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논 사이에서 한 노인이 벼를 다듬고 있습니다. 논두렁길로는 젊은 새댁이 머리에 새참을 얹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옵니다. 새댁은 “어머님, 새참 드시고 하세요.”라고 말하며 그대로 시어머니로 보이는 노인 앞에 앉습니다. 새참 쟁반에는 얼핏 두부김치와 막걸리가 보입니다. 새댁은 막걸릿병을 높이 들고 한 줄기 희뿌연 물줄기를 내며 막걸리를 따릅니다. 하지만 노인의 표정은 무언가 못마땅합니다. 곧 손사래를 치며 말합니다. “에이, 난 그거 안 마셔” 당황한 표정을 짓는 새댁, 시어머니는 무언가를 꺼내 듭니다. “난 스노이 마셔”. 캔맥주입니다.
스노이는 이천의 한 맥주 양조장에서 만든 쌀맥주 브랜드입니다. 이천은 남한강의 지류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재배한 이천 쌀이 유명합니다. 게다가 인구 22만의 작은 도시지만 맥주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곳입니다. 더홋 브루어리와 브루어리 을를, 그리고 어메지징 브루어리까지 3개의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있고, 을를 펍과 더홋 탭룸, 그리고 그링고까지 적어도 3개 이상의 크래프트 맥주 펍이 있으며, 카페 데 메헬렌이라는 벨기에 맥주 판매점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확장하면 이천의 지근거리에 여주 맥주와 UF Beer 생극양조도 있습니다. 이렇게 맥주 인프라가 든든한 이천에 쌀맥주만 만들겠다고 고집하는 맥주 양조장이 있습니다. 쌀맥주 스노이를 만든 더홋브루어리(이하 더홋)입니다.
스노이는 더홋에서 연중 생산하는 시그니처 맥주입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쌀먹걸리 대신 쌀맥주를 마시는 노인을 봤을 때 쌀맥주가 무척이나 궁금해졌습니다. 왜냐하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에서 만든 쌀맥주는 대기업에서 만든 쌀맥주와는 뭐가 달라도 다를 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버드와이저, 에스트레야, 아사히 등 일부 대기업 맥주에는 쌀이 들어갑니다. 하지만 이런 맥주에서 쌀의 풍미를 거의 느낄 수가 없습니다. 대기업 맥주에서 쌀은 맥주의 풍미에 기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재료가 아닙니다. 쌀은 맥아를 대신하여 당분을 제공하고 알코올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될 뿐입니다. 맥아 대신 쌀과 같은 부재료를 사용하면 맥주 재료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일부 국가에서는 맥아 비율이 낮으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가령 일본에서는 맥아 비율이 50% 미만이면 발포주로 분류되고, 발포주는 맥주에 비해 세율이 낮습니다.
대략 이 정도로 대기업 맥주의 쌀에 대한 역할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래프트 맥주에서의 쌀의 역할에 대해서도 궁금해졌습니다. 더홋의 김나래 대표에게 연락했을 때, 김나래 대표는 이천 백사면의 양조장으로 와 달라고 했습니다. 더홋은 이천 백사면에 양조장이 있고, 이천 IC 앞 경강선 부발역에서 가까운 곳에 탭룸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고객들이 찾는 곳은 탭룸입니다. 양조장은 일반인의 방문은 어렵고 20명 이상의 단체만 사전에 예약하고 방문할 수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길에서 간판 없는 양조장을 찾기 위해 동네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렇게 찾은 반가운 더홋브루어리, 양조장 구석의 작은 테이블에서 김나래 대표와 마주 앉았습니다. 대표님의 특별 초청으로 탭 대신 병맥주를 시음하고 양조장에서 쌀맥주 양조 과정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김나래 대표는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식품회사에 다니다 맥주에 빠져 맥주 양조장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 공부한 발효학과 주류학은 맥주 양조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쌀을 사용한 맥주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식품을 전공해서일까요? 김나래 대표는 맥주도 하나의 음식으로 이해했습니다. 보통 건강한 음식을 만들 때 식품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맥주도 첨가제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의 곡물로 순수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쌀이 기반인 우리의 음식과 어울리는 맥주는 쌀맥주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이천입니다. 여주나 양평도 쌀로 유명한 곳이지만, 임금님표 쌀로 널리 알려진 이천은 서울에서의 접근성도 좋습니다. 2018년에 이천의 한적한 시골에 양조장 부지를 찾고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원래는 고구마 밭이었던 곳에 양조장을 짓고 장비를 하나하나 들여와 설치하고 양조 준비가 끝났을 때가 2020년입니다. 첫 맥주가 나왔을 때는 안타깝게도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쌀맥주는 보리 맥아로만 만드는 맥주와는 공정이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쌀은 맥아를 대신하여 알코올을 생산하기 위한 당분을 내기도 하고, 쌀 고유의 풍미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맥주 제조 공정과는 다른 추가적인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맥주는 분쇄된 맥아를 따뜻한 물에 넣어 맥즙을 만드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를 당화라고 하는데, 이것은 맥아 속의 전분을 알코올 생산의 먹이가 되는 당분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입니다. 쌀맥주는 조금 번거롭지만, 당화에 앞서 호화라는 과정을 거칩니다. 호화란 쌀의 전분에 물을 혼합시켜 가열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면 쌀이 풀처럼 됩니다. 완전히 밥처럼 되어서도 안 되기 때문에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럼, 쌀과 같은 곡물도 맥아의 당화처럼 전분이 당분으로 바뀝니다. 