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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레이블에 담긴 정보와 예술가의 터치

눈길이 가는 책에 손이 가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 그림, 글씨체 등에 이끌려 손에 와인병이 들려 있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와인에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와인 레이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우리가 진짜 봐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누가 만들었나? 보통 와인 레이블에는 생산자 또는 와이너리 이름이 쓰여 있다. 물론 와인 이름만 적혀 있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흰 우유라도 어떤 기업이 만든 것인지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듯 와인도 비슷하다. 어쩌면 와인은 누가 만든 것인지가 제일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동일 지역, 동일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라도 누가 만들었는지에 따라 그 맛과 향은 다를 수 있으니.

어디서 만들었나? 프랑스, 미국, 호주, 스페인, 이탈리아 등 포도 산지는 다양하고 이에 와인 수도 어마어마하다. 보통은 세분된 지역을 표기할수록 비싼 와인일 확률이 높다. 가령, 프랑스 와인을 골랐는데 “Morey-Saint-Denis” 보다는 “Morey-Saint-Denis Les Ruchots”라고 적혀 있다면 품질이나 가격 등이 더 높을 가능성이 있다.

언제 만들었나? 어떤 와인에는 연도 표시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레이블에 표기한 연도는 빈티지(vintage)라고 부르는데 포도 수확 연도를 의미한다. 포도를 언제 수확했는지에 따라 최종 산물인 와인이 달라질 수 있다. 날씨, 토양 등 다양한 조건이 잘 맞아서 수확한 양질의 포도로 양조한 와인이 더 맛있지 않을까? 원재료가 좋으면 완성된 것의 품질이 좋을 확률이 높은 것은 당연지사. 물론 수확이 좋지 못한 상태에서도 양조 방식 등으로 멋진 와인이 탄생할 수도 있다. 이게 와인의 매력이지만.

무엇으로 만들었나? 어떤 포도로 만들었는지도 중요하다. 포도 품종에 따라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맛과 향이 있기 때문이다. 단일 포도 품종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의 포도 품종을 섞을 수도 있다. 어떤 와인에는 포도 품종이 적혀 있지 않은데 그럴 때는 아팰라시옹(appellation, 와인 산지 명칭)을 봐야 하는데 이건 공부를 조금 해야 한다. 산지에 따라 정해진 규칙이 있고 그 규칙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품종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알코올 도수는? ABV(Alcohol by Volume)로 표기하는 데 10%에 가까운 와인부터 17%가 넘는 와인까지 알코올 도수는 꽤 다양하다. 내가 자주 마시는 와인은 보통 12.5~15% 정도인데 알코올 도수가 높다면 잘 익은 포도를 사용했을 것이고 과실 풍미가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 또한 와인에 따라 상이할 수 있다.

이 정도가 기본 중 기본이라면 와인 레이블 뒷면에도 꽤 유용한 정보가 있다. 친절하게 포도 재배나 양조 방식을 알려주기도 하고 와인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일화가 적혀 있기도 하다. 때에 따라서 인증 마크를 표기하기도 한다. 나는 병입 날짜나 샴페인이라면 데고르주망(disgorgement) 날짜를 확인하는데 대략 얼마나 와인이 숙성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것들은 그야말로 사실을 기반으로 한 정보지만 와인 한 병에 담긴 의미를 단번에 우리에게 각인하는 것은 어쩌면 그림일지도 모른다. 내가 좋아하는 비에띠(Vietti) 랑게 네비올로의 레이블에 그려진 그림은 아티스트와 협업해 완성된 것으로 와인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와인을 마시고 나면 내가 느끼게 될 감정을 시각화한 것일까?

샤또 무똥 로칠드(Chateau Mouton Rothschild)는 매해 유수한 예술가의 그림을 와인 레이블에 넣는다. 파블로 피카소,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제프 쿤스,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그림을 레이블에서 감상할 수 있다니 마시는 즐거움과 보는 즐거움으로 행복감이 충만해진다. 특히, 2014 빈티지 레이블은 데이비드 호크니가 그렸는데 와인 두 잔 중 한 잔은 비어 있고 한 잔은 가득 차 있다. 엄청난 기대감과 매번 새로운 와인 탄생이라는 기적을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와인 수집가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와인이지 않을까.

출처: Artsy

한 가지 더 소개하자면 할란 에스테이트(Harlan Estate)의 “더 마스코트 (The Mascot)”다. 원래는 친구와 가족끼리 마실 와인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점차 아이덴티티가 생기면서 접근성이 좋은 와인으로 출시되었다. 이 와인에 그려진 잉글리시 화이트 불테리어는 충성심, 용기, 아량 등을 상징하는데 나파 밸리 와인이 가진 한 면모를 보여준다고 한다.

(왼쪽부터) Vietti Langhe Nebbiolo, Chateau Mouton Rothschild 및 The Mascot

시각적인 이미지가 주는 와인의 느낌과 객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내 마음에 쏙 드는 와인을 선택하기를!

고혜림
고혜림
사소하지만 취향 스민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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