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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즐기는 일본식 카레

갸우뚱하는 분도 있을 테지만 ‘카레’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정의 식탁에 가장 만만하게 오르내리는 요리 중 하나요, 전문점이 아니어도 동네 수타 라멘집이나 경양식 식당, 다국적 메뉴의 밥집, 깃사텐(喫茶店=일본식 카페) 등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게 카레. 때로는 프렌치 파인다이닝에서도 금요일 등의 스페셜 에디션으로 ‘주방장 특제 카레’를 내놓곤 하죠. 슈퍼에는 응당 스파이스나 레토르트 등 카레 관련 제품으로 가득한 진열대가 있고요.

그런데 ‘커리’(curry)가 아니라 ‘카레(カレー)’입니다. 일본어 발음상 그렇게 변화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역마다 ‘향토 카레’가 있을 만큼 토착화한 ‘와쇼쿠(和食=일본요리)’이기에 ‘커리’와는 별개의 것인 ‘카레’로 간주되는 것이죠. 남북으로 길게 뻗은 영토의 기후 차 만큼이나 땅에서 나는 것의 차이도 큰 만큼, 향토 카레의 종류도 무궁무진. 지방마다 고유한 이름을 지닌 카레가 있는데, 일본을 이루는 4개 섬 중 가장 큰 혼슈(本州), 그중에서도 니가타현(新潟県), 도야마현(富山県), 후쿠이현(福井県), 이시카와현(石川県)의 향토 카레는 ‘북륙 카레(北陸カレー)’라고 묶어서 부르기도 합니다.

연수 차 일본기업에 온 인도인들이 사내 식당에서 ‘카레’를 먹고는 깜짝 놀라며 이 맛난 요리의 이름이 대체 뭐냐고 물었다는 유명한 에피소드도 있는데요. 본향의 것과 달리 스튜처럼 걸쭉한 농도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조리법으로 보나 전혀 다른 요리였던 거죠. 당신네 나라 ‘커리’라고 답하니 더 의아해했다고 해요. 애초에 인도인들은 각각의 커리 요리를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부르니까요(17세기경 포르투갈 등 유럽에서 ‘커리’라 통칭하기 시작, 이 말이 세계로 퍼져 나간 것).

일본에 커리가 상륙한 건 1859년. 인도가 아닌 영국으로부터, 즉 ‘서양요리로서’였어요. ‘영국 카레’의 기원은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항해 중 스튜가 그리워진 영국인 선원이 보관이 힘든 우유 대신 카레 향신료로 만들었던 스튜가 원형이라는 설. 또 하나는 영국이 인도를 식민 통치할 당시 헤이스팅스(Warren Hastings) 총독이 1772년 영국으로 들여온 여러 향신료와 조리법에서 유래했다는 설. 후자를 영국 식품회사 ‘크로스 앤드 블렉웰’(Crosse &Blackwell, C&B)이 영국인의 입맛에 맞게끔 조합하고 간편 제품화한 게 ‘카레 파우더’였는데요. 훗날 영국 상선이 이것을 요코하마(横浜)항을 통해 일본으로 갖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일본식 카레 / 사진 출처: lotte.co.jp

일본에서는 밀가루가 더해져 걸쭉해진 ‘카레 소스’를 밥 위에 끼얹은 ‘카레라이스’로서 확산되었어요. 1945년 이후부터 일본기업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인스턴트 고체 카레 루(roux)제품이 속속 등장했는데, 이 루의 등장이 ‘카레’가 가정의 식탁으로 약진하는 계기가 되었죠. 그리고 긴 세월에 걸쳐 ‘카레’는, 각지에서 고유의 형태로 ‘세포분열’을 일으켰죠. 다양한 향토 특산물과 향토 요리 조리법의 반영, 며칠을 뭉근히 끓이는 카레에서 단시간에 만드는 퀵 버전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전개되며 ‘국민식’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 물론 본향의 ‘커리’는 커리대로 ‘curry world’의 한 축을 담당해 왔고요.

모태는 영국식이었지만 오늘날 ‘카레’는 본향의 것과 더 가까워졌습니다. 가정에서는 루를 쓰기도 하지만 카레 애호가라면 직접 스파이스를 조합하는 경우가 많고, 식당이라면 당연히 각종 스파이스를 고유의 조합과 비율로 직접 만드니까요. 대개 시작은 다진 마늘과 생강, 양파를 볶는 것부터. 여기에 토마토, 스파이스를 더해 나간 후, 각기 따로 볶아 둔 재료를 더하는 방식이 본격 일본 ‘카레’의 기본 조리법이라고 할 수 있죠.