그러면서 생성된 효소가 쌀을 소화하기에 부드럽게 만들어 줍니다. 물론 이런 호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만들어지는 쌀맥주도 있습니다. 하지만 호화 과정을 거쳐야 쌀의 풍미를 충분히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더홋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 당화 탱크와는 별개의 독립적인 호화 탱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 있으니 쌀맥주가 마시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걸 눈치챈 김나래 대표는 쌀맥주 하나를 꺼내 들었습니다. 블랙 스노이입니다. 블랙 스노이는 우리 쌀 흑미를 사용해 만든 포터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포터와는 결이 달랐습니다. 일단 색상이 완전히 검지 않고 살짝 보랏빛이 감도는 어두운 갈색입니다. 보랏빛은 흑미를 사용해서 나오는 빛깔이라고 합니다. 블랙 스노이는 마치 라거처럼 청량하고 상쾌함을 줍니다. 마신 후에 입안에 남아 있는 잔당이 고소하게 느껴집니다. 포터나 스타우트보다는 블랙 라거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쌀맥주는 대부분의 한식에 어울립니다. 그중에서 블랙 스노이는 불고기와 마실 때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불고기의 달고 짠 맛이 고소하고 드라이한 맥주와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앞서 광고에서 언급한 맥주는 스노이(Snowy)입니다. 수북이 쌓여 있는 쌀의 느낌이 순백의 눈처럼 보여 스노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스노이는 쌀의 풍미를 한껏 살린 라거입니다. 대기업에서 쌀로 만든 라거는 가볍고 청량합니다. 대신 쌀의 풍미는 거의 느낄 수가 없습니다. 더홋은 라거에서 쌀의 풍미를 내기 위해 완전히 발효하지 않고 잔당감을 남겼습니다. 대기업 쌀맥주에 비해 바디감도 있습니다. 쌀의 고소함과 홉의 쌉싸래한 맛이 더욱 청량감을 줍니다. 김나래 대표는 칭다오를 좋아하는 고객이 스노이도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스노이에서 사용하는 쌀은 2018년 이전까지 이천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재배되었던 고시히카리 대신 해들과 알찬미를 사용했습니다. 해들과 알찬미는 경기도농업기술원과 이천농업기술센터의 공동연구로 외래 벼 품종을 우수한 우리 품종으로 대체하기 위해 개발하고 보급한 품종입니다. 이 품종들은 화강석이 많은 이천의 토질과 맞아 병충해에 강하고 밥맛도 우수합니다. 실제 밥맛의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 고객들은 해들과 알찬미를 사용한 밥을 더 선호했고, 그 결과가 맥주에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홋 탭룸에 가면 스노이를 연중 만날 수 있습니다. 맥주잔에 시나몬 가루를 묻혀 마시는 코젤처럼 더홋 탭룸에서 맥주잔에 쌀가루를 묻힌 스노이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치고이너바이젠(ZIGEUNERWEISEN)은 부재료가 들어간 독일식 밀맥주입니다. 벨기에 윗비어의 부재료를 한국적으로 재해석했고, 컬러와 바디감은 독일 바이젠 느낌의 맥주입니다. 맥주의 이름은 독일 교향곡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치고이너바이젠의 바이젠(weisen)이 독일 밀맥주의 바이젠(Weizen)과 비슷한 점에서 착안했습니다. 치고이너바이젠은 집시의 노래라는 뜻입니다. 과거 집시들이 즐겨먹었던 농도가 짙은 맥주처럼 어디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진한 밀맥주를 의도하여 만들었습니다.
더홋은 가치 경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조장입니다. 그 가치는 회사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데, ‘더홋’이라는 뜻을 알 수 없는 단어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실 ‘홋’이라는 한 글자가 회사명입니다. ‘홋’은 외국인이 가장 신기하게 보는 한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밀짚모자를 쓴 농부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더홋은 농업회사 법인이고 농업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농부가 연상되는 홋이라는 글자를 회사의 이름으로 선택했습니다. 게다가 ‘Whot’은 고대 영어에는 ‘열정적인’이라는 뜻까지 담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열정적인 농부’라는 뜻을 담은 것입니다.
더홋은 농부가 만든 우리의 곡물을 고집합니다. 맥주를 만들 때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첨가제조차 사용하지 않습니다. 맥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는 생태계 재생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맥아 찌꺼기는 지역의 농장에서 송아지 먹이로 재활용되고, 물은 회수하여 양조에 다시 사용합니다. 남은 효모는 걷어서 고체 샴푸를 만듭니다. 이러한 재생 활동을 위해 연구개발에도 투자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공장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해 카이스트와 공동으로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더홋을 취재하면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습니다. 더홋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반 소비자가 더홋 맥주를 만나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간혹 전국의 맥주 축제 현장에서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접근성이 좋은 장소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더홋을 즐기는 꿀팁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바로 국내 최초로 선보인 웹 기반 커스터마이징 맥주 서비스입니다. 홈페이지(www.thewhot.com)에서 맥주를 선택하고 디자인을 선택하면 나만의 맥주를 제공해 줍니다. 기업 간 기업 서비스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고객도 이용 가능하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