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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삭 촉촉 가라아게 이야기

얼마 전 시청한 일본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왔습니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게 어떤 커피가 가장 맛난 커피인지는 알고 있다. 내게 가장 맛난 커피란, 세상에 맛으로 정평이 난 커피가 아니라, 매일 같이 마셔서 익숙한 커피… 그런 커피야말로 내게는 최고로 맛난 커피이다.”

곧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를 동네 노포 깃사텐(喫茶店=주로 강배전 커피와 특유의 식사 메뉴를 파는 일본 전통 카페) 카운터에 앉아, 오늘도 낯익은 커피 맛을 음미하며, 늘 마셔온 익숙하고도 편안한 그 맛을 잃게 될 것을 걱정하는 동네 헌책방 주인의 말이었는데요.

이내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리고 문득 나에게 익숙하고도 편안한 맛, 그리고 최고로 맛난 맛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로 가라아게(唐揚げ)입니다.

어릴 때부터 먹어오거나 일상적으로 먹어온 맛을 ‘인이 박인 맛’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도쿄에서 자란 필자에게 가라아게(唐揚げ)도 그런 요리 중 하나입니다. 동네 상점가의 작은 아게모노야(揚げ物や 튀김 전문점)에서 팔던, 닭가슴살로 만든 가라아게가 그것. 하굣길에 툭하면 사 먹고 엄마도 종종 사 오고 그러면서 인이 박이고,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맛난 가라아게가 되었죠. 헌책방 주인의 그 커피처럼요. 어찌나 자주 먹었는지… 성장기에는 몹시 싫어한 붉은 고기의 빈자리를 닭고기가 메우기도 했는데, 가라아게 지분이 꽤 되었지 싶습니다.

그런데, 닭가슴살은 퍽퍽하다는 선입견을 깨는 육즙 촉촉하게 고인 속살, 그리고 과자처럼 유난히 파삭거리는 얇디얇은 외피. 갓 튀겨낸 그 가라아게는 군침 도는 향미부터 이 세상 다른 가라아게들과는 완전히 다른 음식이었어요. 닭고기가 낼 수 있는 최고의 풍미를 선사하는 맛이었다고 할까요. 하지만 서울에는(일본도 마찬가지..) 퍽퍽한 식감을 우려해선지 닭가슴살 가라아게는 거의 없죠. 그러니 직접 만들어 먹게 된 지도 꽤 되었습니다.

요리 초보도 식은 죽 먹기일 난이도 최하 레시피. 두 셋이 안주 삼아 먹는다면 닭가슴살 1팩이면 충분. 한입 크기로 자른 닭고기를 비닐봉지에 넣고 소금 & 후추 1/3작은술씩 넣어(봉지 봉한 후) 봉지를 흔들고 주물러 스미게 한 후, 다진 생강 & 마늘 1작은술씩 넣고 봉지를 또 흔들고 주물러 스미게 하고(생강, 마늘은 생략 가능), 정종 2큰술과 간장 1/2작은술 뿌려 봉지 봉하고 또 마구 흔들고 주무르다 10분쯤 내버려둬요. 다시금 참기름 1큰술 넣어 살살 주무른 뒤, 봉지 끝 1~2cm를 가위로 잘라, 이 구멍으로 여분의 수분 빼내고, 다른 비닐봉지로 옮겨 담아, 감자전분 3큰술 넣고 봉지 봉하고, 상하좌우로 흔들어 닭고기에 전분을 고루 묻혀요.

닭고기를 체 위로 붓고, 체를 흔들어 여분의 전분을 탈탈 털어요. 소량의 기름으로 튀길 수 있게끔, 작고 깊은 냄비에 식용유 붓고(4~5cm 높이) 180도(전분 뿌려 바로 올라오면 됨) 되면 닭고기 투척, 좀 센 약불에 3~4분, 닭고기 뒤집어 또 3~4분 튀겨요. 외피가 진한 갈색이 되면 속은 촉촉이, 겉은 바삭바삭 잘 익었다는 증거!

얼마간 간이 되어 있어 레몬즙만 뿌려 먹어도 맛난데, 피망 소스를 끼얹으면 향긋한 피망 향과 아삭한 식감이 더해져 맛도 향도 배로 풍성해지죠. 피망 소스는 간장 2큰술+식초(혹은 레몬즙) 2큰술+설탕 1큰술+미림 2큰술+물 1큰술+다진 마늘 1작은술+다진 대파 약간(미림, 마늘, 대파는 생략 가능)을 내열 용기에 담아 랩 느슨하게 씌운 뒤 전자레인지에 30초쯤 돌리자마자, 잘게 썬 피망을 섞기만 하면 끝! 은은한 피망 향, 새콤달콤 짭조름 간장 맛과 어우러진 가라아게는 김 모락모락 밥과도 최상의 궁합이고, 시원한 맥주 한잔이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안주로 거듭나죠.

친근한 재료로 만드는 쉬운 요리라지만, 완벽한 맛을 내려면 몇 가지 중요한 포인트가 있어요. 가장 큰 관건은 밑간. 제대로 밑간이 되었을 때,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 돋는 가라아게로 완성되거든요.

