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브루잉을 방문하는 날은 그동안 최악이었던 미세먼지가 완전히 걷히고 더없이 맑은 날이었습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은 오래전부터 꼭 한번 취재해 보고 싶었던 양조장입니다. 왜냐하면 제 책의 맥주 설명 부분을 미스터리 브루잉의 이인호 대표가 어느 방송에서 했던 맥주 대화를 인용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맥주를 축구에 비유하면서 맥아즙을 축구 경기장이라 하였고 효모를 경기장(맥아즙)에서 뛰어노는 선수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번이 미스터리 브루잉 첫 방문은 아니지만, 정식으로 인터뷰 약속을 잡고 방문하는 날이 미스터리 브루잉이 만드는 맥주처럼 투명하고 맑은 날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이런 맑은 날씨는 도심 속의 작은 쉼터 역할을 하는 미스터리 브루잉과 어울립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은 마포구 공덕의 경의선숲길에 있습니다. 경의선숲길은 버려진 철길 위에 만든 도시 속의 작은 숲으로 서울 시민의 휴식처입니다. 게다가 미스터리 브루잉에서 염리초등학교로 이어지는 도로는 가로수 잎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진 숲길입니다. 고층 건물로 빡빡한 공덕이지만 그 안에 초록의 숲과 미스터리 브루잉이 있습니다. 공덕으로 출근하는 회사원이나 공덕에 살고 있는 주민에게 미스터리 브루잉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합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을 설립한 이인호 대표는 한국 크래프트 맥주를 발전시킨 공로가 있습니다.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는 크게 두 가지로 인해 발전했습니다. 하나는 양조장을 직접 설립해 한국만의 크래프트 맥주를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맥주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맥주 애호가들이 활동한 것입니다. 이인호 대표는 이 중에서 ‘비어포럼’이라는 맥주 커뮤니티를 만들고, 현재는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 ‘미스터리 브루잉’을 운영하고 있으니, 한국의 맥주 문화를 중심에서 이끌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는 2002년에 출발하여 2010년대에 진정한 크래프트 맥주 문화로 발돋움합니다. 2000년대 초반 독일 맥주 위주의 1세대 양조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맥주 문화의 토양을 다졌다면, 2010년대에는 맥주 애호가 사이에서 직접 맥주를 만들고 맥주 정보를 공유하는 문화가 싹을 틔웁니다. 맥주도 독일 중심이 아니라 미국 크래프트 맥주가 자리 잡았고, 미국 크래프트 맥주를 배우자는 움직임도 생깁니다.
한국 맥주 문화를 이끈 두 개의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2002년 소규모 맥주 면허가 도입된 해에 시작하여 현재까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맥주 만들기 동호회(맥만동)’는 주로 맥주의 재료부터 레시피, 양조 기술 등의 홈브루잉 정보를 교류하는 커뮤니티입니다. 이곳에서 취미로 맥주를 만들다 상업 양조장을 열어 한국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이끄는 양조장도 있습니다. 경기도의 히든트랙브루잉, 춘천의 스퀴즈브루어리, 강릉의 버드나무브루어리, 속초의 몽트비어 등이 대표적입니다.
맥주 시음과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커뮤니티도 있었습니다. 2012년 8월 이인호 대표는 주변의 맥주 애호가와 함께 ‘비어포럼’이라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었습니다. 함께 한 맥주 애호가 중에는 <The Beer 맥주 스타일 사전>의 저자이기도 하고 현재 한국맥주교육원을 이끄는 김만제 원장도 있습니다. 비어포럼의 다섯 명의 회원은 각자 맥주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차라리 한데 모아서 쓰자는 생각으로 뚝딱 만들었다고 합니다. 비어포럼에서는 새로운 맥주가 수입되면 주변의 펍을 빌려 맥주를 시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시음의 한계를 느껴 만든 것이 ‘사계’ 펍과 ‘파이루스’ 펍입니다.
