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코르크를 열고 병을 기울여 잔에 와인을 따르는 순간 어떤 향이 코끝을 스친다. 조금 다가가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 알 듯 말 듯 여러 향이 마음속을 어지럽힌다. ‘뭐지?’ 와인잔을 조금씩 움직여 가면 향이 내게 오라고 재촉한다. 와인 마시는 묘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누군가 잔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으면 유난 떤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유난을 떨기도 한다. 시음하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 것도 있고 궁금한 마음에 못 참고 코를 잔에 갖다 대기도 한다. 와인 한 잔엔 무엇이 담긴 것일까?
아로마(aroma)와 부케(bouquet). 누누이 말하지만 모르고 마셔도 맛있을 수 있는 게 와인이지만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게 와인이다. 아로마와 부케 모두 와인에 담긴 향을 의미하지만, 아로마는 포도로부터 비롯된 자연의 향으로 꽃, 과일, 허브 등의 향이 여기에 속한다. 부케는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서 비롯된 향으로 바닐라, 견과류, 향신료 등의 향이 있다. 좀 있어 보이게(?) 향을 나누면 1차, 2차 그리고 3차 아로마로 나눌 수 있고 그중 2차와 3차 아로마를 부케로 분류한다.

나는 와인 마스터나 숙련된 소믈리에처럼 멋들어지게 와인 향을 맡아보고 아로마와 부케를 모조리 말할 순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아로마나 부케는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물론, 다양한 와인을 꾸준히 마시며 훈련한다면 와인의 향을 더욱 잘 감지할 수 있겠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향은 꽤 주관적일 수 있다. 혹시, 향수 코너에 가서 향을 맡아본 적이 있는가? 분명, 우디(woody)한 향이라고 적혀 있는데 맡아보면 과일이나 꽃 향이 더 잘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향수에 탑, 미들 그리고 베이스 노트가 섞이며 만들어진 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 맡은 향과는 또 다른 향을 내뿜기도 하니 기다리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이와 비슷하게, 와인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진짜 매력덩어리 아닌가.
어떤 아로마나 부케가 더 좋은지는 각자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화려한 아로마의 향연을 좋아하는 이도 있고 은은하게 퍼지는 아로마를 선호하는 이도 있다. 굳이 따지자면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고 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향이 느껴지면 뜻밖의 선물을 받은 것처럼 설레고 기쁘다.
고소한 아몬드 향이 올라오는 와인을 좋아하는 데 안주가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충분한 와인이다. 이탈리아 바롤로(Barolo) 레드나 숙성된 샤르도네 등에서 느껴지곤 하는데, 여기에 산도까지 뒷받침해 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발효 중 화학작용이나 배럴 숙성 또는 효모 앙금을 섞어주면 이런 결과물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게 무엇이든 간에 고소한 견과류 내음은 극호다.

두 번째로 좋아하는 향은 시트러스(citrus)류 중에서도 자몽 아로마다. 한여름에 즐겨 마시는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이나 리슬링(Riesling)에서 느껴지는데 산뜻함과 싱그러움이 더위를 날리고도 남는다.

세 번째로 좋아하는 향은 갓 구운 빵 내음인데 어느 정도 익은 샴페인에서 느껴진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브리오슈(brioche) 아로마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빵 내음이 진동하는 베이커리에 들어가 본 사람이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향이다. 운 좋게 이런 샴페인을 만나면 포도 품종의 조합과 데고르주망을 확인하고 기분 좋게 사진을 찍어 저장해 둔다. 다음에도 마셔야 하니깐.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향은 꿀이다. 와인에서 꿀 아로마라니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누군가는 실제로 꿀을 넣은 거 같다고 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른 아로마와 잘 어우러지는 꿀 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참, 까다롭네!) 보통 나는 익은 화이트 와인에서 느끼곤 하는데 은은한 단 향에 매료되면 빠져나오기 힘들다. 또, 그 단맛은 포도를 늦게 수확해 만드는 와인과는 다른 그윽하면서도 희미해야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좀 더 본격적으로 아로마에 관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그렇다면 아로마 키트를 구매해 향을 하나씩 맡아보면 어떨까? 그리곤 내가 마시는 와인에서는 어떤 향이 나는지 매칭해 본다면…