오늘 알려 드릴 ‘카레’ 레시피는 조금은 새로운 조합. 그러나 일본 가정/식당에 종종 보이는, 그러면서도 누구나 쉽게 만들 퀵 버전 카레 3종입니다. 2가지는 루를 이용해 만들고, 나머지 하나는 단 2가지 스파이스로 보다 더 본향의 맛에 가까운 맛을 만들어요. 이것도 아주 쉬운 조리에 아주 맛난 카레. 그럼, 레시피 들어갑니다(모두 2인분 기준).

먼저 주로 소바야(蕎麦屋 소바와 우동을 파는 식당)나 밥집 등에서 파는 토후 카레(豆腐カレー 두부 카레)부터. 일본 같으면 야키토후(焼き豆腐 구워서 파는 두부)를 쓰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더욱 맛나지만, 부침 두부를 그대로 써도 OK(물론 구워서 써도 OK).

토후 카레

①기름 두른 팬에 다진 마늘(1~2톨)을 약한 불로 볶다 향 오르면, 다진 양파(1/2개) 더해 투명해질 때까지 볶아요.
②다져 둔 닭고기(가슴살 1쪽. 소고기 대체 가능)를 더해 볶다, 고기 표면 색 변하면 바로 청주(와인도 OK) 1큰술 뿌리고 월계수 잎 넣고 볶아요.
③고기 익으면, 다진 토마토(1개. 껍질 까고 씨 제거. 잡미 없애고 농후한 풍미 내는 포인트) 더해 수분 웬만큼 날릴 만큼 볶아요.
④여기에 육수나 물 1컵+1/2컵 붓고, 다시마(10x10cm 1장), 간장 1/2큰술(혹은 츠유), 미림 1큰술, 설탕 1/2작은술 섞고 끓여요.
⑤끓어오르면 거품 걷고(다시마는 꼭 끓기 직전 건져 내요. 그냥 두면 쓴맛 나요), 불 끈 후 시판 카레 루 1개+1/3개 녹여요(이때 간 봐서 좀 과하면 물 적량 추가).
⑥두툼하게 썬 두부 넣고 약한 불로 5분쯤 다시 끓이면 끝!

주인공인 두부는 두툼하게 썰어서 넣어주세요.


오크라를 올리면 식감이 살아서 좋지만, 없다면 실파 송송 썰어 올려도 향미가 하나 더 더해져 더욱 맛납니다. 시치미토가라시(七味唐辛子 말린 붉은 고춧가루 등 7가지 향신료 가루를 혼합한 일본요리의 대표적인 양념 가루)가 있다면 솔솔 뿌려 먹으면 매콤하니 한층 더 맛나고요.

다음은 1955년 후쿠오카현의 항구도시 모지코(福岡県 門司港)에서 태어난 야키 카레(焼きカレー). 질냄비에 밥과 카레를 담고 치즈를 얹어 그라탱처럼 오븐에 구워내는 요리인데, 사진처럼 내열 접시에 담아 구워도 되죠. 30곳이 넘는 모지코의 야키 카레 식당들은 대개 소고기나 새우, 복어, 문어 등 해산물을 주재료로 쓰는데, 오늘 알려 드리는 건 미트볼을 올린 야키 카레. 필자처럼 평소 미트볼을 듬뿍 만들어 냉동해 둔다면 아침에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퀵 버전이죠.

야키 카레

①다진 양파(1/2개)를 올리브유 약 1작은술로 가벼이 버무려 느슨히 랩, 전자레인지로 1분 가열 후 식혀 둬요.
②보울에 달걀노른자 1개, 빵가루 1큰술, 우유 1/2큰술, 소금 1/4작은술, 후추 조금을 담아 잘 섞어요.
③여기에 다진 소고기 200g 더해 잘 섞고, 앞서 익힌 양파 더해 섞고, 7~8개 미트볼 만들어요.
④표고버섯 등 버섯 200g을 다져, 기름 두른 팬에 넣고 중불로 수분 날아갈 때까지 약 10분 볶아 꺼내 둬요.
⑤같은 팬에 미트볼 구워(중불 약 4분) 꺼내 둬요.
⑥팬에 남은 여분의 기름을 대충 닦아내고 버터 약 10g 녹인 뒤, 얇게 슬라이스한 양파(1개)를 투명해질 때까지 볶다, 레드와인 반 컵 붓고, 양이 반 이하로 줄 때까지 졸여요.
⑦여기에 물 300ml가량 더해 끓어오르면 뚜껑 비스듬히 덮어 약불로 약 7~8분 끓여요.
⑧불 끄고 카레 루 쪼개어 넣고 저어서 다 녹인 후, 전체적으로 가볍게 한번 뒤섞어 줘요.
⑨여기에 앞서 볶아 둔 버섯, 구워 둔 미트볼 넣고 약한 불로 3~4분 끓이다, 마지막에 버터 5g쯤과 후추 약간 섞고, 간 봐서 조금 모자라다 싶으면 소금으로 간을 맞춰 줘요.
⑩따뜻한 밥을 내열 접시 등에 담고 미트볼과 카레를 얹고 치즈 올려 230도로 예열된 오븐에 5~6분 구우면 야키 카레 완성!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이죠?! 굽는 동안에도 고소하고 살짝 스파이시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식욕을 마구 자극한답니다.

