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는 오랫동안 위스키, 특히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에 대한 애정을 보였지만, 최근까지 자국 내 생산업체가 없었다. 이탈리아의 와인 역사가 현재 성장하는 위스키 산업의 정체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이탈리아는 국가 정체성에 깊이 뿌리내린 와인뿐 아니라, 리큐어부터 장인의 맥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고품질 제품을 생산하는 만큼, 발효와 증류 기술이 발달해 있다. 하지만 위스키에 대한 이들의 깊은 열정은 그동안 독립 보틀러나 위스키 클럽을 넘어 마스터 디스틸러(증류 장인)들의 세계까지 확산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2015년 알토 아디제 지역에서 푸니(Puni) 위스키가 출시된 이후, 몇 년 사이 이탈리아에서 위스키 프로젝트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현재 이미 12개의 증류소가 자체 위스키를 출시했으며, 일부 업계 관계자들은 이탈리아의 위스키 제조업체가 2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산업 발전의 초창기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 위스키는 이미 자국의 와인 전통에 깊이 영향을 받아 강력한 정체성을 구축해 가고 있다.
[확립된 증류 인프라]
포제너(Psenner), 폴리(Poli), 로너(Roner) 등 이탈리아의 유명 그라파(포도 껍질로 만든 증류주) 생산자들이 이탈리아 위스키 혁명의 선두에 있다. 이들은 이미 증류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고 숙성에 필요한 캐스크를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초기 단계인 이탈리아 위스키 시장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유명 위스키 컨설턴트이자 행사 기획자인 다비데 테르치오티(Davide Terziotti)는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의 위스키 생산자는 알프스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는 대부분이 그라파 증류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창업과 투자 유치가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기존 증류소는 큰 초기 비용 없이 위스키를 만들어볼 수 있고, 무엇보다 소량 생산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테루아의 중요성]
이탈리아 위스키는 와인의 영향을 받아 몰트와 곡물에서도 테루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그라파 생산자인 빌라 데 바르다(Villa de Varda)는 인근 농장에서 재배한 보리, 호밀, 밀을 사용하고, 사르데냐의 실비오 카르타 와이너리(Silvio Carta Winery)는 오직 섬 내에서 재배한 보리만을 사용한다. 리구리아 지역의 곡물 생산 및 제분 업체인 물리노 디 사셀로(Mulino di Sassello)는 자가 생산 옥수수로 미국 스타일 위스키를 출시했으며, 조만간 엠머(고대 밀의 일종) 위스키도 선보일 예정이다.

이탈리아 와인 산업은 새롭게 떠오르는 위스키 시장의 캐스크 공급원으로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다. 예를 들어 푸니는 마르살라 와인과 피노 그리지오 와인 캐스크를 재사용하고, 실비오 카르타의 3세대 와인 메이커인 니노 메이슨(Nino Mason)은 자사 베르나치아 디 오리스타노(Vernaccia di Oristano) 와인을 담았던 수백 년 된 밤나무 캐스크에서 위스키를 숙성한다. 그는 “이러한 과정은 우리 위스키에 독특한 개성, 그리고 다른 어떤 증류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향과 뉘앙스를 부여한다.”라고 말한다.
한편, 토스카나의 와인스틸러리(Winestillery)는 키안티 클라시코 중심에 위치한 자매 와이너리 키오치올리 알타돈나(Chioccioli Altadonna)에서 공급받은 슈퍼투스칸(SuperTuscan)과 빈 산토(Vin Santo) 와인 캐스크에서 모든 위스키를 숙성한다. 수석 디스틸러인 엔리코 키오치올리 알타돈나는 “다른 이탈리아 증류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접근 방식은 달라도 ‘이탈리아인’이라는 공통의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이탈리아는 미식 강국이며 강력한 와인 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 유산을 잘 활용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설명한다.

이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일부 생산자들은 나무를 ‘하나의 재료’로 간주해 지역에서 자란 특이한 목재를 사용한 캐스크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로너는 인근 숲에서 얻은 참나무, 체리 나무, 낙엽송 캐스크를 사용하고, 빌라 데 바르다는 주변의 돌로미티 산에서 자란 가문비나무로 만든 캐스크에서 위스키를 숙성한다.
테르치오티는 “대부분의 증류 업체들은 매우 진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스카치 위스키나 싱글 몰트 분야에서 경쟁하기에는 신생 브랜드에 대한 편견 때문에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이탈리아산 캐스크를 통한 숙성과 와인 전통을 살리는 방식으로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프로세코 및 그라파 생산자인 보테가(Bottega)도 최근 250만 파운드(약 43억 원)를 투자해 이탈리아산 몰트와 와인 캐스크를 이용한 위스키 생산을 시작했다. 보테가의 참여는 급성장하는 이탈리아 위스키 시장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며, 이 나라의 풍부한 와인 문화가 이미 위스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작성자 Jacopo Mazzeo / 번역자 Olivia Cho / 원문 기사 보기 / 이 기사는 Decanter의 저작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