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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숨은 사과 정원, 서울공예박물관

도심 속 숨은 사과 정원, 서울공예박물관

도심 속 숨은 사과 정원, 서울공예박물관

‘사과’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지금 손 위에서 스와이프를 하며 이미지와 글을 띄우는 스마트폰. 과학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뉴턴이 떠오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세상이 멸망하기 전 사과나무를 심는다던 철학자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제 머릿속에는 청소년 시절에 수채화를 잘하기 위해서 무던히 그려내던 사과 그림들이 악몽처럼 떠다닙니다. 기분이 좋을 때면 눈을 감고 잘 구워진 애플파이가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벌써 밀가루가 익은 냄새와 시나몬과 어우러져 달콤하게 익은 사과 맛이 나는 듯합니다. 이상하게도 곧 추석이어서 그런지 윗부분이 애매하게 잘려 나간 배와 사과도 생각나네요.

서울 한복판에 자그마한 ‘꽃사과나무’들이 심어진 곳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사과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농장은 아니고, 박물관 앞에 심어져 일종의 조경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위치한 [서울공예박물관]입니다. 5개의 박물관 건물 중 얼굴 역할을 하고 있는 ‘전시 1동’ 앞에는 사과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박물관 여기저기에 수많은 자연물들이 있지만, 앞서 말씀드린 사과나무 녀석들과 400살이 넘으신 ‘은행나무님’은 한번 찾아보실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간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3길 4’. 이곳은 원래 왕실 별궁 자리였습니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영응대군의 집을 지으며 터가 마련되었고, 순종의 가례를 위해서 고종 시절 ‘안동별궁’이 지어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한제국이 국권을 잃으며 일제강점기에 들게 되고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이왕직'(관리기관)의 소관이 됩니다.
별궁은 황실에 있던 궁녀들의 숙소로 사용이 되다가 이후 이 4,000여 평에 달하는 부지를 당시 30만 원에 ‘민대식’이라는 사람이 구매하게 됩니다. ‘민대식’은 조선의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인 ‘민영휘’의 차남으로 ‘하이트’의 전신인 ‘조선맥주’의 창립에 참여했고, 현재는 ‘신한은행’에 합병된 ‘조흥은행’의 전신 ‘동일은행’의 대표이사였습니다.
자신의 아버지인 ‘민영휘’가 세운 휘문의숙(휘문고등학교의 전신)처럼 어머니 안유풍(민영휘의 다섯 번째 첩)의 이름으로 ‘경성휘문학교’를 세우게 됩니다. 이곳을 자신의 어머니의 이름 중 ‘풍’과 학문을 뜻하는 ‘문’을 더해 ‘풍문’으로 이어가게 합니다. 학교 안 황실 건물들은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그 자리에는 터만 남게 되었습니다. 2017년 강남구 자곡동으로 학교가 이전하며 ‘풍문고등학교’가 되기 전까지는 1945년부터 수많은 여학생들이 이곳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서울시는 이곳을 ‘풍문재단’으로부터 구매하여 시민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서울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서울시무형유산’과 현대 공예가들은 물론 학술, 아카이빙까지 아우르는 플랫폼 역할을 담당합니다. 주변 공간과의 관계를 생각하더라도 예술과 디자인의 중간 지점에 있다고 얘기하곤 하는 공예의 역할을 대변하는 듯합니다. 앞으로는 소형 갤러리와 고미술품점, 화방들이 있는 인사동길이 있고, 뒤로는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관을 비롯한 국내 유명 갤러리들이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미 대사관 사택으로 쓰이다가 이건희 기증관이 예정된 ‘송현열린녹지광장’이 있지요.

오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공간과 전승의 역할을 담은 은행나무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이곳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사과나무는 왕실 공간과 일제강점기의 감시, 담벼락으로 가려진 학교를 지나 이제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원에서 매해 가을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400년을 견뎌온 나무와 새롭게 뿌리를 내린 나무가 이 공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고 있는 듯합니다.

의미 부여와 볼거리를 제외하더라도 가볼 만한 이유는 무엇보다 ‘무료’라는 점. 🙂

이정형
이정형
악기를 만들다가 만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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