마지막으로 터메릭(turmeric/강황)과 커민 시드(cumin seed)로 개운하고 살짝 매캐한 풍미를 낸, 노란빛이 식욕을 돋우는 카레. 태국 옐로 커리에 성큼 다가선 맛이기도 해요. 하지만, 에스닉한 향미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마일드한… 고소해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맛!

터메릭 카레

①팬에 올리브오일(1큰술), 커민 시드(1작은술. 기호에 따라 2작은술도) 올려 약한 불에 볶아요. 커민이 타지 않게 볶는 게 포인트!
②커민 향이 오르면, 다진 생강(약 1작은술), 대충 다진 양파(1/2개), 대충 자른 셀러리나 대파(1/2대) 더해(요 둘은 생략 가능) 가볍게 볶고(이때 살짝 소금 뿌려요), 토마토(1개. 껍질 까고 씨 빼서 대충 컷) 더해 또 볶아요(이때도 살짝 소금 간).

각종 채소에 토마토를 추가해서 볶아주세요.


③토마토가 뭉개져 ‘페이스트’화하면 터메릭 1큰술 넣어 잘 섞고, 물 약 1컵과 둥글게 자른 감자(1~2개. 두께 약 1cm) 넣고, 삶아 둔 단호박(1/8쪽쯤. 랩 씌워 전자레인지 5분이면 익죠) 으깨어 넣어요(이 약간의 호박이 훌륭한 감칠맛 조미료 역할을 해요).
④감자가 7~8할 익으면, 생크림 1~1/2컵(취향)과 플레인 요거트 약 50cc를 순서대로 넣고 섞어 줘요.
⑤소금과 후추로 마지막으로 간을 맞추면 끝!
⑥따뜻한 터메릭 라이스에 카레 올리고(그냥 흰밥도 OK), 팬에 살짝 구운 캐슈넛이나 아몬드 올리고, 삶은 콩이 있다면 소량 올려도 좋고요.
고소하게 잘 어우러진 풍미와 다양한 식감… 입안에 깊은 감칠맛이 그야말로 폭죽처럼 터지는 카레에요. 정말 맛없다는 사람 한 번도 못 본 이 진미 카레의 출처 역시, 제가 한때 단골로 들락거린 도쿄의 동네 허름한 밥집. 먹기 직전 레몬즙 한 바퀴 뿌려주면 고소함에 임팩트가 더해져 한층 맛의 시너지가 폭발합니다!

캐슈넛, 삶은 콩을 올리면 식감과 비주얼이 한층 살아나요.

참고로, 그냥 흰밥에 올리는 게 일본 ‘카레라이스’의 정석이지만, 노란빛의 터메릭 라이스도 보기 좋고 맛도 좋죠. 터메릭 라이스는 꼭 바스마티 라이스(basmati rice)가 아니어도 일반 흰쌀로 만들어도 됩니다. 2~3인분 기준의 쌀이라면 (일반 밥 짓기처럼 씻은 쌀을 적량의 물과 함께 솥에 담은 후) 터메릭 1작은술과 섞고, 버터 10g쯤 올린 후, 평소 밥 짓듯 지으면 되어요. 이 방법은 정통 방식은 아니지만, 간단하고 맛도 거의 정통의 것과 같아요.

마무리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본을 여행할 때 와쇼쿠의 하나로서 ‘카레 투어’를 해보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양식당이건 일식당이건 웬만하면 다 독자의 레시피를 갖고 있고, 좀 정평이 난 곳이라면 정말 출중한 맛의 카레를 팔아요. 일본에서 왜 카레를?? 그런 분이나 에스닉 푸드와 카레에 무심했던 분도, 기막히게 맛난 오리지널 카레를 영접하는 순간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카레 투어가 깊고 넓은 ‘카레 월드’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 될지도 몰라요.

by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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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자란 디저트 애호가 이야기야말로 맛을 배가시킬 가장 빛나는 재료라 믿는 사람 네 가지 직업을 거쳐 현재 이야기꾼이자 디저트 만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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