‘사계’ 펍은 이인호 대표가 처음으로 맥주를 업으로 삼은 일입니다. 어쩌면 현재 미스터리 브루잉 설립의 시발점이 된 사건이기도 합니다. 비어포럼에서 시음회 및 시음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펍을 빌려야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여러 사장님의 도움으로 수월하게 진행되었으나, 시음회와 교육이 잦아지면서 밤새 펍을 운영한 사장님들의 피로도가 쌓였습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그들만의 장소가 자연스럽게 필요해졌습니다. 사계는 2013년 11월에 만들어졌습니다. 그 이후 사계는 맥주 애호가들이 모이는 맥주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6개월 후 또 하나의 펍을 이태원에 안착시킵니다. 바로 배꽃이 연상되는 이름 ‘파이루스(Pyrus)’ 펍입니다. 파이루스는 배꽃의 학명입니다. 사계와 파이루스는 단순히 수입된 맥주만을 판매하지 않았습니다. 계약 양조(콘트랙트 브루잉)로 직접 만든 맥주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6개의 맥주가 자가 양조 맥주였다고 합니다. 이때 쌓은 양조 경험은 훗날 양조장 설립의 밑천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현재의 미스터리 브루잉입니다.
미스터리 브루잉 설립의 밑천이 된 것은 양조 경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 투어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국 맥주 투어는 현재 이태원에서 ‘사우어 퐁당’이라는 펍을 운영하는 이승용 대표와 함께했습니다. 둘은 미국에서 직접 맥주 양조를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시음한 미국 맥주와 맥주 문화에 대한 기억은 미스터리 브루잉의 양조 철학과 양조 전략에 부합됩니다. 이 두 명의 미스터 리(Mr Lee)는 미국 맥주 투어에서 돌아와 자신의 이름을 딴 양조장을 설립합니다. 그렇게 미스터리(Mysterlee) 브루잉은 2017년 마포구 공덕에 설립되었습니다. 양조장의 이름에 양조장의 미스터리(Mystery)와 설립자의 이름(Mr Lee)을 함께 담은 센스는 일종의 미국식 개그 같은 재치가 엿보입니다.
그런데, 양조장을 왜 공덕에 열었을까요? 이인호 대표는 두 개의 펍을 운영하면서 크게 망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성과가 좋았던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감각을 높였고, 양조장 설립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면서 공덕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공덕은 강남, 을지로, 여의도 다음으로 큰 업무 단지이기도 하고, 주변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있으니, 평일의 직장인뿐만 아니라 주말의 가족 단위 손님이 생기면 주 7일 상권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후 공덕에 경의선숲길이 활성화되고 맛집 거리도 생겨 현재는 사람들이 모이고 활기가 넘쳐 나는 동네가 되었습니다. 공덕은 ‘큰 덕’이라는 뜻이라는데, 이인호 대표의 혜안이 있었기에 그 덕의 일부를 받을 수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미스터리 브루잉의 덕은 양조장 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들의 맥주에 있습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의 맥주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이인호 대표의 양조 철학은 ‘모든 맥주를 다 잘하자’라고 합니다. 자칫 시시해 보이고 개성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분야의 맥주를 잘 만드는 양조장은 많아도, 두루두루 맥주를 잘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인호 대표는 가장 좋아하는 양조장으로 미국의 파이어스톤 워커(Firestone Walker Brewing)를 꼽았습니다. 파이어스톤 워커는 캘리포니아 양조장의 명가답게 IPA 계열을 잘 만들기도 하지만, 스타우트나 배럴 에이징 계열의 맥주도 잘 만들어 냅니다. 파이어스톤 워커는 이인호 대표가 가장 닮고 싶어 하는 본보기입니다.