엉뚱한 비유 같지만, 밑간의 원리는 피부 관리와 흡사해요. 세안 후 보통 화장수, 로션, 크림 등 유분이 적은 순으로 발라야 깊숙이 침투되는 것처럼 밑간도 마찬가지. 재료에 오일 코팅을 먼저 해 버리면 다른 조미료가 스미기 어려워지죠. 소금, 후추부터 흡수시키고 술, 그리고 참기름을 발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도포 후 잘 스미게 두드리는 것도 피부 관리와 비슷하죠. 마지막 참기름 코팅은 밑간이 새지 않게 가두고 고소한 풍미도 스미게 하는 역할. 정말 피부 관리와 비슷하죠?

밀가루가 아닌 감자전분을 얇디얇게 입히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가라아게는 본래 ‘튀김 옷’을 입히는 게 아니라 바삭바삭한 식감을 위한 얇은 외피를 만들어 주는 게 특징인데요. 체 위에서 한번 탈탈 털어줌으로써 더 얇디얇고 바삭바삭한 외피를 만들 수 있는 거죠.

또, 통상적으로 튀김류는 두 번 튀겨야 더 바삭바삭해진다고 여겨지곤 하지만, 적어도 이 가라아게만큼은 그렇지 않아요. 먼저 170~180도에 3~4분, 그리곤 160~170도에 3~4분 튀기면, 번거롭게 두 번 튀기지 않아도 최상의 바삭바삭함으로 튀겨지고, 속도 마르는 법 없이 촉촉하게 튀겨진다는 사실!

드디어 여담 시작입니다. 일본인의 국민식으로도 불리는 이 가라아게. 한자로는 ‘唐揚げ’라고 쓰는데요. 당나라 ‘당’(唐)자인 이유는 당나라에서 건너왔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입니다. 튀기는 기술이 나라시대(奈良時代 710~794)에 당나라로부터 전해졌는데, 그때 ‘당나라(唐)에서 온 튀김(揚げ)’이란 말이 그대로 이름으로 정착되었다는 것. 또, 꼭 닭고기만이 아니라 다른 고기류나 두부, 야채를 튀긴 것도 가라아게인데, 닭고기 가라아게가 대중적인 먹거리로 확산되면서 가라아게 하면 먼저 닭고기를 떠올리게 된 것뿐입니다.

재미난 것은 문헌상 일본인이 닭고기를 먹기 시작한 건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1868) 후기부터. 그것도 지극히 일부였습니다. 보편적인 먹거리로 가라아게가 널리 퍼지게 된 건 미국에서 브로일러(broiler)가 들어온 쇼와시대(1926~1989). 지금은 지역마다 향토 요리로 내세울 만큼 인기인 가라아게이지만, 의외로 역사가 짧은 거죠.

어디를 가나 원조 싸움이 치열한데요. 최근까지도 오이타(大分)현의 나카츠(中津)시와 우사(宇佐)시가 서로 가라아게 발상지라고 다퉈 왔는데, 결국 나카츠시는 ‘가라아게의 성지’로, 우사시는 ‘가라아게 전문점 발상지’로 자리매김됨으로써 기나긴 분쟁에 종지부를 찍은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또, 홋카이도(北海道)에서는 가라아게가 ‘잔키’(ザンキ)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에히메(愛媛)현 이마바리(今治) 시에서는 센찬키(センザンキ)라고 불립니다. 에히메의 센잔키는 중화요리에서 뼈 있는 닭고기 부위를 튀긴 요리를 칭하는 센차아치(清炸鶏=qīngzháji)의 발음이 일본어화한 것이고, 홋카이도의 잔키 역시 중화요리에서 튀긴 닭고기를 뜻하는 자아치(炸鶏=zhàji)가 변한 이름. 두 지역 다 가라아게와는 선을 긋는 고유의 향토 요리라고 주장하지만, 모두 ‘전분이나 밀가루를 뿌려 튀긴 요리’라는 점에서 가라아게의 학술적인 정의 그대로입니다. 그 밖에도 그저 튀기는 시간이나 타레(タレ=양념으로 쓰는 소스나 끼얹는 소스)의 재료 등에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이지만(현지 사람들에게는 실례일 소리입니다만), 두 곳뿐 아니라 지역마다 가라아게를 고유의 향토 요리로 내세우는 것은, 튀김 법과 타레 등에 변화를 주어 개성을 담아낼 수 있는 매력 넘치는 요리이기 때문이겠죠. 실제로 일본 여기저기를 돌다 보면 각지마다 향토 요리로서 자부심이 강한 요리가 가라아게.

아무튼 본연의 가라아게란 (달걀, 물 등이 들어간 튀김 옷이 아닌) 밀가루나 전분만 얇게 뿌린 채 고온에서 튀겨 내는 것. 도톰한 튀김 옷에 기름 흠뻑 머금은 가라아게는 진정한 가라아게가 아닙니다. 의외로 이런 정도를 걷는 가라아게가 흔치 않으니… 전술한 레시피로 만들어 본향의 가라아게 맛을 꼭 만끽해 보시기를..(물론 꼭 닭가슴살이 아니어도 좋아하는 부위로 만들면 됩니다만, 닭가슴살 가라아게가 정말 맛있습니다!) 과자처럼 바삭바삭하고 속살 촉촉한 가라아게, 꼭 누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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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자란 디저트 애호가 이야기야말로 맛을 배가시킬 가장 빛나는 재료라 믿는 사람 네 가지 직업을 거쳐 현재 이야기꾼이자 디저트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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