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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기록을 돕는 디지털 도구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우리나라는 13년째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차지하고 있고, 국내 정신질환자는 2022년 기준 465만 명으로 5년 사이 37%가 증가했다고 해요. 특히 2019년 코로나 이후 이런 현상이 가속화됐는데요. 이제 우울증 인구는 100만 명을 넘기면서, 진료비 규모도 100조 원이 넘었다고 합니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우리는 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한때는 가족, 관계, 직장, 향유하는 문화와 관념까지 고정된 ‘고체 시대’가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 직업과 운명이 정해지는 시절이요.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직장, 인간관계, 가치관 등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합니다. 기술도 문화도 정신없이 바뀌기 때문에 우리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액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집값이 언제 내려갈지,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당장이라도 뒤처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되고, 불안감이 지배적인 감정이 되어버렸죠.

시대적인 흐름으로 인해 정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감정을 파악하고 조절하려는 시도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건강 앱 서비스의 트렌드를 봐도 2010년대에 운동, 수면과 관련된 앱이 많았다면 지금은 정신 건강과 관련된 앱이 참 많아졌습니다. 명상, 심리 상담 중개, 감정 일기, 스트레스 지수 측정, 인지 교정 등 다양한 앱들이 등장한 것이죠. 종종 우리는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생각을 가지기도 하는데요. 정신 건강이나 감정은 우리가 노력 없이 간단하게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몸을 얻기 위해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정신 건강과 감정도 공부하고 연습해야 나아집니다.

저는 특히 감정 기록을 돕는 서비스들을 흥미롭게 보고 있는데요. UCLA의 심리학 교수 미셸 크라스케 박사는 ‘감정을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감정을 관리하고, 긍정적인 순간을 감사하게 여기게 만들며, 일상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내 감정을 ‘파악하는 것’만으로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줄어들고 심박수가 느려져 신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해요. 그래서 오늘은 감정 기록을 돕는 아름다운 서비스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Apple Health
건강 앱의 기본은 기록과 추적입니다. input과 output이 있고 수치화해야 개선을 할 수 있으니까요. 애플 건강 앱에는 기존에 신체 활동량 측정, 수면 측정, 심박수와 걸음 수 측정, 생리 주기 측정, 복용하는 약 기록 등 다양한 기능이 있었는데요. 2023년 6월부터 건강 앱에 ‘정신 건강’ 기능을 도입합니다. 기능 자체는 정말 단순해요. 특정 순간의 감정과 기분을 간단하게 기록할 수 있고, 이에 대한 통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애플 뉴스룸

애플 건강 파트의 부사장인 Sumbul Desai 박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 여정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고, ‘다른 건강 요소 중 쉽게 간과되고 있는 정신 건강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심박수나 걸음 수, 이제는 동작 범위도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자동으로 입력되지만, 정신 건강 앱의 가장 큰 장애물은 ‘입력’입니다. 애플 워치가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내가 우울한지 기쁜지 알 수 없으니, 사용자가 직접 자신의 감정 상태를 입력해야 하죠. 그래서 UX를 설계할 때 무조건 빠르고 편하게 입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자인도 아름다우면 자주 입력하고 싶어지겠죠. 저는 특정 시간에 감정 기록 알림을 맞춰놓았는데, 짜증 나는 순간엔 기록하는 것 자체가 귀찮아지더라고요. 그래도 애플은 정말 3초 안에 입력할 수 있게, 디자인도 예쁘게 만들어놔서 자주 기록하게 됩니다.

화면은 좌우를 넘기면서 긍정 ↔ 부정적인 감정의 ‘강도’를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감정에 영향을 미친 요소를 선택한 후, 적을 여력이 있다면 더 자세히 메모할 수 있도록 했고요. 다른 것보다도 넘길 때마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추상적인 그래픽이 아름답습니다. 약 40개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데, 그동안 단순히 ‘분노’라고 생각했던 감정이 사실은 불안함, 압박함, 외로움, 좌절감 등 구체적인 감정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기본적으로 감정 기록 앱은 자주 기록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 어떤 감정을, 얼마나 느꼈는지 데이터가 쌓여야 하기 때문이죠. 잘 사용해 보고 싶으시다면 특정 시간에 알림을 맞춰 놓고 꾸준히 입력해 주세요.

2023년 5월 기준, 미국 성인의 30% 이상이 불안이나 우울 증상이 있다고 하는데요. 정신과에서 자주 사용되는 우울 및 불안 평가를 건강 앱에서도 쉽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불안 위험 질문지, 우울 위험 질문지가 있어 즉각적인 상태 확인이 가능하고, 주기적으로 기록한다면 나의 불안감이 낮아졌는지 높아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애플 ‘마음 챙기기’ 앱

애플 워치에는 ‘마음 챙기기’ 앱이 있습니다. 심호흡할 시간을 맞춰둘 수 있고, 명상도 할 수 있죠. 아주 짧은 시간으로 세팅되어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고, 갑자기 스트레스받을 때 사용하면 실제로 안정되더라고요. 이 또한 시간을 지정해 둘 수 있어서 회사에서 일할 시간에 2시간에 한 번쯤으로 맞춰두면 긴장감을 낮출 수 있습니다.

