) 붓고 좋아하는 재료를 반죽 위에 적당히 올려요.
1분 정도 굽고(화력에 따라 20~30초 더 구울 수도) 표면에 작은 구멍이 송송 나면 뒤집어서 1분쯤 더 구우면 완성입니다!

옥수수 팬케이크
모타델라 햄을 추가해 샌드위치처럼 접어서 먹어도 별미.

반죽을 구울 때 올릴 재료는 좋아하는 거면 뭐든 가능합니다. 루꼴라, 그라나 파다노나 페코리노 로마노 등 경성 치즈(잘게 자르거나 갈아서 사용), 완두콩 등 좋아하는 콩 삶은 것(삶을 때 소금물로 삶아야 간이 배서 더 맛나요), 삶은 옥수수(내열 용기에 옥수수 1개 담아 느슨하게 랩핑, 전자레인지에 3분 익히면 간단), 잘게 썬 감자(감자도 소금, 후추로 간해 전자레인지로 익혀요), 드라이 토마토, 올리브, 삶은 새우(역시 삶을 때 소금물로 삶아 간이 배게) 등등. 베이컨은 따로 곁들여 먹어도 좋지만, 잘게 썰어 반죽에 올려 함께 구워도 참 맛납니다. 야채나 치즈를 올렸다면, 은은한 산미와 고소한 감칠맛이 좋은 사워크림을 곁들이는 것도 아주 좋은 조합이죠(팁 하나: 옥수수, 올리브, 루꼴라, 완두콩 등을 반죽에 올려 식사용으로 먹는 경우에는 마지막에 팬케이크에 올리브오일을 한 바퀴 둘러 주면 맛이 완전히 급상승!). 여기에는 차갑게 칠링된 와인을 곁들인다면 극락이 따로 없죠.

허니버터 소스를 곁들인 플레인 팬케이크

부재료 없이 구운 플레인 팬케이크는 돌돌 말아, 고소하고 달콤한 허니버터 소스만 뿌려 먹어도 꿀맛. 견과류와 민트를 조금 토핑하면 더 좋고요. 허니버터 소스는(1~2인분 기준) 버터 40g을 내열 용기에 담아 10초쯤 전자레인지로 녹이고, 휘퍼로 저어서 크림화 한 뒤, 여기에 꿀 40g을 섞어주면 끝. 플레인 팬케이크 롤을 말기 전 휘핑 생크림와 과일을 샌딩하면 ‘쁘띠 롤케이크’가 되고, 브리 치즈(brie cheese)나 모타델라(mortadella) 등 프레쉬 햄을 루꼴라 등 야채와 함께 샌딩해 먹어도 맛납니다. 그냥 카프레제 샐러드 같은 것을 곁들여도 맛난 식사가 되고요.

완두콩 팬케이크를 먹기 좋게 잘라 베이컨, 청경채 등과 함께 해보세요.
카프레제 샐러드와 돌돌 만 팬케이크는 브런치 메뉴로 안성맞춤!

흔한 팬케이크도 이렇게 약간만 응용을 하면 보다 맛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는데요. 볼륨 있는 식사로, 또 색다른 간식으로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을 만큼 쉽고 빠른 레시피이지만, 이마저도 분주한 아침에는 부담된다! 그런 경우에는, 밤에 잠깐 반죽해서 냉장고에 넣어 두고 자면 됩니다. 아침에 굽기만 하면 되니까요. 물론 기성 프리믹스 제품을 써도 좋지만, 쉬워도 너무 쉬우니 기왕이면 직접 재료를 배합해 기호에 맞게 만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팬케이크 예찬론 말미에 하나 더 보태고 싶은 이야기는, 좋은 레시피도 중요하지만 음식이란 역시 따뜻한 기억,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때 가장 큰 시너지를 낸다는 겁니다. 누구나 경험적으로 아는 이야기이죠. 계절이나 편리성 이전에 일상에서 소중한 사람과 따뜻한 시간을 보내며 먹은 음식이 최고의 맛으로 기억되는 법.

마찬가지로 필자에게도 ‘팬케이크’란 따뜻한 추억들이 몽글몽글 떠오르는 행복한 음식입니다. 어릴 때 엄마가 카스텔라와 함께 가장 자주 만들어 준 간식이었고, 화실 일본인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 엄마가 푸딩 등과 함께 자주 내주던 추억의 간식. 또, 하굣길 환승 정거장이었던 롯폰기(六本木)에서 종종 친구들과 먹곤 한 맥도날드의 팬케이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일상의 소소한 팬케이크들이 어쩌면 가장 맛난 팬케이크였을 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듭니다.

귀가하면 메이플시럽과 버터, 과일 등과 함께 식탁 위에 놓여 있곤 한 엄마 손맛 팬케이크, 귀가 중 롯폰기에 당도할 즈음이면 가슴 설레게 했던 맥도날드의 팬케이크… 해시브라운과 함께 세트로 나오던 이 맥도날드 팬케이크는 지금도 모닝 메뉴로 판매하니 이따금 먹곤 하는데요. 팬케이크 하나로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매직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꽤나 맛나다고 느끼는 건, 역시 따뜻한 기억 때문이겠지요.

어느 오후 따뜻한 팬케이크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면, 아이에게, 가족에게,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매직처럼 행복해지는 시간을 선사하게 될 거예요. 저뿐 아니라 팬케이크에 관한 따뜻한 기억을 지닌 분도 많을 터. 추억 속 그 팬케이크여도 좋지만, 나만의 오리지널 버전 팬케이크로 평범한 보통의 날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배가시켜 보세요.

by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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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자란 디저트 애호가 이야기야말로 맛을 배가시킬 가장 빛나는 재료라 믿는 사람 네 가지 직업을 거쳐 현재 이야기꾼이자 디저트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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