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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전통의 시대

바야흐로 전통의 시대

바야흐로 전통의 시대

전통과 국가유산에 이렇게까지 관심이 높았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방법이 세련되어지면서 자연스레 관객들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그 감동을 ‘물건’과 바꿀 수 있는 ‘굿즈’의 판매도 늘어났습니다. 박물관의 굿즈 브랜드 ‘뮷즈’는 자체적으로 개발 및 생산을 하지 않고 공모전을 통해 상품을 채택하고 ‘유통’을 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습니다. 굿즈 개발 업체들과 개인 작가들은 유물을 콘텐츠로 사용하는 시장에 공격적으로 달려들고 있는 상태로, 시장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박물관 앞에는 줄을 서고 있고, 인기를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2020년 매출액 약 37억 원에서 2024년 212억 원으로 6배가량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 높은 관심은 때로 전통, 유물 그 자체가 아닌 대중문화를 통해 전통이 새롭게 조명받으면서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2019년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드라마 ‘킹덤’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좀비 아포칼립스 물로 넷플릭스의 첫 오리지널 한국 작품입니다. 흥미로웠던 점은 외국인 시청자들의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바로 ‘갓’에 대한 주목이었죠. ‘킹덤은 좀비와 멋진 모자에 대한 드라마’라는 말이 SNS상에 돌았고, 아마존에서 ‘Kingdom Hat’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도 되었습니다.

6년이 지난 올여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한국의 다양한 전통 요소를 전 세계에 강력하게 어필하며 다시 한번 ‘갓’을 소환했습니다. 작품중 보이그룹인 ‘사자 보이즈’가 검은 도포와 갓을 착용했기 때문이었죠. 덕분에 뮷즈 제품 중 갓 관련 굿즈들은 ‘비공식 굿즈’로 불리며 연일 매진 행진입니다.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역임하셨던 작가 고 이어령 선생은 책 [우리문화 박물지]에서 갓의 미학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습니다.

‘갓은 이 지상에서 가장 모자답지 않은 모자에 속할 것이다. 말총으로 망을 떠서 만든 갓은 비나 햇볕 그리고 바람이나 추위를 막기에는 너무나 얇고 투명하다. 사실 갓의 멋은 썼지만 쓰지 않은 것처럼 머리가 환히 들여다보이도록 한 그 투과성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갓을 써도 상투와 망건의 얼비치는 실루엣이 보이고 그때마다 달리 나타나며 환상의 물결처럼 어른거리는 겹무늬의 효과가 그 멋의 핵을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전통에 대한 관심이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쏟아져나오는 지금, 주목할 만한 공간과 플랫폼이 있어 소개해 드립니다. 최근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서 ‘갓’을 주제로 하는 전시가 있었습니다.(2025.08.01~2025.08.21). 한국적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플랫폼 ‘링크서울 (LINKSL)’이 부암동 주택가 골목의 ‘갤러리 투힐미’에서 첫 전시 [EP:1 GAT]를 개최한 것입니다. 갤러리를 향하는 길은 마치 오랜 절을 찾아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부암동의 높은 언덕을 올라 골목을 따라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죠. 외부에서 보면 깔끔하게 정돈된 편집숍을 연상 시키는 콘크리트 건물이지만, 내부에는 거제도에서 해체하여 다시 재조립한 100년이 넘은 한옥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한옥은 약간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었는데, 건물 앞에 얕은 물이 담긴 공간이 있고 하얀 돌들이 놓여 현실과 비현실을 잇는 듯했습니다. 전시는 국가무형문화재 4호인 갓일장 보유자와 이수자(박창영 보유자, 박형박 이수자)의 흑립, 주립, 백립 등 다양한 갓과 손때가 묻은 도구 등을 이용한 공간 구성이 중심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의 평면, 설치 작품, 식물들도 함께 전시되어 다채로운 느낌이었습니다.

고 이어령 선생은 글 마지막에 갓을 표현하는 의미는 실용성도 심미성도 아닌 유교라는 이데올로기의 표현성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갓을 쓰는 행위가 그 사람의 지위를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정신까지 표현하는 일종의 언어였다면, 지금 우리가 전통을 소환하고 재해석하는 것 역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표현일 것입니다. K-Culture라고 불리는 지금의 이 유행이 세계로 더 퍼져나갈수록 우리들은 ‘우리가 서 있는 이 땅과 공동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너무 무거워지고 어려워질 필요는 없겠지만 전통을 우리의 삶으로 끌어오는 일에 정성과 애정이 듬뿍 담기길 바랄 뿐입니다. 투과성은 비어 있음에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이 충실할 때 더 빛을 발하게 되는 것처럼요.

이정형
이정형
악기를 만들다가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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