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전통적인 도시 전주와 미국에서 가장 현대적인 크래프트 맥주가 만나면 어떤 모습일까요? 전주는 슈퍼마켓에서 맥주와 저렴한 안주를 즐기는 가맥 문화로 유명합니다. 가맥이란 ‘가게 맥주’의 줄임말로, 낮에는 슈퍼이고 밤에는 맥주를 즐기는 곳을 말합니다. 1980년대부터 생겨나 전주만의 독특한 맥주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최근 전국에 수많은 크래프트 맥주 축제가 생겨나도 이곳만큼은 전통적인 맥주 문화의 뿌리가 뽑히지 않은 곳입니다. 자칫 크래프트 맥주의 불모지라고 느껴질 이곳에 꽤 멋진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이 있습니다. 아직 전주의 전통이 남아있는 원도심 웨딩 거리에 노매딕 브루잉이 있습니다.
[외국인 영어 교사와 한국인 아내가 만나 양조장을 열었다는데…]
노매딕 브루잉(이하 노매딕)은 2016년에 외국인 양조사 ‘좌니’와 그의 동료이자 아내인 한국인 ‘한나’ 부부가 함께 문을 연 브루어리입니다. 노매딕의 책임양조사인 좌니는 미국 미시간주 출신입니다. 2006년부터 친구들과 아일랜드에서 기네스를 마시다 맥주와 사랑에 빠져버린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의 양조장에 취직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도시였던 고향에서는 양조사의 기회가 없었고, 게다가 가진 돈도 없었습니다. 아시아에서 영어를 가르치면 돈도 벌 수 있고, 맥주도 양조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서 영어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전주를 택한 이유는 전주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음식 문화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이왕 한국에서 살기로 했으니,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매일 볼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주중에는 영어를 가르치고 주말마다 맥주를 양조하며 살았습니다.
[한옥에 양조장을 연 이유가 있다던데…]
노매딕 브루잉은 2016년 한옥마을에서 가까운 전주의 구도심 웨딩 거리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정부 대출을 받아서 어렵게 시작했고 돈이 부족해 처음 6개월 동안 양조장 창고에서 잠을 잤다고 합니다. 테이블은 있었지만, 의자가 없는 탭룸에서 손님들은 서서 맥주를 마셔야 했지만, 꽤 낭만적인 시기였고 오히려 그것이 인기의 요인이었습니다.
현재는 양조장 건너편 건물에 또 하나의 펍 비어템플을 열었습니다. 이 건물은 1945년에 지어진 건물로 서까래와 나무 바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는 무료로 구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크기가 제각각이어서 오히려 개성이 넘칩니다. 반세기가 된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에서는 낡은 건물에서 양조를 시작한 사례가 많습니다. 어쩌면 낡은 건물이 가진 자연스러운 특징을 살려 내는 것 또한 크래프트 맥주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외국인 양조사가 보기에 한옥마을과 한옥은 정말 흥미로운 곳이었습니다. 좌니는 한국적인 공간에서 외국에서 들어온 크래프트 맥주를 마실 때, 한국인이 문화적인 존재감을 느끼길 원했습니다.
[노매딕은 균형적인 맥주를 추구한다던데…]
노매딕은 현재 16개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는데, 대량 생산보다는 예술가적 창의성으로 소량씩 생산된 맥주들입니다. 때로는 맛이 강하고 놀라운 맥주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복합적이면서 균형적인 맥주를 추구합니다. 좌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취미를 즐기는 삶 중에 맥주가 아름다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노매딕은 ‘균형적인 삶을 위한 균형 잡힌 맥주’를 추구합니다.
글램핑이라는 맥주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캠핑을 좋아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5성급 호텔을 선호할 수도 있습니다. 글램핑은 캠핑과 호텔의 중간 지점이어서 다양한 사람들이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라거의 특성을 가지면서 에일 효모를 사용해 만든 크림 에일의 이름을 글램핑으로 지었습니다.
때로는 지역 농가와의 균형을 생각합니다. 스트로베리 스무디는 ‘팜 투 브루하우스(Farm to Brewhouse)’라는 시리즈로 만들었습니다. 이 맥주는 전주 주변의 농장에서 수확한 딸기를 양조장으로 가져와, 자체적으로 가공하여 만든 퓌레를 사용합니다. 한국 어디에서든 과일을 가져올 수 있지만, 지역 농가와의 균형을 생각해 전라북도 근처에서 생산된 과일만 사용합니다.
브라곳은 일명 꿀술이라고 하는 미드(mead)와 맥주를 섞어 만든 술입니다. 꿀은 전주의 들꽃 꿀을 사용합니다. 좌니와 한나 부부는 도시 생활의 비즈니스로 지칠 때 산으로 가서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어느 날 산에서 양봉가 할아버지를 만났고, 그곳의 에너지가 너무 좋았던 기억이 있어 꿀로 맥주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트워크는 전주의 음식과 균형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맥주입니다. 사실 모둠전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음식은 맥주와 잘 어울립니다. 나이트워크는 스타우트입니다. 나이트워크를 전주의 전통 음식 중 하나인 초코파이와 함께 마시면 맥주와 음식의 균형을 맛볼 수 있습니다.
좌니는 자신이 만든 맥주가 무지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무지개에 다양한 색깔이 존재하듯이 맥주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필요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맥주가 뭐예요?’라고 물을 때, 좌니는 항상 “모두 좋아해요”라고 답합니다. 무지개에는 모든 색이 다 중요하니까요.
노매딕은 꾸준히 인기를 끌어 한옥마을에 ‘노매딕 비어가든’을 오픈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전주에서 노매딕의 맥주를 즐기려면 양조장에 딸린 브루펍 노매딕 비어템플(전라감영4길 13-16)에 가거나 탭룸 노매딕 비어가든(향교길 57)에 가면 됩니다. 비어템플은 지역의 주민들도 찾는 공간이지만, 비어가든은 한옥마을의 정취를 만끽하려는 관광객들이 주로 찾습니다. 불균형한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균형 있는 맥주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