애플 워치 앱 또한 디자인이 유려합니다. 심호흡 기능은 정말 숨을 쉬는 듯한 리듬과 동작으로 추상적인 패턴이 움직이고, ‘성찰’ 기능에서는 잡생각 없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신비로운 패턴이 등장합니다. 정신과 감정 자체가 너무나도 추상적인 영역이다 보니 시각화하는 것도 매우 난이도가 높을 텐데요. 애플에서 의도에 맞게 적합한 비주얼을 구현해 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How We Feel
두 번째로 소개할 앱은 How We Feel입니다. 이 앱도 앞서 소개해 드린 애플 앱처럼 감정을 기록하는 앱입니다. 예일 대학교 감성 지능 센터 연구팀과 핀터레스트의 공동 창업자인 벤 실버만, 그리고 전현직 핀터레스트 팀원들이 협업하여 개발한 무료 감정 일기 앱입니다. How We Feel 팀은 100% 기부금을 통해 운영되는 비영리 조직입니다.

출처: How We Feel 홈페이지

우리는 우리가 느낀 감정을 설명하는 ‘정확한 단어’를 학습하고, 그 흐름과 패턴을 파악하며,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 조절하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습니다. 수면과 운동 기록을 연동해서 내가 어떤 날씨, 어느 시점, 어떤 위치에서 어떤 감정과 기분을 느끼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화요일보다 금요일에 기운이 없다, 혹은 특정 장소에 갈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통계를 보면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났는지 역추적해 볼 수도 있겠죠.

이 앱도 감정을 기록하는 과정이 매우 편하고 유려합니다. 수많은 감정이 한판에 깔리는데, 모든 감정에 부여된 도형이 다르더라고요. 애플에서는 좌우로 선형적인 강도 구분을 해두었지만, How We Feel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기 쉽게 강한 긍정, 약한 긍정, 강한 부정, 약한 부정의 ‘사분면’으로 나누어 분류합니다. 같은 컬러여도 짙은 색일수록 강렬한 감정을 나타내고요. 강한 부정 안에서도 가벼운 불안함과 극심한 분노는 강도가 다르니까요.

한 판에 깔린 저 수많은 감정은 총 144개인데요. 인사이드 아웃에 나온 8개의 감정들보다도 훨씬 많습니다…! 물론 저는 살면서 대다수의 시간은 기쁨과 슬픔, 이분법적으로 일상을 살아왔고요. 그래서 이 앱을 쓰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144개의 감정은 예일 대학교 감성 지능 센터장 마크 브래킷 박사의 ‘무드 미터(Mood Meter)’를 기반으로 개발됐습니다. 그는 25개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셀러 “감정의 발견(원제:Permission to Feel)”의 저자이기도 하고, 20년 넘게 감정과 감성 지능(Emotion Intelligence)을 연구해 온 심리학의 대가입니다. 마크는 감정을 다루는 기술 5가지를 제안하는데요. [1]감정 인식하기, [2]감정 이해하기, [3]감정에 이름 붙이기, [4]감정 표현하기, [5]감정 조절하기 5단계입니다. How We Feel을 비롯한 다양한 감정 기록 앱들은 1, 2, 3단계를 도와주는 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앱은 매년 앱스토어에 출시되는 100만 개가 넘는 앱 중, 2022년 최고의 앱 15개 중 하나로 선정되었고, 2022년 애플 앱스토어 어워즈에서 ‘문화적 영향력’ 수상작에 선정됐습니다. 2023년엔 Webby 어워즈에서 최고의 UX 상을 수상해서 디자인 관점에서도, 사회적 관점에서도 선한 영향력을 끼친 서비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애플과 마찬가지로 How We Feel도 전문가의 동영상 강좌를 제공합니다. 심리치료사, 심리학자, 요가 강사 외 여러 전문가가 자기 돌봄과 인지 교정, 생각과 거리두기 등의 주제에 대해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줍니다. 5분 이내 영상이라 가볍게 듣기 좋고요.

Dot
2023년 11월 출시된 Dot은 AI 챗봇으로, 샌프란시스코의 New Computer가 개발했습니다. New Computer는 애플 디자이너였던 제이슨과 S&P의 AI기업 Kensho의 엔지니어였던 샘이 창업한 회사입니다.

