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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이야기

어떤 빵을 가장 좋아하시나요? 저는 단연 식빵입니다. 어릴 때부터 먹어와 인이 박인 맛이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저의 소박한 입맛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수수함도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이유 중 하나.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일상에 가장 다용되는 빵이 식빵이 아닐까 합니다. 영국이 18세기 무렵 캐나다에서 들여온 강력분 밀가루로 반죽해 직사각형 금속 틀에 담고, 위가 산 모양처럼 부풀게 구워냈던 게 식빵의 시초. 이것이 주석 박스(tin box)로 굽는 형태가 되어 영국령을 거쳐 세계로 확산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로프 브레드(Loaf bread) 즉 식빵이 바로 이 영국 버전과 프랑스의 뺑드미(pain de mie)에서 유래한 것이죠.

그런데 왜 이름이 ‘식빵’인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좀 변화한 재료배합과 굽는 방식에 따른 독특한 질감(졸깃하고 부드러운…)의 일본식 식빵이 들어왔는데, 일본에서 ‘주식용 빵’을 줄여 ‘식(食)빵’으로 불린 것이 그대로 굳은 것입니다.

유래야 어찌 되었든, 동네 제과점이건 유명 빵집이건 대체로 진열대에 상비된 것만 보더라도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빵이 바로 식빵. 근자에 이 땅에 상륙한 치아바타(ciabatta)이니 포카치아(focaccia)이니 하는 것들보다 훨씬 우리 식탁에 올라온 역사도 기니 식빵 한 번 안 먹어 봤다는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사진 크레딧: Freddy G / Unsplash
사진 크레딧: Crystal Jo / Unsplash

빵 종류가 다양해지고 없는 것 없이 다 들어오다 보니, 식빵의 효용이 종종 과소평가 되곤 하지만, ‘자기주장’ 과하지 않은 변신의 귀재요 맛의 스펙트럼이 무궁무진한 것이 바로 식빵. 버터나 잼을 바르거나, 햄이나 스크램블드에그를 샌딩하거나, 혹은 피넛 버터 위에 달걀프라이를 올리거나, 아파레이유(appareil 달걀물)에 적신 식빵을 구워서 먹는 프렌치토스트 등등 보편적인 메뉴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맛난 것이 식빵. 또, 갓 구워낸 김 모락모락 나는 맨 식빵은 그냥 뜯어만 먹어도 모자람 없는 맛이란 건 누구나 아는 바.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손쉽게 식빵이 지닌 매력을 만끽할 최고의 조합이라 여겨지는 건 올리브오일+식빵입니다. 도쿄 살던 어린 시절, 온 가족이 함께 떠났던 여행지 시즈오카(静岡)의 한 깃사텐(喫茶店, 일본식 카페)에서 맛보곤 그 맛에 빠져 버렸죠. 단순히 식빵을 올리브오일에 찍어 먹는 게 아닙니다. 오븐에 바삭바삭하게 구운 식빵에 올리브오일을 듬뿍 뿌리는 건데, 여기에 더해질 약간의 팁이 식빵을 무한 매력덩어리로 만들어 주는… “Simple is the best!”를 외치게 할 진미!

먼저 통짜로 파는 식빵을 구해야 해요. 두께를 최소 2.5cm에서 3cm로 잘라야 하거든요. 그깟 두께가 뭐 그리 중요할까 할 수 있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식빵이 올리브오일을 흠뻑 빨아들여야 하기 때문인데, 오랜 경험으로는 이 정도 두께가 베스트. 재어 본 것은 아니지만 오래전 그 깃사텐 버전도 이렇게 두툼했죠.

도톰한 식빵 위에 바둑판 모양(가로세로 각각 3줄씩 정도)으로 칼집을 깊게 내줍니다(올리브오일이 구석구석 스미게 하기 위한 중요한 장치!). 230도로 예열한 오븐에 식빵을 넣고 3~4분(기종 따라 조금씩 차이 나니 조절을..) 구워요. 굽는 동안 타임 잎을 가지에서 뜯어내고(좋아하는 허브를 써도 됩니다만, 타임 잎이 신기하리만큼 특급조합!), 식빵이 노릇하게 구워지면 오븐 전원 끄고, 여열이 남아 있는 오븐 안에 그대로 식빵을 1분쯤 방치하면 더 바삭바삭한 질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식빵을 오븐에서 꺼내자마자 접시에 담아 올리브오일을 콸콸 두르고, 단맛과 감칠맛의 균형이 잡힌 부드러운 암염(개인적으로는 독일산 AlpenSalz를 선호해요)을 간이 되게 솔솔 뿌려 줍니다. 마지막에 타임 잎을 흩뿌리면 진미 완성! 올리브오일의 향긋하고 매캐한 풍미에 결 고운 짠맛의 암염이 녹아들고, 그 위에 상큼한 타임 향이 입혀진 식빵! 얼마나 맛난지. 이 단조로운 조합에서 이토록 깊은맛이 나다니, 한입에 반하고 말 맛입니다(식빵을 살짝 삼각형으로 자르면 코스요리에 식전 빵으로 내어도 손색이 없죠).

모든 맛의 결정타는 좋은 재료! 기왕이면 식빵이 나올 시간대에 맞춰 찾아갈 만큼 맛에 정평이 난 빵집의 식빵이라면 더 맛날 테고요. 여기에 본연의 향 그득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오일이면 금상첨화. 식빵의 보드라운 빵 부분인 크럼(crumb)과 직접 오븐의 열에 닿아 갈색으로 탄 껍질 부분인 크러스트(crust) 모두를 가장 맛나게 먹을 수 있는, 일명 올리브오일 솔트 토스트! 간단하지만 풍성한 이 맛을 꼭 누려 보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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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자란 디저트 애호가 이야기야말로 맛을 배가시킬 가장 빛나는 재료라 믿는 사람 네 가지 직업을 거쳐 현재 이야기꾼이자 디저트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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