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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잇감인가? 사냥꾼인가? 진격거에서 만나는 니체

먹잇감인가? 사냥꾼인가? 진격거에서 만나는 니체

먹잇감인가? 사냥꾼인가? 진격거에서 만나는 니체

‘홍련의 화살’(진격의 거인 1기 오프닝 곡)의 첫 소절은 이 이야기가 어떤 주제를 다루고 있는가에 대해 잘 드러냅니다.
이 만화는 가축과 같은 먹잇감이길 거부하고 사냥꾼이 되길 택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앞선 노래 소절에 나오는 Jäger(예거)는 이 만화 주인공의 이름(성 씨)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에렌 예거는 독일어로 ‘명예로운 사냥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진격의 거인>은 가축이길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택한 소년이 명예로운 사냥꾼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저는 예거를 보면서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가 떠올랐는데요. 니체의 말을 통해 진격의 거인을 짧게 소개하려 합니다.

니체가 말하는 노예

니체는 약자의 생태를 날카롭게 폭로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자신이 상대에게 이길 수 없다 싶으면 ‘툭하면 벌렁 드러눕는 개’가 되는 사람들을 비판했습니다.

가축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에렌

에렌은 주둔 병단 일원인 한네스가 성벽을 소홀히 하며 술을 마시며 노는 장면을 보자 화를 냅니다.
에렌 예거는 먹잇감이 아닌 사냥꾼으로서 삶을 택했기에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개처럼 드러눕길 거부합니다.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강자 중 하나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인이 나오는데요.
대부분 사람은 100년간 거인이 사람이 살고 있는 성벽을 뚫고 들어오지 못했으므로 이러한 삶에 만족합니다. 하지만, 예거는 이러한 삶을 노예 같다고 말하죠.

한네스는 에렌에게 너무 그렇게 화를 내지 말라며, 오히려 자신이 식충이 취급받는 게 인류에게 나을 거라 말합니다. 50m로 둘러싸인 성벽이 거인의 침입을 막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 하죠.
하지만, 여기에 굴하지 않고 에렌은 말합니다. “평생 벽 밖에 나가지 못한대도 먹고 사는 덴 지장 없어. 하지만, 이건… 가축이나 마찬가지잖아”라며 분을 삭입니다. 에렌은 다른 사람과 달리 그러한 굴욕을 잊지 않은 겁니다.
주둔병단은 그런 꼬맹이 예거를 비웃죠. 하지만, 에렌이 바라는 사냥꾼의 삶이 마냥 멋지게만 그려지지만은 않습니다.

힘을 향한 의지

니체는 ‘힘을 향한 의지’라는 생물의 근원적인 충동이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보존하지 않고 나아진다는 말은 보기에 좋은 말입니다. 하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모든 행동이 꼭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만은 않습니다. 제가 <진격의 거인>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냥꾼이 겪는 비참함이 긴장감 있게 그려지기 때문이죠.

힘을 바랐던 사냥꾼 삶의 비참함

에렌은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조사병단의 도착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습니다. 조사병단은 정체 모를 거인의 정체를 찾아 나서는 군인들인데요. 한마디로 에렌이 바라는 사냥꾼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죠.
이들이 마을에 도착했다는 소리를 듣자 에렌은 ‘영웅의 개선’이라 기뻐하며 뛰어갑니다. 하지만, 돌아온 병단은 마치 패잔병 같았습니다.

대부분 병사는 다치거나 거인에게 잡아먹혔습니다. 돌아온 병단에서 아들을 찾지 못한 한 어머니가 조사병단 단장을 붙잡죠. 단장은 감쌌던 죽은 아들의 손을 어머니에게 건넵니다.
어머니는 오열하며 ‘우리 아들이 직접 공을 세우지 않았더라도, 이 죽음이 인류의 반격을 위한 밑거름이 된 거겠죠?’라고 묻습니다.

단장은 처음엔 ‘물론이죠’라고 말하다 말끝을 흐리며,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사죄합니다. “이번에도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라고요.
마을 사람들은 이 모습에, ‘세금을 내서 거인들 먹이를 주는 꼴’이라며 수군댑니다. 목숨을 걸고 바깥세상을 탐험한 조사병단에게 말이죠.
예거는 이 말을 한 주민의 머리에 나무 막대기를 때려 넣습니다. 에렌이 이렇게 화가 많은 모습을 보면 니체가 한 또 다른 말이 떠오릅니다.

증오와 질투를 두려워 말라

니체는 증오와 질투를 두려워하지 말라 말합니다.

홍련의 화살 가사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그 날’은 에렌이 살던 마을의 50m 높이의 벽이 무너진 날을 말합니다.

에렌이 드러낸 분노

50m 넘는 거대한 거인의 발길질로 성벽이 무너지고, 그 구멍 사이로 들어온 작은 거인들이 마을을 초토화시키죠. 에렌은 분노를 드러내며 복수를 다짐합니다.
그런 에렌을 보며 같은 마을에 살던 친구 아르민은 ‘밖에 나가면 부모님처럼 죽어. 안에서 살 수밖에 없어’라고 말하죠. 에렌은 ‘어디 평생 그렇게 가축처럼 살아봐’ 하며 분노를 터뜨립니다.
거인의 먹잇감에 불과했던 소년은 이날의 굴욕을 잃지 않고, 사냥꾼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몇 년 뒤 에렌은 조사병단에 들어가기로 하죠.

훈련병단 입단식 감독인 키스 샤디스는 ‘너흰 기껏해야 거인의 먹잇감이 될 가축이지만, 너희를 성장시켜 주겠다’ 말합니다.
여기까지가 애니메이션 2화 정도 되는 내용인데요. 과연 에렌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명예로운 사냥꾼이 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주제는 어떻게 변용되고 발전해 나갈지 보시면, 만화를 더 재미있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여정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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