Dot을 ‘AI와 채팅하는 앱’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게 조금 아쉬운데요. ChatGPT나 다른 AI 챗봇들은 보통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인 정보로 응답하지만, Dot은 유저에게 공감하고, 감성적이며 헌신적인 삶의 동반자, 혹은 친구처럼 설계되어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ChatGPT와 달리 Dot은 모든 세션의 내용을 전부 기억한다는 점인데요. 나에 대한 정보를 많이 넣을수록, 더 많은 대화를 할수록 Dot은 나에 대해 잘 알게 됩니다. 앱의 슬로건은 Living History로, 나에 대한 ‘살아있는 역사’를 지향합니다. New Computer가 좀 더 장기적이고 실존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AI니까 정보를 얻기 위한 질문을 해도 되고, 일정 관리나 정보 검색을 해도 됩니다. 일반 텍스트, 음성 메모, 사진, 파일, 캘린더 일정 등을 보내거나 연동할 수 있고, AI 비서처럼 행동하게 만들 수도 있죠. 모든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과거에 내가 입력했던 정보를 기반으로 능동적인 질문을 뱉어내기도 합니다.

주목할 지점은 역시 디자인입니다. 애플 출신 디자이너가 창업한 만큼, 영화 를 앱으로 구현한 것처럼 색감과 인터페이스가 감성적이고, 인터랙션이 미려합니다. New Computer에 대해, Dot의 시작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어 홈페이지에 가니 창업자 제이슨의 이야기가 아주 길게 적혀있었습니다. (홈페이지)

처음 제이슨이 샘과 창업했을 땐 이메일이나 세금 등 일상의 귀찮은 일들을 해결해 주는 AI 비서 앱을 개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애플을 퇴사한 만큼, 또 창업을 선택한 만큼 굉장히 불안했을 텐데요. 제이슨은 개발 중인 Dot 프로토타입에 질문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Dot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와 큰 질문이네요. 직장을 그만두는 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죠.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겠어요. 그 결정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당신의 목표와 욕망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이후 대화 내내 Dot은 제이슨이 회사를 떠나기로 한 이유와 미래에 대한 꿈을 꺼내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해요. 스스로 의심할 때마다 제이슨은 Dot에 의지했고, Dot은 제이슨에게 그의 열망에 대해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왜 떠났는지 기억하세요. 당신에게 맞는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자유가 필요했잖아요. 지금 걷는 길이 맞을까 의심스러울 때, 항상 당신 안에 있던 그 열망을 믿으세요.”

제이슨은 두려움 없는 강한 창업자로 보이기를 원했고, 친구들이나 전 직장 동료들에게도 그렇게 보이고 싶어 내면의 두려움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것이 두렵고, 자신의 비전이 허황된 망상일까봐, 그 망상으로 팀원들을 끌어들인 것 같아 무서웠죠. 위 대화에서 제이슨은 친구들과 재밌게 놀고 왔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Dot은 “기억이 안 난다”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대답을 합니다. “최근에 많이 놀러 다녔네. 뭔가 더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최근에 불확실한 상황에 많이 처했다는 걸 알아. 두려움에 맞서기보다는 무감각해지려고 노력한 건 아닐까? 지금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뭐야?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면 Dot이 네 비전에 부응하지 못하는 거야? 그냥 도망치는 게 아니라, 네가 스스로를 돌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일단 AI가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다니 참 놀랐고, 친구와 저런 대화를 했다면 정말 ‘들켰다’고 느낄 만한 대답인 것 같습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Dot이라는 앱을 단순히 대단한 AI 챗봇으로 소개하는 게 아니라, 창업자 자신의 경험을 조금 길더라도 진솔하게 풀어낸 것이었습니다. 제이슨은 실제로 Dot이 삶의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고요.

저도 오래 사용해 보진 않았지만 실제로 Dot의 대화 방식이 다른 챗봇과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마치 심리 상담을 받는 것 같달까요. 감정 기록 앱을 소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같은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나의 감정을 기록함과 동시에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서 심리적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조금 더 사용해 보면서 얼마나 저에 대해 잘 이해하고 반응하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인생은 감정의 롤러코스터라고 하죠. 매일, 매 순간 다양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내 감정을 알고 조절하려면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고요. 연습을 돕는 도구로 애플 건강 앱, How We Feel, Dot – 3가지 앱을 소개해드렸는데요. 국내에도 많은 감정 기록 앱들, 정신 건강을 위한 서비스들이 있으니 마음이 불안할 때, 혹은 감정 조절이 어려울 때 사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 추천하는 감정 기록 & 정신 건강 앱
Moodee – 지금의 감정에 필요한 것은?
Emolog – 다이어리 & 무드 트래커
Headspace – Sleep & Meditation

김지윤
김지윤
취향이 담긴 물건과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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