그럼, 모든 맥주를 잘 만들려고 시도한 맥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캐주얼한 맥주가 있습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은 맥주 애호가만 찾아 오는 곳이 아닙니다. 가족 단위의 일반인도 많기 때문에 편안한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탈리안 필스너입니다. 필스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스타일의 맥주입니다. 이탈리안 필스너는 원래 이탈리아에서 유럽의 홉으로 드라이 호핑하여 만든 필스너였지만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더욱 발전시킨 맥주 스타일입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은 홉을 과감하게 사용하여 차별화된 미국식 이탈리안 필스너를 만들었습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이 만든 미국식 호피 라거 중에는 ‘콜드 IPA’와 ‘반짝반짝’이라는 이름의 웨스트 코스트 필스너도 있습니다. 과거에 에일처럼 라거에 홉을 퍼부어 만든 맥주를 IPL(India Pale Lager)이라 불렀습니다. IPL은 높은 도수와 높은 쓴맛 등 IPA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효모만 에일 효모에서 라거 효모로 만든 맥주입니다. 하지만 라거의 깔끔함과 청량감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여 만든 것이 콜드 IPA입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의 콜드 IPA는 옥수수와 쌀을 부가물로 사용해 올몰트의 무거움을 줄이고, 청량하면서도 홉 아로마가 풍부한 라거로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호피 라거보다 한층 라거에 가까운 맥주입니다.
콜드 IPA의 높은 도수가 부담스럽다면, 반짝반짝 웨스트 코스트 필스너를 선택해 볼만 합니다. 반짝반짝은 도수를 통상적인 필스너의 알코올 도수 5도에 맞추었습니다. 알코올 도수를 낮추니 올몰트의 무거움도 크지 않아 부가 곡물을 사용하지 않았고, 대신 미국 홉을 더 넣었습니다. 쓴맛과 알코올 도수를 보통의 필스너 수준에 맞춘 세션(Session) IPL에 해당하는 맥주입니다.
신경을 많이 쓰고 힘을 주어 만든 맥주로 IPA와 더블 IPA가 있습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은 IPA로 ‘Grabber’와 ‘Tropia’를, 더블 IPA로 ‘Juice News’와 ‘Deer Crown’을 생산합니다. 이중 헤이지 더블 IPA인 디어크라운을 추천합니다. 디어크라운은 헤이지 IPA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맥주입니다. 주스 같고 홉 아로마가 풍부하며, 쓰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 가는 맥주입니다. 알코올 도수는 8.2도로 일명 더블 IPA의 황금 도수라고 불리는 알코올 도수입니다.
겨울을 상징하는 ‘블랙앤블랙’도 추천합니다. 국내에 유사한 스타일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페이스트리 스타우트입니다. 높은 당도와 높은 도수를 가진 이 맥주는 마치 빵에 발라 먹는 느낌이 들 정도로 끈적한 맥주입니다. 몰트 재료가 많이 들어가고, 몰트를 오래 끓여 수분을 많이 증발시켜 만듭니다. 블랙앤블랙을 만들 때는 밤새 보일링 작업을 하느라 부득이 철야작업을 하게 됩니다. 보일링이 끝나면 가득 찬 탱크가 반으로 줄어들 만큼 맥주의 밀도가 높습니다. 재료를 많이 쓰고 양조 과정이 쉽지 않아 가격대가 높지만, 생각보다 잘 팔린다고 합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이 공식적으로 처음 만든 맥주가 헤이지 사우어 IPA였습니다. 헤이지(hazy)와 사우어(sour)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낯선 두 조합이 만난 맥주였지만 생각보다 잘 팔렸고 생소한 맥주에 대한 갈망과 수요가 있기에 납득할 만한 맥주를 만들면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고 합니다. 블랙앤블랙도 그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만들지 못했을 맥주입니다.
미스터리 브루잉은 맥주뿐만 아니라 음식에도 욕심을 냅니다. 무엇을 골라도 일정 이상의 퀄리티를 가진 음식을 제공합니다. 가령 흔한 감자튀김이라고 해도 트러플 오일을 뿌리고 값비싼 치즈를 갈아서 냅니다. 맥주와의 페어링을 만족하는 음식을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면서, 맥주를 제거하더라도 음식 자체로 만족하는 진짜 레스토랑이 되고자 합니다. 인터뷰 도중 주위를 둘러보니 맥주를 곁들여 식사하는 가족의 모습이 르누아르의 그림처럼 편안해 보였습니다. 이처럼 미스터리 브루잉은 도심 속에서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합니다. 광적인 맥주와 편안한 맥주를 동시에 만들고, 맥주 애호가와 맥주 일반인이 모두 찾습니다. 고층 건물과 대단지 아파트로 가득한 공덕, 그 안에 초록의 숲이 있고, 그 안에 미스터리 브루잉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