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꼴을 고르는 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글이 생긴 모양이 어떤가’에 따라 독자가 정보에서 얻는 경험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스위트 홈’이라는 드라마 제목을 만들기 위해 디자인한다고 가정합시다. 만약 이 드라마가 공포/스릴러 장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왠지 달콤하고 둥글둥글한 귀여운 글꼴이 어울립니다.
하지만, 이 서체는 어떤가요? 귀엽다는 느낌보다, 스산한 느낌이 들죠. 글꼴 모양에 따라 독자는 직관적으로 정보를 경험합니다. 독자가 설사 말로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글꼴을 통해 느낌을 전달받죠. 글꼴은 가장 직관적으로 정보가 가진 느낌을 전달합니다.
글꼴을 활용하는 방식은 크게 2가지로 나뉘는데요. 특징적인 글꼴을 골라서 사용하는 방식과, 특징적이지 않은 평범한 글꼴을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이 두 방식에 대해 상세히 알아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특징적인 글꼴]
특징적인 서체를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글이 가진 특징적인 모양을 통해 내용이 가진 분위기를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죠.
내게 맞는 특징과 어울리는 서체를 고르기 위해서는 알아야 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먼저, 내 브랜드가 가진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하죠. 또, 글꼴이 가진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 브랜드가 가진 문화적 배경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미즈노 마나부가 만든 브랜드인 <플랜더스 리넨 브랜드>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센스의 재발견>이라는 책에서 이 브랜드에 어울리는 서체로 왜 ‘copperplate’ 서체를 사용했는지 이유를 밝혔습니다.
먼저 그는 로고를 만들기 전에, 브랜드가 가진 현지 역사를 조사했습니다. 이때 리넨의 원료인 아마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무척 오래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죠. 독일에서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를 시작한 1445년보다 훨씬 이전부터 아마 재배는 역사가 오래되었죠.
따라서 그는 여기서 <플렌더스 리넨 브랜드>에 어울리는 서체는, ‘활판 인쇄 시대 이전부터 사용하는 서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시기 글꼴을 기반으로 한 ‘copperplate’라는 서체를 사용했죠.
‘리넨’이라는 소재는 옛날에도 고급 소재였고, 일반인이 손에 넣기 힘든 천이었는데요. 비싸고 고급스러운 글자가 잘 어울렸죠. 미즈노 마나부는 서체는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으로 조사하면 알 수 있으니 너무 겁먹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글꼴이 가진 문화적 배경
글꼴이 가진 문화적 배경 역시 간단한 검색으로 가능합니다. 온라인에 글꼴을 검색하기만 해도, 디자이너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서체를 만들었는지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죠. 만약 이 기획 의도가 나와 어울린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사용하면 됩니다.
서체가 지닌 역사는 제가 정리해 놓았는데,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 더 상세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서체가 지닌 역사를 대략적이나마 이해를 하면, 글꼴에서 특징적인 부분이 어디인지 파악할 수 있는 눈이 좋아집니다. 다음으로, 특징적이지 않은 서체를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봅시다.
서체가 지닌 역사 보러가기. (클릭)
[특징적이지 않은 글꼴]
서체를 고를 때 꼭 특징적인 서체를 사용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특징이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서체를 사용하기도 하죠. 왜냐하면, 글꼴로 브랜드가 가진 느낌을 표현하기보다 다른 요소를 활용했을 때 브랜드 느낌이 더 잘 드러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징적이지 않은 서체를 ‘투명한 서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타이포그래피 연구가 비아트리제 워드가 한 유명한 어구인 ‘텍스트를 유리잔과 같이 사용해야 한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그녀는 유리잔이 투명해야 그 안에 담긴 와인의 아름다운 색과 맛을 잘 드러내듯, 서체도 유리잔과 같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마디로 독자가 글꼴이 가진 특징을 바라보기보다, 내용이 더 눈에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말이죠. 그러려면 글꼴 자체에 분위기를 풍기는 요소가 없어야 합니다.
교과서에서 흔히 보는 서체를 예로 들 수 있죠. 글꼴 자체에 특징이 없어서, 모양에 집중하기보다 내용에 집중하면서 읽을 수 있습니다. 표지에 들어가는 서체라기보다는 본문에 들어가는 서체가 이러한 투명한 서체에 가깝습니다.
또 브랜딩에서도 로고에 특징이 적은 서체를 활용하기도 하는데요. 글꼴에서 특징적이지 않은 요소를 활용하면, 다른 요소에서 브랜드가 가진 분위기를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 패키지 디자인(hanskin)을 보면 로고 글꼴 모양 자체에서 특징을 찾기 어렵습니다. 투명한 느낌을 내는 서체죠. 서체 자체에서 브랜드가 의도한 분위기를 전달하지 못한다면, 시선은 자연히 다른 부분에 가게 됩니다.
저는 이 패키지 디자인에서 글꼴보다는 색상에 눈이 가는데요. 초록 계열 색상과 금박으로 후가공이 된 브랜드 이름에 더 눈이 가죠. 또, 글꼴이 담백하니 지류 재질에도 눈길이 더 가네요.
만약, 이 패키지 디자인에서 특징적인 서체를 사용했다면, 이러한 요소에 눈길이 갈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러긴 힘들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서체를 담백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다른 시각적인 요소가 눈에 더 잘 들어오는 거죠.
이렇게 브랜딩을 할 때는 힘 조절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덴티티를 잘 드러내는 요소가 무엇인가?’ 전체적으로 밸런스를 조절해야 하죠. 모든 걸 눈에 띄게 하려고 하면, 오히려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독자가 시선을 어디에 먼저 두어야 할지 직관적으로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